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 있고 싶어

집순이의 역사

by 모모루

혼자 있고 싶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고립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는 철저히 짓밟힌 유년기를 보냈다. 누군가와 방을 함께 써야 하는 운명적 굴레를 뒤집어쓴,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 살 터울의 언니가 대학 기숙사로 떠났을 때, 잠시나마 독방을 쓸 수 있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부모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방문을 닫고 있는 것을 일종의 반항이라 여겼다. 문을 닫고 있으면 일부러 문을 벌컥벌컥 열고 감시를 했다. 나는 딱히 큰 말썽 부린 적 없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는데도 그랬다.

어린 시절, 집은 전혀 편안하거나 안락한 공간이 아니었다. 지옥 같던 입시가 끝나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잘 때를 제외하고 거의 집을 떠나 있었다. 난생처음 얻은 얄팍한 자유를 누리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부모가 상주해 있는 집보다는 밖에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동아리 방에 죽치고 앉아 하릴없이 수다를 떨고, 대학가 번화한 거리의 인파를 헤치고 다녔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은 거의 매일 마셨는데, 취기가 돌아 곤두서 있던 감각들이 무뎌지면, 수시로 밀려드는 피로감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기분을 잠시나마 떨칠 수 있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둠이 내린 골목길을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어디든 지친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집에 당도하는 순간 따위 영영 오지 않았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이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난생처음 가족과 완벽히 분리되어 혼자 살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외국이었다.

나는 변화, 도전, 모험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남들은 설레고 기대감에 떨린다는데 나는 두렵고 긴장돼서 떨렸다. 단 한 가지 위안은 마침내 혼자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은 미국 동부에 자리한 오래된 도시였다. 평일 오전에는 지역 대학에 부설되어 있는 어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들었다. 오후 2시쯤 수업이 끝나면 다양한 나라에서 온 동급생들은 너도나도 짝을 이뤄 놀러 다니기 바빴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뒤로 하고 늘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때 나는 캠퍼스로부터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시내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도시만큼이나 연식이 오래된 삼층짜리 건물 이층 구석에 내 자취방이 있었다. 화장실과 싱크대가 딸린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방이었다. 나무 바닥은 닳고 닳아서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반질반질 윤이 났으며 발을 디딜 때마다 삐꺽 대는 소리가 났다. 창가 아래 설치된 고장 난 라디에이터는 온도를 최대로 올려도 미적지근하여 겨울 내내 집안에서도 두꺼운 점퍼를 벗지 못했다. 나는 학교를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바깥세상은 한없이 낯선 타국이었지만 춥고 낡은 그 방만큼은 온전한 나만의 세상이었다.





언젠가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말을 트게 된 한국인 동급생 하나가 수업이 끝나면 왜 맨날 집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현지인과 대화도 많이 해야지 영어가 늘지 않겠어요? 좀처럼 없는 기회인데..."

나보다 네 살 어린 여학생은 대학 졸업을 일 년 남겨놓고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지난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뉴욕에 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았고, 다음번엔 애틀랜틱시티에 가서 카지노를 구경할 거라고 했다. 여기 있는 동안 한국 사람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고 무조건 외국 친구들만 사귈 거라고, 한국 사람인 내게 한국말로 아주 야무지게 말했다. 그 애 입장에서 보면, 영어를 배운답시고 여기까지 와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둘러댈만한 적당한 핑곗거리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좀 혼자 있고 싶어.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중요해.'

솔직히 답했다면, 그리하여 마음속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았다면, 나는 어쩌면 더 이상한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이 도시의 서글픈 가을 정취와 정오에 울리던 성당 첨탑의 종소리와 호숫가 미술관 이층걸려있던 라울 뒤피의 푸른 빛깔 흐드러진 그림과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슬펐던 건, 내 작은 자취방과의 작별이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1화반경 5 km의 해외 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