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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니 생각이고

영애와 준수

by 마음의 온도
"죽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왔어요."
- 카베 악바르 [순교자!]


스무 번? 아니, 서른 번쯤 되었을까. 30분째 이 한 문장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말도 아닌데, 쉼표 여러 개 걸린 장문도 아닌데, 이 한 줄을 읽고 또 읽고 있다.

눈동자는 규칙적으로 문장을 따라가지만, 마음은 이미 책 바깥의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다.

시선 너머, 나무교실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승주의 더듬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30분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 인파 사이로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걸었고, 나무 교실 문을 열어 나무 냄새를 충전했고, 오늘의 숨쉬기까지 만족스러운 호흡이었다.

책을 잡은 손이 떨어지지 않아 점심식사까지 미루고 있던 그때였다.


따랑-

풍경소리가 실수한 듯 짧게 울렸다. 달랑이던 풍경이 멈추고 문이 소심하게 열렸다.


"제가 좀 일찍 왔어요."


영애 씨였다.

승주가 일어나려 하자, 영애 씨 특유의 푸근한 손이 허공을 부드럽게 젓는다.


"하시던 일 하세요. 저.. 그냥.. 앉아있어도 되죠?"


영애 씨는 자신이 늘 앉던 88 사이즈 의자에 살그머니 엉덩이를 내린다. 오늘따라 의자가 더 넓어 보였다.

그녀는 살짝 몸을 말아 의자에 기대더니 백팩을 열어 책을 꺼냈다.

승주가 덮었던 책을 펼치려던 찰나. 풍경소리가 이번에는 더 소심하게 흔들린다. 따랑-


"어쩌다 좀 일찍 도착해서요."


머리를 긁적이며 준수 씨가 들어왔고, 약속이나 한 듯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같은 공기 속에, 같은 자세로 앉게 되었다.


"속도를 좀 늦추죠."
그녀는 펼친 두 손바닥으로 공기를 다독이며 말했다.


30분째 멈춰 있던 159페이지 첫 줄은 어느새 161페이지로 넘어가 있었다.

어떻게 왔는지, 주인공이 어떤 모습으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 넘긴 것도 아닌데, 마음만 제자리에 걸린 듯했다.


승주는 아래로 쏟아져있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주변을 감지해 본다.

책들은 펴져 있지만, 그 누구도 책장을 넘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턴가 세 사람을 기둥 삼아 가느다란 실이 조용히 팽팽해지고 있었다.

누구 하나 한숨이라도 내쉬면 툭-- 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긴장의 끈.


공기를 다독여줘야겠어. 승주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커피를 새로 내렸어요. 우리 한 잔씩 할까요?"


머그잔 세 개에 뜨거운 커피가 채워지고, 김이 가늘게 피어오르는 순간, 어디선가 조심스러운 말 하나가 실마리처럼 등장했다.



영애 씨는 머그잔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다, 입술을 꾹 누르던 힘을 놓는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내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어?"


결혼한 지 스물다섯 해, 영애 씨보다 네 살 많은 남편이 오늘 아침 식탁에 올린 말이다.

"오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믿으라"고, 그 말에 끌려서 결혼을 했다.

처음엔 믿음의 언어였고, 한동안은 책임감의 말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결정권'이라는 권위의 이름표가 되었다.

첫아이 돌잔치 장소를 정할 때도, 네 식구가 몇 년 만에 떠나는 가족 여행도, 친정과 시댁을 오가는 명절 일정도, 큰아이 진로를 고민할 때도 그랬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그 말 뒤에는 늘 "넌 그냥 나만 믿어."라는 꼬리가 매달려 있었다.

전업주부로 생활비를 받는 '을' 자리, 6남매 맏며느리의 '맏이'라는 말은 결정권자가 아니라 일감을 더 많이 '맡은' 사람에 가까웠다.


"다음 달에 이사해요. 두 아이 모두 독립해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요. 각자 방 하나씩 갖기로 했어요. 처음으로... 내 방이 생기는 거예요."


그 마지막 문장은, 오래 숨겨둔 소원을 고백하듯 천천히 흘러나왔다.


"도배지를 고르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흰색이 좋거든요. 근데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때 탄다고, 반짝이가 뿌려진 베이지가 낫다고. 그러면서 또 그 말을 하더라고요. '당신이 뭘 아냐'고. 그 자리에서 숟가락 내려놓고 바로 나와버렸어요."


영애 씨는 웃는 듯 말했지만, 머그잔을 잡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상하죠.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오늘은 그 말이, 제 인생 전체를 평가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내 방 벽지 하나도 못 고른다면, 그건 정말 내 인생이 맞는 걸까 싶더라고요."


조용히 듣고 있던 준수 씨가 생수병뚜껑을 열어 영애 씨 앞에 내려놓는다.


"저도 어제부터 계속 제 이름을 욕하고 있었거든요. 이준수, 넌 왜 이렇게 한심하냐."


준수 씨도 장남이었다. 하지만 영애 씨 남편과는 전혀 다른 결의 장남이었다.

삼 남매의 장남. '형이니까', '오빠니까'라는 말은 늘 양보의 다른 말이었다.

닭다리는 동생 먼저, 화장실도 동생 먼저, 아픈 아버지 대신 대학보다 취업이 먼저였다.

갖고 싶었던 장난감도, 옷도, 동생이 울면 자동으로 '양보'가 정답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도 똑같더라고요."


어제 점심 이야기였다, 과장님이 "오늘 같은 날은 김치찌개가 국룰이지."라고 말했다. 어제저녁도 오늘 아침도 김치찌개였던 준수 씨는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은요, 과장님보다 제가 더 싫었어요. 싫다, 아니면 따로 먹겠다고. 그 한마디를 왜 못했는지. 점심 메뉴 하나도 말 못 하는데... 회사에서 제 의견이 있긴 한 걸까요? 왜 이렇게 남의 말에만 끌려 다니는지... 김치찌개 하나였지만, 그 순간은... 제 인생이 걸린 문제 같았어요."


머그잔을 내려다보던 준수 씨가 작게 웃는다.

팽팽하던 실들이, 조금씩 숨을 내쉬며 느슨해지고 있다.



남의 말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길.

혼자 서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누군가의 말에 따라온 길일지 모른다.


태어나면서 부모의 결정, 학교에서 선배의 조언, 친구의 충고, 사회의 규칙.

우리는 믿음, 경험, 권위라는 이름으로 남의 말을 '정답'처럼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대부분 '나중'에야 들렸다.


때로는 규칙처럼 당연해서, 때로는 옳은 말 같아서, 때로는 복종해야 하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 앞에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인다.

나의 마음보다는 상대의 판단에 기울어지는 것이다.

어떤 말은 진심보다 커서 따를 수밖에 없고, 어떤 표정은 이유보다 강해서 조용히 설득되어 버린다.

그렇게 남의 말이 더 크게 들리는 사이, 내 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나중으로 밀린다.

남의 판단에 마음을 빼앗기고, 남의 기준에 나를 구겨 넣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온 말일뿐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내 말이 맞아. 내가 인생 선배잖아, "

"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조언이라는 이름, 경험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답처리'하는 말들.

그 말이 진실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반드시 나에게 맞는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말들은 그 사람이 걸어온 길, 그 사람이 겪어온 실패와 성공에서 자연스레 추출된 문장일 뿐.

반드시 나에게 닿는다는 보장은 없다.

나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


승주는 느슨해진 실을 조용히 감아올리듯 말한다.


"누군가의 말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 그 무거움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힘이 되거든요.

우리 이제... 내 마음에 주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주문이요?"



그건 니 생각이고


이 말은 상대를 밀어내기 위한 말이 아니다.

그저, 당신의 결론과 내 인생에서 나올 결론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경계선'이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마음에 나지막이 소곤거려 주어도 좋다.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내 생각을 향할 차례라고.


잠깐만 떠올려도, 내 안의 목소리는 다시 볼륨을 되찾는다.

'존재감을 회복하는 한마디'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조언이 너무 완벽한 답처럼 들릴 때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볼게."

죄책감 대신 고민의 시간을 선택하는 문장이 된다.


누군가의 말이 나를 한 번에 평가하고 잘라버릴 때

"그건 니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르거든."

상대의 판단에서 나를 꺼내오는 문장이 된다.


내가 나에게 "넌 왜 이렇게 한심하냐" 하며 다그칠 때조차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나를 좀 다르게 보고 싶어." 이 말은 나 자신에게도 건넬 수 있다.




오늘은
내 생각으로 살아본다


우리는 종종 남의 말에 흔들린다.

하지만 인생은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길이다.

누군가의 확신이 내 확신을 대신할 수 없고,

누군가의 진실이 내 삶 전체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남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도 괜찮다.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내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보려고요."


바람결에도 쉽게 흔들리던 마음이, 비로소 나를 닮은 자리에 조용히 멈춰 선다.

.

.

.

.

영애 씨의 목소리가 원래의 볼륨을 찾았다.


"그건 니 생각이고!. 대놓고 내뱉지도 않았는데도 속이 후련하네요."


"그건 니 생각이고. 선을 긋고 나니 제가 보이네요. 김치찌개를 먹어도 '그래, 오늘은 내가 인심 쓴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잘난 내가... 오늘은 너한테 맞춰준다." 영애 씨가 장난스럽게 얹는다.


서로의 웃음소리에 또 웃음을 더하는 영애 씨와 준수 씨를 보며, 승주가 고민하는 눈동자를 굴린다.


"교실도 문을 닫을 시간인데.. 마지막으로 노래 하나 들려드릴까요?"


"설마,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이건 아니겠죠."

영애 씨의 대꾸에 준수 씨가 또 까르르 터진다.


승주는 올인원 턴테이블에 씨디를 넣는다.

전주가 심장처럼 톡톡, 튀어 오른다.



<그건 니 생각이고> 장기하와 얼굴들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https://www.youtube.com/watch?v=o-W8BafJtVs&list=RDo-W8BafJtVs&start_radio=1

출처: 유튜브 / 장기하의 꾸러기 얼굴과 가사가 나오는 영상으로 엄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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