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림 문자가 왔다.
우주에서 주문하면 그곳까지도 배송해 줄 것 같은 전자상거래업체의 결재 알림이었다.
이제 고 녀석(?)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우리 집에는 A美京工作所 가 있다. 이름하여 <어메이징 공작소> 한∙중∙영어의 합성어(?)이다.
내 이름 미경(美京)을 중국어로 소리 내어 읽으면 < 메이징>이 된다.
영어의 관사 A와 붙여서 어메이징...‘놀라운’이라는 뜻이 된다.
工作는 일, 직업이라는 중국어, 한자 독음으로 ‘공작’... 뭔가 놀이나 공방을 떠올리게 하는 어감이다.
나는 이 방이 나를 재료로 삼아 생산적인 놀이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참 많이 작위적이긴 하지만, 나름 마음에 든다.
작은 서랍장과 오래된 CD수납 장위에 큰 판자를 올리고 노트북, 책꽂이, 프린터, 스탠드를 올리니 제법 쓸모 있는 공작소가 만들어졌다.
비록 제삿방으로 쓰여 신(神)과 함께 방을 쉐어링(?)하는 중이지만 그래서인가 심적인 안정을 준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물건만을 들여놓을 생각이었는데 차츰 책, 그림도구, 재봉틀, 스쿼트 운동기구, 골프채가 들어와 있다.
청소할 때마다 느낀다.
우리 집을 어지럽히는 건, 바로 나라는 것을.
호기심 충족을 위한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타에 빠져 있을 땐, 각종 악보, 조율기, 교체할 기타 줄과 피크를 사들였고,
40년이 넘은 재봉틀을 어머니께 물려받았을 땐 옷감, 단추, 지퍼 등 부자재가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땐 물감, 붓, 물통, 스케치북 등 업싸이클링에 관심일 땐 재활용품들이 쓰레기 딱지를 떼고 쓰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는 미니멀리즘을 갈구하며 책이나 유튜브를 시청하며 자극을 받기도 했는데, 현실은 완전 딴판이다.
이번엔 쿠키 제빵 만들기다.
그래서 반죽기와 오븐에 넣을 빵틀을 주문했다.
조그만 저울과 유산지도...
앞으로 얼마 동안은 우리 집안이 달콤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할 예정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4차 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며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는 첨단문명에 감탄하면서도 뭔지 모를 불안함에 전 세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몇 해 전 벌어졌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그냥 심정적으로만 느꼈을 불안을 직접 목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골프장도 아날로그 방식에서 어느새 디지털화되어 가고 첨단화되어간다.
말뚝에 숫자를 적어 거리를 표시하여 측정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GPS 수신 측정기, 레이저 측정기로 거리 계측을 한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휴대폰의 기능도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휴대폰과 워치에 그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경기과에서 코스 진행상황도 카트와 연동되어 있어 사무실에 앉아서 파악할 수 있다.
골프백을 실어 나르던 작은 수레도 소형 전기차를 닮은 카트로 변하더니 이젠 캐디가 멀리서 리모컨으로 동작과 멈춤을 관장하는 방식의 전동카트로 발전했다.
언젠가부터 고객들도 하나씩 둘씩 조그만 LCD형 기계를 가지고 왔다.
손목시계처럼 팔에 차기도 하고 남성들인 경우 허리 벨트에 달기도 하고 , 모자에 클립 형태로 끼워놓기도 했다.
일명 보이스캐디라고 하는 것으로 GPS 기능을 이용해 볼과 그린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음성이나 LCD 화면에 거리를 표시해 준다. 도로에서 내비게이션의 그녀처럼 골프장의 그녀가 되어 나를 대신해주었다.
지금은 8,90% 이상의 고객들이 가지고 다닌다.
우리도 순전히 우리의 감각과 경험에 의지하던 데이터들을 기계로 정확히 측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캐디들도 신입 , 경력에 상관없이 거의 휴대한다.
언젠가 연세 지긋한 고객께서 내게 물으셨다.
"언니(골프장에서 캐디를 부르는 애칭), 언니 손목에 차고 있는 거 거리측정기야?"
"네. 그렇습니다.."
"아니, 언니가 그걸 왜 차고 다녀? 보아하니 경력도 오래되어 보이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찌 대답을 할까 망설이는 동안 그분이 답을 하셨다.
"아아! 손님들에게 더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려고 하는 거구먼. 그 기계가 한두 푼도 아닐 텐데 그 마음이 가상하네!"
꿈보다 해몽이라고 오히려 그분의 성정이 느껴지는 해석이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연의 주인공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본인의 일들을 해낸다.
나는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좀 회의적이지만 아무리 인간이 뛰어난 들 기계만큼 정확할까 싶다.
하지만 기계에서 알려주는 소수점까지의 정확한 데이터도 현지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지므로 기계값만을 맹신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골프에선 "감, 느낌"의 영역도 중요하다.
아무리 기계가 경사의 고저까지 파악하여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어도 현장에서 고객들은 "생각보다 멀어 보인다. 가까워 보인다"라고 한다.
이럴 땐 대개 정확한 샷을 구사하기 어렵다.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마음의 핸디"라고 부른다.
알려주는 거리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고객들에겐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핸디도 있는 거니까 그럼 좀 길게(짧게) 보고 치십시오."
그제야 고객들이 안심을 하고 샷을 한다.
길든 짧든 그건 나중의 문제다.
지금 그에게 확신을 심어 주는 일, 선택의 기로에서 살짝 등을 떠밀어주는 것, 그것 또한 캐디의 역할이다.
하지만 프로들은 다르다.
측정기를 사용도 안 하지만(이제까지 내가 만나본 프로들은 그렇다)
페어웨이 곳곳에 스프링클러 고무마개에 그린 중앙까지의 거리가 적혀 있다.
그러면 거기에서 자신의 발의 보폭을 기준 삼아 걸어보며 몇 걸음인지를 파악하고 거리를 계산한다.
그리고 그냥 그 거리에 맞춰 클럽을 선택하고 친다.
그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일까?
자신의 샷을 믿고 주어진 정보만으로 볼을 친다.
그냥 간결하다.
골프장의 잠언과도 같은 어느 유명한 광고 카피.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를 변형한 순간의 선택이 스코어와 그다음에 일어날 재앙과 연결될 수도 있다.
골프장에선 경기자도 캐디도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그 결괏값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이 두려워 선택을 지연시키면 경기자의 근육은 경직되기 시작하고 캐디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가끔은 나의 감각을 믿고 내 몸이 기억하는 감을 따라가는 것도 방법인 듯하다.
나도 아직 프로의 길은 멀었다.
나의 감을 100프로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연령층이 젊은 사람들일수록 이런 장비가 현란하다.
GPS 수신 측정기부터 레이저 측정기, 스윙 교정용 장비들 , 로프 , 방향지시용 스틱, 헤드 무게 증량을 위한 추까지...
아무래도 디지털 세대다 보니 기기를 다루는 능력이 월등하고 빠르며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측정하고 자신의 플레이를 만끽하려는 준비라 여겨진다.
매번 같은 골프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낯선 곳에서 플레이를 하다 보면 캐디 1명이 4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시스템에서 소홀해질 수도 있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자구책이며 홀로서기일 수도 있다.
이런 기기 때문에 처음엔 고객들을 오해한 적도 있었다.
고객들이 물어보든 말든 나는 거리를 미리 알려준다.
하지만, 간혹 고객들이 레이저 측정기로 거리를 측정한 후 캐디인 나에게 거리를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그게 의아했다.
분명 측정값이 나왔을 텐데 굳이 왜 나에게 다시 거리를 묻는 것인지, 나를 테스트해보려는 의도인가라는 다소 불쾌한 감정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나를 테스트하는 거냐고 당돌하게 물을 수도 없는 터, 그냥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매번 고객과 답안을 맞춰보는 야릇한 긴장감... 어쩌면 그 긴장이 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본다.
한참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간혹 측정기 사용 시 찍는 피사체의 중심점을 기기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기계들이 오류 값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고객들이 자신이 직접 거리측정을 하고 샷을 한다.
그 볼이 그린을 벗어나 아웃이 되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캐디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거리가 맞는지를 확인한다.
그럴 경우 그 오차가 20M 이상 차이가 난다 던 지 하여 볼이 사라져 버리는 참사를 종종 보았다.
그제야 찍는 것이 불확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현재 내가 측정기를 계측을 할 때도 그 거리가 내가 생각한 거리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 육안으로도 대강의 거리를 알고 있기에 계측기의 오류를 파악해낼 수 있지만 우리 골프장이 처음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므로 본인이 도출해낸 값이 맞는지를 캐디에게 확인해 보는 것은 캐디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휴대하고 있는 측정기나 본인의 계측 스킬을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캐디도 측정기를 사용한다.
나 역시 그렇다. GPS측정기와 레이저 측정기까지...
캐디에겐 참고용이다.
오랜 시간을 해 왔으나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간혹 틀리기도 한다.
고객들이 그걸 알든 모르든 나 자신만큼은 안다.
취미 부자인 내 삶에 동원된 도구들.
내 시간과 노력, 돈을 들여 완성시켜낸 결과물들에 모두 만족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도구들이 최고급 사양이 아니라서 결과물들이 그다지 시원치 않은 것인지, 아니면 나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하여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4B연필 하나만으로도, 손바느질만으로도 작품은 탄생할 수 있다.
10단계의 음영 단계를 착실히 그려왔다면,
옷감 위에 선을 그리고 그 위에 한 땀 한 땀 바늘 길을 놓아 왔다면...
Simple is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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