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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Oct 05. 2022

오늘도 고생했다. 내일도 잘 부탁해

 아버지는 기능직 공무원이셨다.

 관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직의 보직을 맡았다.

정년퇴직을 하면서 퇴직금으로 아버지는 개인택시 면허를 사서 택시 영업을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공무원 연금도 받고  자식들도 다 자라 결혼도 하고 취업을 하여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는데도 마치 사납금을 맞추어야 하는 회사택시 기사처럼 밥때를 놓치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며 일을 계속하셨다.

어머니와 자식들의 걱정스러운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활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밤마다 집 앞을 지키는 보초병이 되어야 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아버지의  택시를 주차하기 위한 자리를 사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차 콘도 세워보고 물통에 물을 넣고 세워도 봤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치워서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가버렸다.

영업용 택시라 아무 곳에 주차할 수도 없다.  

지근거리에 공설운동장이 있어 부설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싶어도 영업용이라 적발 시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마당이 좁아 자기 주차장을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니 매일 밤, 주차구역을 사수하기 위한 방법들이 동원이 되었다.

동생의 자가용을 미리 세워두었다가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동생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아버지가 그곳에 주차를 한다. 만약 동생이 저녁 약속이라도 있어서 주차자리가 없으면 그날은 아버지가 온 식구에게 짜증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밤에 엄마가 밖에 나가 그 자리를 지키기까지 하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되풀이되는 웃픈 상황.

대안이 필요했다.

새로운 보초병의 등장.

 작고 낡은 스쿠터가 아버지의 택시가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터를 잡은 것이다.

중고거래로 사 오셨다고 한다.

기발한 건지 무모한 건지 헤아리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겐 고육지책의 방법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불편을 가져오는 일, 맘은 편치 않았다.

 동네 주민들께는 미안하다. 스쿠터도 자기가 그렇게 쓰일지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스쿠터는 그야말로 우리 집 망부석(望父石)이 되었다.

그런데 별안간, 아버지는 자식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택시와 개인 면허를 팔아버리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택시는 우리 집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매일 저녁 주차전쟁을 막기 위한 보초병인 작은 스쿠터만이 이젠 장군인 양 한자리에서 미동도 없다. 차량 정비소에 들어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와는 상의를 한 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자발적 퇴사는 많은 의문을 남겼다.

아버지는 진짜 속내를 보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것을 기피하는 암묵적인 사회분위기로 조촐한 퇴임식도 해 드리지 못했다. 단체 모임 금지라는 이유로  그때를 한참이나 놓쳐 버려 돌리기에는 오히려 어색해져 버린 감사와 위로의 시간. 그동안 당신의 노고에 대한 쓰다듬의 자리를 마련치 못한 죄책감에 내뱉는 숨이 무겁다.


 내게도 그런 차가 있다.

심지어 자동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하는 리모컨도 있다.

회사 전동카트이다.

비록 <내 돈 내산> 차량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개별로 캐디에게 차량을 지정해준다.

그냥 지정 없이 근무 순번대로 매일 카트를 바꿔서 근무를 나가는 운영방식의 회사들도 있다고 한다.

참 많이 번거로운 작업이다. 그 방법은 카트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카트에는 생각보다 많은 살림살이(?)들이 실려있다.

한 번씩 카트 대청소를 위해 카트의 물건들을 꺼내보면 적지 않은 물품의 양에 놀랄 때가 많다.

음수용 생수, 종이티슈, 물티슈, 손소독제, 반짇고리, 손톱깎이 세트, 스코어카드, 12색 네임펜, 볼 라이너, 땀 타월, 볼타 월, 우천용 비커버와 시트커버, 우천용 그립 커버, 우천용치마, 당 보충을 위한 사탕(당뇨 환자 대비 필수 비치용), 게임용 뽑기, 고객 접대용 커피와 차, 종이컵, 컵홀더,  게임머니용 클립, 스피어 볼, 클럽 세척용 물통, 배토용 모래주머니, 휴지통 등 고객들의 편안한 플레이를 위한 캐디들의 세심한 마음이 실린다. 웬만한 수술도 가능할 것 같은 응급키트엔 뱀에 물릴 것을 대비한 고무줄도 있다.

야외다 보니 벌들의 공격도 대비해야 한다. 알레르기 약도 필수다. 아나필락시스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환절기엔 알레르기 비염환자들도 많아서 이를 찾는 고객들도 심심치 않다.

그 외에도 지사제, 소화제, 근육이완제, 진통제, 종합감기약, 연고, 파스 등을 비치한다.

주기적으로 약의 유효기간도 확인한다.

우리 회사에선 아직 뱀에 물리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었지만, 여름에는 자주 그들과 예기치 않는 만남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경기자의 볼이 깊은 러프나 숲으로 들어가 볼을 찾으러 갈 경우, 반드시 주의를 준다.

"고객님, 절대 빈 손으로 러프에 들어가시면 안 돼요. 클럽 하나는 꼭 가지고 가시고 그냥 맨 손이나 발로 풀을 헤집으시면 안 됩니다."

"어머, 여기 제주도도 뱀이 있어요?"

"화산섬에는 뱀이 없다고 하던데..... 하와이는 뱀이 없잖아요?"

갑자기 국민학교 시절, 제주도 한라산이 휴화산이냐 사화산이냐 하며 갑론을박하던 게 생각났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한 건 제주도에 뱀은 있다는 사실... 그것도 많이.. 왜냐 내가 거의 매주 만나니까....

해충 방지용 키트와 까마귀 퇴치용품도 가지고 다닌다.

고객 접대용 커피나 녹차 종류는 다른 지역에선 캐디들이 제공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각 골프장에는 레스토랑과 그늘집이 있고, 회사 매출과도 관계되는 것이라 회사에서 이를 제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도는 그리 엄격하지 않은 듯하다.

제주도 골프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리고 골프가방이나 파우치에 1회용 커피를 몇 개씩 넣고 다닌다고 하며 커피를 꺼낸다.

지금은 믹스 커피니, 원두 커피니 하며 커피도 여러 풍미와 기호에 따라 세분화되고 기성화 되어 출시된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직접 캐디들이 커피를 보온병에 타서 가지고 다녔다.

둘둘셋, 둘둘둘의 조합. (커피, 프림, 설탕의 조합)

 믹스커피라는 말보다는 다방커피, 양촌리 커피가 친숙한 말, 제주에선 잔칫집 커피라 한다.

커피, 프림(프리마), 설탕의 황금비율은 캐디의 손끝에 달려 있다.

전동카트가 없던 시절, 캐디가 캐디백이 실려진 수레 카트를 끌고 고객이 밀며 다니던 때에 숨 한 번 몰아쉬고커다란 능선을  넘어서 따라 마시는 그 달달 구리 커피는 경기자와 캐디가 함께 고행길을  건너온  찐득한 정이 더해져  더욱 달큰했다.

별다방 커피가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한살림이 차려져 있는 카트는 매일 근무가 끝나면 카트고에 마련되어 있는 세차장에서 세차를 한다.

물세차는 기본이고, 고객들의 신발 자국을 매직 스펀지로 닦아내고 소독제를 뿌려 소독을 한다.

지하에 카트를 주차하다 보니, 장마철이나 습하고 비 오는 날이 많은 계절에는 맑은 날이면 지상으로 카트를  올려 일광욕을 시키기도 한다.

타이어 공기압도 주기적으로 캐디들이 점검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캐디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비치된 물품들의 재고를 확인하여 보충하고 카트 내 거울이나 앞면 아크릴 창을 극세사 타월로 닦는다.

카트의 청결과 정돈 상태는 캐디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할 수 있다.

처음 고객들과 만나고 그들이 시선이 닿게 되는 곳인 만큼 세심하게 체크해야 할 부분이다.

카트 내부 앞쪽에 카트 번호와 함께 카트 담당 캐디의 이름, 곧 내 이름이 붙어 있다.

내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건, 기본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넓은 광야에서 나를 돕는 건 나 혼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찌 됐든 나는 고객들과 함께 경기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고객과 내가 쾌적한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소리 없이 나의 손발이 되어 주는 고마운 꼬마차.

늦은 저녁, 36홀 2라운드를 마치고 젖은 물기를 닦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너도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 내일도 잘 부탁해."

비록 기계 덩어리에 불과할지 모르나, 나와 함께 비와 바람을 맞으며 내 밥벌이를 위해 달려주는 고마운 조력자. 나의 정성과 마음을 싣고, 설레는 고객들의 희망도 싣고 달린다.


아버지의 개인택시도 그랬겠지.

고객의 무사와 자신의 무사를 함께 기원하며 각각의 목적지까지 향하던 길.

아버지도 매일 밤, 집 앞에 주차를 하며 조용히 말을 했을지 모른다.

"오늘도 고생했다. 내일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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