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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Jul 14. 2022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여섯 번째 이야기

생이 지속되는 동안 모든 삶은 갖가지 의미로 충만해진다. 그렇게 본연의 의미로 밀도 있게 채워졌던 누군가의 삶은 마치 증발한 듯 온데간데없는데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듯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모든  그대로인데 딱 사람 하나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 현장을 목도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냉장고를 열자 알로에 베라 겔 한 상자가 눈에 띄었다. 서른 개 들이 상자 안에는 알로에 파우치가 스물세 개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그 서른 개 중 일곱 개밖에 채 먹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연채 한동안 그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집은 방 두 개와 화장실 두 개가 딸린 작은 아파트였다. 부엌과 거실이 팔각형 모양 안에 딱 절반 씩 차지하고 있었고 거실 옆 쪽으로는 아담한 테라스가 달려있었다. 혼자 살기에 꽤 넉넉한 크기의 낡았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집이었다. 앞으로는 언니와 내가 지낼 곳이었다. 할머니가 쓰던 안방은 언니가 쓰고 작은 방을 내가 쓰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풀기 위해서는 할머니의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수납장들을 비워야만 했다. 혼자서는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고, 모든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과 그대로라고 언니는 말했다. 나는 그동안 조금씩이라도 정리를 하지 그랬냐고 언니를 타박했다. 그러나 막상 옷장과 서랍과 창고와 부엌의 찬장을 차례로 열어본 뒤 도저히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언니의 말이 일순 이해가 갔다. "노인들은 왜 물건을 버리질 않을까?" 필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든 수납장약간의 빈 공간도 허용하지 않은 채 구석구석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특히 큰방과 작은 방의 벽 한쪽씩을 차지하는 커다란 붙박이장에는 옷가지가 빼곡히 걸려있었는데 그 촘촘한 옷들 사이에서 대체 어떻게 옷을 고르고 꺼내 입었는지 미스터리할 정도였다. 을 모두 꺼내 놓자 거실 중앙에는 거대한 산이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두루마리 형태로 감아 놓은 천과 각양각색의 단추였다. 작은 방 한편에 발로 페달을 밟아 작동시키는 아주 오래된 구식 재봉틀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아 할머니의 취미가 재봉틀 만지는 이었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천과 단추의 수는 매년 수십 벌의 옷을 지어 입어도 다 쓰지 못할 만한 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옷장에서 나온 수많은 옷 중에서 기성복이 아닌 옷은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할머니, 솔직히 옷을 직접 만들어 입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토록 많은 천과 단추를 모았나요?" 나는 속으로 또 물었다.





위에 열거한 물품을 제외하고도 할머니의 "수집품"은 쏟아져 나왔다. 물론 할머니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무조건 보관한 것이지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취향을 가지고 수집한  경우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더기로, 집안 곳곳에 쌓여 있었으므로 "수집"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적당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할머니의 "수집품"은 신발부터 액세서리, 오래된 한복(무려 45년 전 그녀가 내 부모님 결혼식에서 입었던 한복까지 포함하여), 이불과 담요, 콘솔이나 장식장 선반에 까는 하얀 레이스 깔개, 손뜨개한 컵받침과 수세미, 하다못해 쿠키나 캔디가 담겼던 양철로 만들어진 깡통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언니와 나는 그중 쓸만한 물건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사실 죄다 너무 구닥다리여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불을 정리하다가 비닐에 꽁꽁 싸여 있는 뭉치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 보자 안에는 얇은 삼베로 된 여름 이불이 곱게 접혀 있었다. 섬세한 자수가 귀퉁이에 수놓아져 있는 아주 질 좋은 삼베로 만들어진, 약간 도톰하고 빳빳한 재질의 침대나 요 위에 까는 용도의 깔개와 얇으면서 부들부들한 촉감의 덮고 자는 용도의 이불이 각 두 채씩 들어 있었다. 딱 보아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것이었다. 삼베는 붙박이장 구석진 곳에 두껍고 무거운 이불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할머니는 아마도 저것의 존재를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 좋은 삼베 이불을 할머니는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구나. 잠깐 동안 허무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의 유품은 대부분 버려지거나 중고물품을 기부받는 업체로 넘어갔다. 한때 누군가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물건이, 그래서 마음껏 쓰지도 못하고 아껴뒀던 것이, 한순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광경바라보고 있노라니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도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면 냉장고 자석이나 기념품 컵 등을 습관처럼 샀고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가면 전시 관련 포스터나 엽서, 책갈피를 사서 모으곤 했다. 특별한 장소를 추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물건을 실생활에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실제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이라 하더라도 아낀다는 명목 하에 그저 상자나 서랍 속에 모아두곤 했다. 그렇다면 애초의 목적대로 수집품을 꺼내 옛 추억을 되새겨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하면 사실 별로 없었다. 돌이켜 보건대 정말로 상자나 서랍을 열고 시간을 들여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과거를 곱씹어 보는 행위를 일부러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물건을 볼 때마다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내 삶에 대단히 큰 의미나 특별한 감동을 가져왔느냐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그것이 현재의 내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삼베 이불을 아마도 더 특별한 순간에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지도, 고급 이불을 평상시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 버리자니 어쩐지 낭비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꽁꽁 싸맨 채 깊숙이 보관만 해놓은 것인지도.

물건을 모으는 습관은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자꾸만  자신을 갖다 두는 습관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했다. 필요한 순간에 그 물건을 온전히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건의 기능이 주는 편리함 같은, 삶의 질을 높여 주는 모든 장점을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감상하기가 살아가는 데 있어 작게나마 기쁨과 위안이 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변명 같은 생각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물건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소비되고 훼손되는 자원과 그것이 종래에는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부정적인 요소를 고려해 보았을 때 작은 심적 만족감을 포기하는 쪽이 세상에 더 이롭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역시나 물건 수집은 그만두어야겠다는 결론이었다.





유품 정리 외에도 나는 할머니의 은행계좌를 닫고 전기나 수도요금의 고지서를 정리하고 명의를 바꾸는 등 잡다한 업무를 해 나갔다. 사실 고인의 신변을 정리하는 경험은 이태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이곳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이었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캐나다의 행정처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느리고 원시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바로 의사소통 문제였다. 친절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이곳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상 밖의 냉대를 보여주곤 했다. 나는 이 점이 좀 당황스러웠는데 수많은 이민자가 넘쳐나는 이 나라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차별적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트 계산원이나 가게 점원, 식당 종업원, 콜센터 직원 등,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조차도 영어를 못하는 고객은 무시하거나 불친절했다. 어떤 나쁜 사람들은 영어를 어버버 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모자란 사람 취급하고 몹시 무례하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더 자괴감에 빠지게 한 것은 빈약한 영어실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차 나는 그들에게 따끔하게 따지거나 제대로 맞설 수 없었다. 나는 종종 한국말로 유창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조곤조곤 반박하여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매번 우울했고 앞으로 이 나라에서 이런 영어실력으로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가며 잘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곤 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영어와 씨름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단 한마디도 입을 열고 싶지 않을 만큼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나는 누군가에게 신세 한탄 같은 것을 좀 하고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리곤 했다.

할머니, 왜 이곳으로 왔나요? 왜 한국을 떠나고 싶었나요? 여기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만족했나요? 그럭저럭 살만은 했는지, 많이 외롭지는 않았는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지는 않았는지, 혼자인  무섭지는 않았는지. 

나도 혼자서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할머니처럼? 이 낯선 나라에서, 앞으로 이어질 내 삶에서, 나도 할머니처럼 용감하고 거침없이 그렇게 살아 낼 수 있을 까요?

그녀라면 답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도 아니면 어떤 현명한 지침을 줬을지도. 할머니가 살아있을 때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이곳에서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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