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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Oct 17. 2022

뜨거운 안녕

회사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맞은편에서 두 사람이 걸어온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의 거리를 점점 좁힌다.

좁혀지는 거리만큼 머릿속이 헝클어진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낯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해야 할지, 그냥 모른 척 지나쳐야 할지...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서 딴청을 부리기엔 이미 때는 늦었다.

어느새 그들은 바람 불면 옷깃이라도 닿을 거리에 와 있다.

들리듯 말 듯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다행히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일행 중에 한 분이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답례를 한다.

그리고.. 각자의 방향으로 향한다.

오늘도 틀려 버렸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믿거나 말거나>의 지존인 혈액형도 A형이다.

소심하여 누군가 나를 주목하는 것도 불편해서 인사를 하며 내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어렵다.

평생을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내가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인사를 어려워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다.

특히  걷다 잠시 멈추고 상대를 향해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 알면서도 잘 실행하지 못한다.

1초의 멈춤.

상대가 누구든 망설이지 않고 나를 멈춰 세워 머리를 숙이는 일, 즉 인사는 찰나의 용기다.


글을 쓰면서 나를 관찰하게 된다.

내가 나인데 타인이 규정지어 주는 나를 알게 될 때, 놀랍고 신선하다.

사회적인 나와 지극히 사사(私私)로운 나는 그 어디쯤 경계에서 줄타기하며 까치발로 서 있다.

상대방이나 타인의 행동과 마음만 살폈지 정작 나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 이름 붙여 보지 못했다.

오답노트를 쓰지 않은 게으름으로 인생수업에서 틀렸던 문항을 계속 헷갈려하는 수험생 같다.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나를 활자화하여 내게 나를 보여 준다.


새벽을 달려 출근을 한다.

첫 티업 6시 38분에 맞추어 가려면 4시에 기상, 5분 화장을 하고 밤새 비워진 위장을 봉지커피로 채운다.

골프장의 특성상 시내와는 떨어진 외곽지에 있다 보니 가는데 소요시간이 새벽이라도 40분은 잡아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경력 캐디들은 자신의 예상팀 티업 시간 1시간 30분 전 회사 도착을 출근시간으로 정한다.

근무 순번이 매일 순환되니  출근시간이 매일 바뀐다. 신입캐디들은 2시간 전 출근을 한다.

 알싸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도로, 신호등에 줄 선  차량들의 브레이크등이 새벽잠을 설친 토끼눈처럼 벌겋다.

이 시간에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시공간을 함께 하는 자들의 애틋한 연대는 밤하늘의 손톱달과 그 옆을 지키는 샛별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회사.

첫 입을 떼며 하는 말.

"안녕하세요?"

"안녕."

"굿모닝, 좋은 아침."

반쯤 감긴 눈에 연신 하품하는 동료에겐 "눈을 떠!"

각자의 방식으로 밤새 안녕을 확인한다. 영혼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기계처럼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누가 나를 보든 말든 나는 의무를 다했다는 것처럼, 마치 지문인식기에 손을 대고 출근을 인정받 듯, 

인사라기보다 인사말을 한다.

각자의 루틴에 맞춰 근무 준비를 한다. 

나도 보온병에 넣을 물을 끓이고 따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미경이 누나, 안녕하세요?"

"응, 안녕. 앗 뜨거워!"

나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다 보온병을 잡고 있던 다른 손에 물을 쏟아 버렸다.

다행히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펄펄 끓던 물이라 손가락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고, 누나. 괜찮으세요? 어떡해요? 데었네! 빨리 찬 물에 손 담가요."

새벽 댓바람부터 난리법석이다.

찬 물이 닿자, 화끈거림이 가신다. 좀 진정이 된 듯하자, 그가 말한다.

"누나, 조심 좀 하지. 어떡해요? 일은 할 수 있겠어요?"

"응, 괜찮아. 많이 데지는 않은 것 같아. 갑자기 네가 내 이름을  불러 주니까 좋아서 쳐다보다가 이리됐다 얘."

비록 손가락은 물에서 나오면 좀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게 뭐라고... 설렜어요? 누나 설마 내가 남자로 보이는 건 아니죠?"

"그럼 네가 남자지, 여자냐!"

실없는 말들이 오고 갔지만 김춘수 님의 시구처럼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마치 꽃이 된 것처럼 내 마음이 몽글몽글 활짝 피어났다.

"잘 지켜보고 심하면 연고라도 발라요."

라고 당부하며 그는 그 자리를 떠났다.

출입문을 나서면서도 마주치는  동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은 새벽 공기처럼 맑다. 그에게 그 의식은 그냥 생활 그 자체인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인사는 내 마음 중심에 잠시 상대를 들여놓는 일이다.

비록 찰나의 시간이지만, 내가 그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알림이자 신호인 셈이다.

모든 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그의 중심으로 끌어들여놓는 일이 과연 가벼운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티업 전 대기장소에 25분 정도 먼저 가서 고객들을 기다린다.

일찍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티업 시간이 임박하여 오는 사람, 여기저기 전화로 연락하여 손님을 찾아 나오게끔 하는 경우도 많다.

으레 그들을 보자마자 인사를 한다.

그들도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 모습들도 각양각색이다.

먼저 호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 인사해도 시큰둥한 사람, 어디서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오는 사람, 그 접점에서 나도 그들의 첫인상을 통해 그들을 가늠하겠지만, 그들 역시 나를 헤아려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전체가 실시하는 정형화된 인사멘트도 있다.

"오늘 플레이를 함께 할 캐디 김미경입니다.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고객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선언문 같기도, 약속 같기도 하다.

 그 인사말은 18홀 동안 캐디들 본인이 자신에게 내리는 지침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한 말에 대한 무게를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폭우가 내리거나 눈 쌓인 벌판을 누비며 일을 하거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고객들을 상대하고 난 날이면 마지막 그린을 홀 아웃하고 나오면서 스스로 소리 내어 말한다.

"수고했다. 미경아."

왼쪽 가슴 위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 자신이 나의 삶에 가장 필요한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느 책에서 옮겨 쓴 잠언과도 같은 글귀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순간에 내가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18홀을 마치고 고객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가던 방향을 틀어 다시금 눈을 맞추고 

머리를 숙이며 "캐디님, 수고하셨어요."라고 해주는 고객들의 인사는  오래 마음에 머무른다.

잠시 모든 걸 멈추고 나를 그의 마음으로 들여놓은 그때, 그 찰나의 마법이 시작된다.

나의 노고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누군가 진정으로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일,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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