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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Jun 28. 2022

이민을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건가요?

다섯 번째 이야기

할머니는 수중에 남아 있는 재산을 비교적 공평하게 분배하여 아빠와 고모에게 남겼다. 그러나 캐나다 서쪽 중소도시에 위치한 방 두 개 딸린 아파트, 그러니까 할머니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아파트는 언니 앞으로 남겨졌다. 손녀가 정착할 때까지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할머니는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 졌을 때 우리 가족은 숙연해졌다.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다들 느끼고 있었다.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밀려드는 겸연쩍음, 약간의 죄책감, 후회 같은 감정들.

반면 고모는 이 상속에 관해 분노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어디선가 굴러들어 온 돌 같은 존재나 다름없는 조카가 아파트를 중간에서 가로챈 거나 다름없었다. 고모는 응당 그 아파트가 할머니와 더 가깝게 지냈던 자신의 자식들 중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마다 올망졸망한 증손주들을 데리고 찾아가 할머니의 적적함을 덜어주었던 자신의 큰딸이나 다나라로 비행을 갔다 올 때마다 이국적인 선물을 사다가 할머니에게 안겨주었던 항공사 승무원인 둘째 딸이나 가끔 할머니를 태워 성당에 모시고 갔던 막내아들이, 평생 별다른 왕래도 없던, 단지 그 시기에 몇 달 같이 산 것 말고는 할머니의 삶에 아무것도 기여한 바 없는 조카딸보다는 그 아파트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 고모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그렇듯 어떤 사건은 그 누구의 의도와 상관없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지기도 한다. 유산과 관련하여 전혀 기대한 바 없었던 언니 또한 얼떨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아파트는 그런 식으로 언니에게 남겨졌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한국으로 돌아온 아빠는 나에게 캐나다로 건너가 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빠는 언니 혼자 타국에 남겨두고 오는 것을 못내 마음에 걸려했다. 아파트 상속 문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고모네에게 언니를 부탁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혼자보다는 두 딸이 함께 의지하며 지내는 편이 자신의 걱정을 덜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어땠느냐면, 부모님 입장에서 봤을 때 캐나다에 가기 전의 언니보다도 더 처치 곤란하고 골치 아픈 존재로 전락한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집 둘째 딸은 요즘 뭐해?"라든가 "시집은 안 가고 뭐한대?"와 같은 질문들을 듣게 만드는, 더 정확하게는 그런 질문에 단 한 개라도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답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래서 매번 난감함을 안기는 그런 자식이었다는 것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나도 캐나다로 떠나는 편이, 그래서 "걔는 캐나다에 살고 있어."라는 면피용 답변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일련의 것들에 대해 어떤 항변이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아빠의 걱정은 사실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루저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도, 그래서 스스로도 그런 처지가 부끄러워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인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이민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누군가는 몇 년에 걸쳐 고민을 하고 결정을 번복하기도 할 것이다. 숙고 끝에 마침내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또다시 몇 년에 걸쳐 준비를 하고 대비책을 간구하는 것이 이상적인 절차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나는 이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민을 결정한 것이 과연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 선택이 조급하고 경솔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훗날 이 결정을 대단히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민을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막상 떠오르는 이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앞에 언급한 고민들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사건과 결정이 그 누구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대단히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생이 이처럼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밀려들어오는 파도 위에 올라타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떠밀려 가는 것뿐이다. 언니가 예상치 못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그리고 그 여파로 사뭇 등 떠밀리듯 갑작스럽지만 이토록 당연하게 나의 캐나다행이 결정된 것처럼.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나는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열한 시간의 긴 비행 끝 캐나다 서부에 위치한 공항에 당도했을 때는 이제 막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였다. 공항 안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였고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한 줄은 길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어리둥절한 채로 사람들을 따라 그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별안간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수화물 컨테이너 벨트 앞에서 짐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까지도 나는 이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토록 친숙한 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이 냄새가 오래전 어학연수로 일 년 정도 머물렀던 미국에서 맡았던 냄새와 동일한 것임을 깨달았다. 미국의 오래된 목조건물에 들어설 때나 낡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날 때면 항상 이 냄새가 났었다.(이 냄새의 출처는 사실 북미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특정 브랜드의 청소용 세제였다.) 오래전 미국에 잠시 머물렀을 때 맡았던 냄새를 캐나다 공항에서 맡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짧게나마 경험했던 예전 미국 생활이 되살아났고 결국 캐나다도 미국과 같은 북미 아니던가 라는 생각에 그렇다면 이곳이 아주 낯설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과 안도감이 솟아올랐다. 무언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경했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기억들이 되살아 났으며 떨림과 기대와 두려움과 호기심이 마구 뒤섞인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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