수진
우리는 10분째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다가, 서로를 향하는 눈길에 초점이 닿으면 그녀가 살며시 웃는 표정을 짓는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꼬리만 살짝 움직인다. 볼을 향해 올라가려던 입꼬리가 목적지를 바꾸듯 아래로 처진다. 그리고 입술을 꾹 눌러 모은다. 그녀가 모았던 입술을 복주머니 입이 벌어지듯 꼼지락거리며 연다.
"지금이 7시 10분. 시간을 주세요. 정확히 30분까지면 됩니다."
승주는 나무 의자에 매달려 있던 카디건을 챙겨 테라스로 나간다.
시원함이 차가움으로 바뀌는 데는 하루면 족했다. 팔에 오돌돌 소름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하늘을 본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의 범주였던 7시 하늘은 밤사이 변심한 애인처럼 캄캄한 얼굴을 하고 있다.
덕분에 일찍 나온 달이 신이 난 듯 배시시 웃는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그저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 오늘은 초승달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몸을 키웠다 줄였다 하는 달의 루틴을 이번엔 위아래로 바꿔보라고 권유해 볼까. 그러면 오늘의 초승달은 뽀얀 김을 내며 담겨있는 사랑스러운 수프 그릇처럼 따뜻하게 웃고 있을 텐데. 입꼬리를 귀까지 한껏 올리며.
그녀가 [나무 교실]을 찾아온 건, 일주일 전이다.
"최수진이에요. CH그룹 과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유행이 과하지 않게 묻어있는 슈트 차림, 명함까지 내보이며 자기소개를 하는 수진 씨의 목소리는 정확했다.
나무 교실을 처음 찾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주위를 둘러본다던가 어색하게 지어 보이는 미소가 없었다.
마치 업무 처리를 위한 출장지에 온 듯 거침이 없었다.
"나무 교실을 찾아오게 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공격을 당했어요. 살다가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학창 시절부터 회사까지 다양한 생활을 했지만, 이런 공격은 처음이에요."
그날 아침이었다. 수진 씨의 중3인 아들과 친구인 엄마들의 브런치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브런치여서 수진 씨는 반차를 내고 참석했다. 이들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동네에서 언니 동생하며 오간 사이로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원 정보와 사춘기 대처법으로 이어지는 소소한 일상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점심 메뉴를 이야기하던 스몰토크 타임이었다. 짬뽕, 김치찌개, 돈가스. 각자 입맛의 흐름대로 메뉴를 이야기하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진 씨도 그 대열에 합류했을 뿐이었다.
"돈가스 어때요? 돈가스는 사 먹어야 제맛이죠."
"오늘 같은 날은 돈가스는 아니지."
"그럼 만두전골은 어떨.."
"그게 아니고, 수요일은 짜장면이지. "
이게 다였다. 갑자기 이 모임 막내서열의 엄마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뭐가 맨날 그게 아니고인지. 언니! 쫌..... 그럼 다들 짜장면 드세요. 저는 집에 가겠습니다."
막내 엄마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파우치를 들고나갔고, 서있던 사람 중 둘은 그녀를 말리듯 따라가고, 둘은 겸연쩍게 서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수진 씨는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그날, 그녀는 나무교실을 방문했고, 다이어리를 열며 스케줄을 확인한 후에 일주일 뒤 퇴근 후 7시라는 약속을 하고 갔다.
수진 씨가 유리창을 두드린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승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시작할까요? 오늘의 한마디는,
그게 아니고
"그 막내엄마가 콕 집어서 말한 단어가 그거였어요. 제가 그 말을 많이 사용하는지도 모르고요. 그날 이후로 사람들과 말을 이어가기 무서워졌어요."
"혹시 회사나 집에서는?"
"그게 아니고. 그날뿐이었다니까요. 집에서는 아무 문제없어요. 남편도 잘해주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요.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과장이고요."
승주는 부드럽게 제안한다.
"그럼 이렇게 해보죠. 지금 회의 중이라 생각하고요. 어떤 상황을 떠올려보는 거예요. 회의 테이블, 직원들로 일상적인 이야기들로요."
"좋아요. 며칠 전 나누었던 사내 패밀리데이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를 생각할게요."
"금요일 패밀리데이를 옮기는 건..."
"그게 아니고, 옮기면 언제로요? 월요일부터 패밀리데이를 하자고요?"
"패밀리데이 쿠폰 금액을..."
"그게 아니고, 지금 쿠폰도 회사 입장에서는 적지 않아요."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교실 안으로 스며든다. 승주는 휴대폰을 들어 녹음을 멈췄다.
조용한 공간 속, 방금 전 대화가 다시 재생된다.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짧은 말인데, 공기가 달라진다.
수진 씨의 얼굴에 생소한 표정이 번진다. 마치 처음 듣는 목소리를 만난 사람처럼.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는 짧지만 힘이 센 말이다.
아니라고. 단어가 대놓고 말하는 만큼 부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말투이다.
상대의 말을 바로잡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들리는 사람에게는 ‘틀렸다’는 선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설명보다 반박으로, 대화보다 방어로 흐르기 쉽다.
묘한 건, 이 말이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입에 붙는다.
사용하는 주체는 정정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말을 이어가려는 것뿐인데, 듣는 이는 그 말의 첫음절에서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내가 더 잘 안다’, ‘내가 정답이다’라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의도는 다르더라도, 말은 언제나 의도보다 먼저 닿는다.
"엄마예요."
수진 씨의 입에서 낯익지만 낯선 두 글자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엄마가 이 말을 많이 쓰셨어요."
그녀의 시선이 멀어졌다.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듣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엄마는 완벽했어요. 아니, 완벽에 가까웠어요. 어떤 일도 엄마 손에 들어가면 엉킨 실이 풀리듯 스르르 해결됐죠. 그런데 엄마가 입에 늘 달고 다니던 말이 '그게 아니고'였어요."
빨래는 걷을 때도, 교복 단추를 채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식탁 위에서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걸 때도, 엄마는 어김없이 그 말을 앞세웠다.
'그게 아니고'라는 말은 이유나 설명보다 먼저였고, 그 말 뒤에는 늘 엄마가 생각하는 '정답'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어요. 그냥 엄마 말이 옳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어요. 그 말이 누군가의 입을 닫게 한다는 걸."
점점 아빠의 입이 닫혔고, 그 과정을 보면서 수진 씨도 입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싫어하던 말이었는데, 제가 그 말을 자주 쓰고 있다니요."
어쩌면 완벽주의에 가까운 엄마의 성향과 수진 씨의 성격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그렇게 싫었던 그 말을 내가 쓰고 있다니. 그것도 자주.
수진 씨가 만난 혼란은 당연한 충격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틀리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을 하기 전에 , 입이 열리기 전에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한다.
때로는 마음보다 입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마치 생리적인 반응처럼. 그게 말의 습관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내재된 생각의 습관이 스르르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 왔던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까지 노력해 왔던 작은 행동까지.
그렇기에 수진 씨에게 '그게 아니고'는 오랜 기간 훈련되어 온 '내면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승주는 책상 위 놓인 작은 거울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 말을, 거울을 보며 해보기로 한다.
"그게 아니고"
"아니, 그게 아니고"
거울 속 얼굴이 미세하게 변한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다 다시 내려앉고, 미간이 좁아진다.
세 번쯤 반복했을 때 수진 씨는 거울을 가만히 바라본다.
"제가 이렇게 보였겠네요. 화가 잔뜩 났네요. 그때 엄마의 얼굴처럼."
수진 씨가 작게 웃으며 말한다.
승주는 대답 대신 메모지에 글씨를 적어 건넨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요.."
깜빡이도 안 켜고 질주하듯 끼어들기를 하던 '그게 아니고'는 예의 바르게 서행을 하는 '내 생각에는'으로 바뀌고 있었다. 뒤도 안 돌아볼 듯 찍히던 마침표 대신, 문이 열리는 여운이 남는다.
운전습관처럼 말의 습관도 '속도'와 '예의'를 지키면 된다.
거울 속 수진 씨는 미간에 들어갔던 힘이 풀리고, 올라갔던 눈꼬리가 그네를 타고 올라간다.
그녀가 웃는다.
자주 쓰는 말투는 상대를 향한 태도에서 시작된다.
태도와 특정한 단어가 만나 공감의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하고, 상처의 고랑을 파기도 한다.
익숙한 말일수록 무감각하다.
하지만 그 무감각은 나만 모르는 무감각이다.
존중이 없는 말은 결국 대화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던지는 돌이다.
보이지 않는 멍은 말 한마디로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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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되었다. 승주가 가방을 챙기자, 수진 씨가 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테라스에 나가봐도 될까요?"
문이 열리고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하늘 위 초승달이 살짝 누워 있다.
우리나라에선 달이 저렇게 눕진 않겠지만,
만약 저렇게 그릇처럼 누워 있다면, 세상의 모든 눈물도 고이 담아줄 것 같았다.
조용히 웃고 있는 초승달 아래, 그녀도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