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선 밖을 가늠할 수 없다.
창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문이 북쪽을 향해 있어서 낮과 밤만을 구분 지어 준다.
밝음과 어두움만 구분할 뿐, 그 중간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이 방에 들어오기 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 생겼다.
가정용 에스프레소기로 커피액을 추출하는 동안 주전자에 물을 담아 아주 팔팔 끓인다.
우리 어머니 말씀이 ‘물도 잘 끓여야 맛있다’고 한다.
알듯 말듯한 말씀을 섬겨 보기로 하고 주전자 입구로 가열 차게 나오는 수증기를 한참이나 확인한 후에야 가스 불을 끈다.
500ML 보온병에 커피와 끓인 물을 희석한다. 적당한 농도의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한 모금에서 두 모금 정도의 양만 컵에 따라서 마신다.
그러면 한 3시간 정도는 따뜻한 커피를 계속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커피는 더 빠르게 식어버린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따라 놓은 커피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거나 뭔가에 집중하다 보면 배고픔과는 좀 다른 허기가 진다.
오늘은 버터를 프라이팬에 녹여 식빵을 구웠다.
"그래, 지금은 몸보다 머리에 양보하자.'
인간의 뇌는 포도당만을 연료로 쓴다 하니...
그래도 욕실 앞 체중계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갓 구운 식빵의 따스한 열기가 허공으로 퍼지니 버터향도 고소하게 번진다.
커피를 컵에 붓는다.
적당히 노릇한 식빵의 담백함이 입안을 채운다.
이어 한 모금의 쌉싸름한 커피가 입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두 맛이 섞이며 서로의 경계가 흐트러진다. 각자의 식감과 향을 잃었다.
이후로 커피는 토스트가 다 없어지길 기다려야 했다.
또 그렇게 식어버렸다.
집중과 멀티...
캐디는 단연 멀티의 능력이 더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
집중은 멀티의 부분집합이자 필수 원소이기도 하다.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하기에는 나의 관심을 기다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까치발을 들고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고객의 볼도 봐야 하고, 흙이 묻은 볼이나 클럽을 닦으며 고객의 썰렁한 농담에 적절한 맞장구도 해야 한다. 고객이 하다만 벙커 정리를 하면서도 목을 쭈욱 길게 빼어 날아가는 볼도 봐야 한다. 마치 한 마리 미어캣처럼. 온몸의 신경들이 촉수가 되어 모든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적절한 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런 모든 일련의 상황들이 거의 동시다발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 홀이 끝나면 4명의 플레이어의 스코어를 복기하며 스코어카드에 기록해야 한다.
요즈음은 태블릿 PC에 스코어를 입력해야 하므로 제때에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종이로 된 스코어카드가 있지만 문명의 이기 앞에 비치용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간혹 종이 스코어카드를 요구하는 분들도 있지만, 단순히 거리를 참고한다든지, 자신의 퍼팅수와 스코어를 기록하려고 원하는 것이다. 종이 스코어로 기록할 때는 내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 티잉그라운드에서 고객이 티샷 볼을 보면서 적어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블릿이 카트 앞쪽 상부에 거치 되어 있어 고객들이 해당 홀을 마치고 카트에 탑승하면 스코어를 입력하거나 다음 홀에 도착해 정차를 하면 바로 입력을 한다.
이때, 스코어가 좋으면 상관이 없지만 그중에 개인 간의 스코어 격차가 많이 나면 4명이 모두 모여 있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스코어를 기록하는 게 내 입장에선 쉽지 않다. 좋지 않은 스코어의 당사자가 민망할까 봐 일부러 바쁜 척 다른 일을 하고 고객들이 카트에서 떨어져 있을 때 기록한다.
특히, 여성고객들일 때 더욱 그러하다.
말은 스코어 신경 안 쓴다고 하나, 어디 사람 맘이 그런가!
활자로 찍히는 순간, 공식화되는 점수를 보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입으로는 '명랑운동회'라고 했지만...
여기서 캐디는 고객들과 심리전에 돌입한다.
'분명 스코어가 더블(Par+2)인데 이걸 보기(Par+1)라고 해야 하나, 양파(Par*2의 스코어)인데 더블이나 트리플(Par+3)로 써야 하나...'
홀 마다 펼쳐지는 캐디들 손끝의 마법. 그렇게 스코어가 재탄생된다. 아니 그냥 실제 스코어를 적으면 되지 뭐가 그리 유난인가 싶겠지만 좋지 않은 스코어를 그대로 기록하면 정(情)이 없다,융통성이 없다 하고, 모른 척 줄여주면 제삼자들이 캐디가 스코어도 제대로 못 센다고 나무랄 것이고... 몇 홀 스코어 기록을 비워놓으면 제때에 기록하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이럴 땐 나도 한국인이지만 , 한국의 정(情)스러운(?)문화가 피곤하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애매한 연대. 외국인들, 특히 일본인들은 스코어만큼은 가감없이 정확하게 세고 표기한다.
물론 직접 스코어를 기록해주는 고마운 고객들도 있다.
캐디들의 큰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다. 회사에서도 창립 당시 스코어는 경기자 자신이 기록하는 캠페인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저희 골프장은 스코어를 경기자 본인이 직접 기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 그래요? 언니(캐디를 부르는 친근한 호칭)들이 써 주는 거 아닌가? 다른 골프장은 다 써주던데..."
"아.. 네. 원하시면 제가 적어드려요. 하지만 직접 스코어를 기록해 보시면 본인 스코어 관리에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라고 응대하면 거의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그렇다.
자주 직관적으로 스코어를 보면 더 집중하게 된다. 물론 역효과가 나는 이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아예 스코어에 신경을 쓰지 않는 실력이다.
단 몇 초에 불과하지만 지나온 홀을 복기하며 다음 홀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는 순간들, 때론 그 순간이 영원을 박제한다.
이런 경우, 캐디인 내가 점수를 적지 않는다고 하여 방심하면 안 된다.
"언니, 제 스코어가 뭐죠?"
"쟤 스코어가 뭐예요?"
본인들의 스코어가 헷갈려 물어본다거나 경기자들끼리 셈법이 다를 때 최종 판결자가 되어 나의 생각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물론 최대한 경기자들끼리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웬만하면 나는 그 언쟁에 끼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러 상황은 항상 찾아온다. 그러니 절대 경계를 풀지 않아야 한다.
각 홀마다 티잉그라운드에서 홀의 특성과 공략지점, 주의해야 할 사항들은 경기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 회사는 회원제 골프장으로 운영되니, 자주 오는 회원들에게는 생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처음 방문을 하거나 시간차를 둔 재방문자가 많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홀에 대한 설명을 했다.
홀 설명에 이어 고객들이 궁금해할 부분까지 미리 설명을 한다.
사람들이 물어오는 게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한 질문들이다.
"캐디님은 꼭, 선생님 같으세요. 그것도 유치원 선생님..."
그러자 옆에 있던 고객들도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선생님이라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요, 왜 하필이면 유치원 선생님이에요?"
내가 이렇게 묻자,
"캐디님은 말로만 하지 않고 몸짓과 손짓까지 쓰시잖아요. 말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머리에 꼬옥 박히게 설명을 해 주시니 우리가 마치 유치원생이 된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제 어릴 적 꿈이 선생님이긴 했어요. 좀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많이 비슷하긴 하네요.
초록 칠판대신 초록잔디긴 하지만, 덕분에 제 꿈이 이루어진 건가요?"
"요즈음은 화이트보드인데요!"
이 분위기 어쩔거냐며 한바탕 웃었다.
우리 회사는 골프장과 부대시설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넓다.
홀을 더 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거의 단독홀로 구성이 되어 있고, 홀 사이 이동 동선도 길다.
처음 고객과 첫인사를 나누고 시작 코스로 갈 때 나는 소위 <웰컴 멘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18홀 동안 나와 그들의 합이 어떨지 가늠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반홀이 끝나고 후반홀로 이동할 때도 시선에 닿는 시설과 쓰임, 식재되어 있는 꽃과 나무,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꼭 관광하는 것 같네. 우리 골프 치지 말고 이대로 그냥 코스 투어나 합시다."
설레임과 기대에 찬 그들의 미소와 말소리가 햇살에 반짝거리며 바람에 실린다.
"네..그럼 그럴까요?"
우리는 캐디라 부르고, 심리분석가, 선생님, 가이드, 숲해설가, 응급구조사, 홍보,영업사원 ,통역사등으로 쓰인다.
18홀을 삶의 무대로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가을이 오고 있구나. 오늘은 철학자로...
커피와 빵을 따로 먹으며 각각의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일.
어쩌면 내 일상에 일어난 작은 변화일지 모른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소한 일일진대,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야하는 것이 일상이 었던 내게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일종의 게으름처럼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었을까?
골프엘보만이, 무릎통증만이 직업으로 얻어진 병이 아니었다.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어 부산했던 나의 정신과 육신...
목젖을 타고 흐르는 커피가 씁쓸하나 목 넘김이 부드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