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두운 구석이나 미로, 막다른 골목, 깊은 우물, 그리고 굳게 닫힌 시커먼 문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 다른 문명과 접촉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까지 진출하고야 말았다.
p.348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 인간중심적 외계생명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벗어난 작품을 읽고 싶은 분
- 타자(他者)와의 접촉, 교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
-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고민이 되는 분
책을 만나기까지
취미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가 과학소설 수집이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보곤 했으나 생각보다 소장하고 있지 않은 작품들이 있었다. 대출을 하더라도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책의 보존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책에 온갖 메모나 밑줄이 그어진 대출 도서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부분에 쳐진 밑줄이나 메모는 나의 독서흐름과 감상을 미리 정해진 길로 끌고 가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건 마치 영화관에 같이 간 동행자가 자신의 영화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 끊임없이 옆에서 조잘대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책이 찢어져있거나 구겨지고, 온갖 얼룩이 져있으면 내 눈도 흐릿해진다.
개인 소장도서라면 몰라도 공공의 다수가 돌려보는 책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 경험의 반복을 줄이고 싶어 한 권 두 권 직접 신간이나 중고서적을 구매하기 시작한 게 점점 늘어났다. 책장에 보관만 해놓고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쌓여간다. 독서모임을 빌어 묵혀가는 책을 꺼내 들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민음사의 스타니스와프 렘 선별집 3권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형광에 가까운 강렬한 색감이 책장에서 빛을 발한다. 마침 한동안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읽어온지라 동구권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다. 표지의 강렬함과 달리 책은 끝없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여정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이웃
솔라리스는 표면 대부분이 바다로 뒤덮인 행성으로 두 개의 태양이 마주하고 있는 쌍성계에 속해있다. 천문학자들의 계산대로라면 별들의 중력으로 인해 솔라리스는 점차 궤도가 안으로 굽어져 태양에 흡수될 운명이다. 그런데 행성의 궤적을 계산하여 추정해 보니 당초의 계산과는 달리 솔라리스는 원형 궤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솔라리스가 태양에 빨려 들어가는 걸 무언가 막고 있었다.
의문의 현상에 탐사팀이 파견되어 확인해 보지만 행성 수준의 중력을 바꿀 만한 인위적인 기술력이나 자연의 힘은 관측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의심스러운 후보는 행성을 구성하는 어마어마한 질량의 검은 바다뿐. 파견팀은 이 바다가 지구와 같은 물이 아닌, 유기물로 가득한 하나의 거대한 젤리 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그 자체가 세포이자 생명인 단일 유기체다.
흥분한 지구의 온갖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분야 지식과 이론을 들고 와 외계 생명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존재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바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 걸 넘어 과연 인간이라는 외부의 존재를 인지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솔라리스는 인간의 수많은 실험에 대해 첫 시도에만 반응을 할 뿐, 두 번째부터는 질린다는 듯 무시해 버린다.
당연한 일이지만, 연구의 초기 단계에 과학자들은 이 미모이드가 솔라리스 바다의 중심이자, 그토록 갈망해오던 두 문명 간 접촉이 실현되는 증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과학자들은 접촉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모이드의 모든 활동은 그저 복제로 시작해서 복제로 끝났다. 그것은 아무 의미도 개연성도 없는 단순한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p.254
그저 단순한 자연현상이나 무정물이라고 간주하기에는 솔라리스의 바다는 끝없는 창조와 파괴의 활동을 반복한다. 점액질의 물결은 상상으로도 떠올릴 수 없는 여러 기하학적인 대칭 또는 비대칭적인 형상을 만들어냈다가 실망한 도공처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매 순간, 단 한 번도 동일하지 않은 새로운 조형물이 몇 km에 걸친 거대한 크기로 구현되지만 인간은 그 현상의 근원도, 현상의 너머에 있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바다는 인간의 모든 소통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듯 침묵한다.
존재로서의 자기 유지만 반복하는 바다에 점차 과학자들은 관심을 잃는다. 지적인 생명체를 기대한 인간의 희망은 실망을 넘어 분노와 경멸로 변해간다. 열과 성을 다해 호감을 표시한 상대의 무관심에 태도가 돌변하는 짝사랑이나 경외감처럼, 학자들은 이제 바다의 '가치'에 대한 증명에서 '무가치함'으로 초점을 옮긴다. 이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짓밟겠다는 듯이. 바다는 교감의 대상에서 의식 없는 과거의 잔해로 격하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솔라리스의 바다라는 것은 수천 년 전에 이미 발전의 정점에 다다른 유기체인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형체는 물리적인 통합체의 잔해에 불과하며, 그것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형성체로 분해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p.370~371
우리는 외부의 존재에 대해 대상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의미를 통해 인식한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인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는 개체이지만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가족, 친구, 연인, 동료가 된다. '나'와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은 인연이 되지만, 그 밖의 모든 길거리의 인간은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다. 존재에게 있어 의미란 그물과도 같다. 그물 안에 들어온 물고기는 내 것이지만, 그물 밖의 물고기는 자연물이자 사물일 뿐이다.
존재와 의미의 경계는 바다-인간만이 아니라 소설의 주인공 캘빈의 무대에도 적용된다. 캘빈은 솔라리스의 연구원으로 지구에서 파견되어 기지에 도착한다. 자동화된 기지에 인간이라고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연구원들은 각자의 업무와 관심사 외에는 서로 소통할 이유가 없다. 캘빈이 남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듯, 남도 캘빈에게 동료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솔라리스에는 인간들이 있지만 정작 그곳에는 인간이 없다. 사람(人)의 사이(間)가 없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 자기 전공분야의 지식과 경험으로 솔라리스를 설명해 보려 애쓸 뿐이다. 기지의 인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건 옆방의 사람 대신, 무정하게 자기 창조-분열을 반복하는 아메바의 바다뿐이지만 정작 그 바다 또한 그들에게 무관심한 역설의 구도가 반복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외계생명 또는 외계문명에 대한 매체의 묘사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임을 짚는다. 인간에게 적대적이건 또는 우호적이건 가상물속의 외계의 존재들은 우리와 어떤 식으로든 소통을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무력을 통해서든, 또는 교감과 우정을 통해서든 주도적 위치에서 외계의 의미를 받아들인다. 선진화된 문명이라면 그들이 인간과 비슷한 사랑, 우정, 평화와 같은 가치를 함께 신봉하고 공유할 것이라고 가정하게 된다.
하지만 외계의 존재에게는 우리가 또 다른 '외계'이며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에게 무심함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동식물과 자연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에게만 설명할 뿐 인간에게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의미의 그물을 벗어나면 바로 옆의 존재에게도 무심한데 솔라리스의 바다가 왜 인간에게 관심과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인간이 우주와 자연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우리는 대우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는 자기 착각으로 인해 때론 멋대로 실망하고 화내고 짜증 내고 갈등을 빚는다. 솔라리스는 우주의 진공처럼 차디찬 무정함만이 우주 어디에나 통하는 보편성임을 증명한다. 당신의 의미가 당신이라는 존재와 같지 않음을.
존재의 의미론과 인식론에 대한 주인공의 설명을 읽다 보면 자신이 소설을 읽고 있는지 또는 철학을 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더 이상 연구소도, 지구도, 솔라리스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물음만이 머리에 남는다.
'나'는 무엇인가?
'나(인간)'는 특별한 존재인가?
'나'라는 존재 자체 때문에? 아니면 '나'를 둘러싼 의미 때문에?
유일무이한 존재
행성을 연구하던 캘빈은 문득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는다. 분명 방 안에는 자신밖에 없으며, 이 시설 안에는 자신을 포함해도 5명도 안 되는 인원뿐이지만 어떤 존재감을 인지한다. 불안감 속에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캘빈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 안에 연인 '하레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본다. 하레이는 이미 오래전 지구에서 사별한 지 오래다. 그렇기에 캘빈은 자신이 지금 인지하는 현실이 진짜가 아니라 꿈이라고 여긴다. 아주 오랜만에 사랑하던 사람을 만나는 생생한 꿈.
하지만 현실과도 같은 생생한 감각뿐만 아니라, 죽어서 묻혀 있는 하레이가 알 턱이 없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과 정보들을 말하자 캘빈은 혼란에 빠진다. 자신의 의식이 깨어있는 지금 이 순간이 허구가 아니라면 하레이가 죽은 과거가 거짓이란 뜻인가? 혹시 자신도 모르게 오랜 세월 정신병이나 환각에 지배당해 온 것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라는 두 사실이 모두 진실임에도 그 둘이 상반될 수 있는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고정불변의 앎이 근본부터 뒤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의 하레이는 몸의 세밀한 흔적부터, 기억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하레이와 동일했다. 하레이의 모든 육체와 정신의 증거가 기억과 맞아떨어질수록, 눈앞의 하레이가 그의 기억 속 하레이와 일치해갈수록 꿈이라고 믿어 온 그의 확신은 줄어든다. 행복한 꿈은 점점 이해불가한 현실로 바뀐다. 그는 꿈을 꾸고 있지 않았음에도 꿈을 꾸었고, 다시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줄어든 확신의 자리에는 기쁨보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퍼져간다. 하레이가 반박불가한 물리적인 실체로 자리매김할수록 그의 기억 속 하레이에 대한 감정은 위태로워진다. 사랑과 기억이라는, 가장 깊고 개인적이기에 가장 확고한 진실마저 불확실하다면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하는 수 없었다. 끝까지 이 꿈을 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유쾌했던 기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두려웠다.
p.119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캘빈은 자신의 이정표가 모두 사라져 허허벌판에 놓인 그 순간, 눈앞의 하레이에 의지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고립된 환경에 놓인 그에게 '하레이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매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구와 자신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하레이는 표정과 목소리, 육체까지도 동일한 존재였고 오로지 그 인식을 방해하는 건 캘빈 본인의 거부감뿐이었다.
솔라리스라는 이해불가의 환경 속에서, 연구소의 고립감 속에서 캘빈은 하레이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라는 모순된 두 감정을 모두 수용하기로 한다.
그 순간의 내 심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었다. 잠자코 서 있다가,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자리에 앉았다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진짜 하레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두려움보다 강하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에는 눈앞의 이 여자가 몇 가지 독특한 표정과 몸짓, 동작으로만 한정된, 하레이의 단순화된 버전인 것처럼 느껴졌다.
p.128
캘빈은 이후에도 여러 사건에서 때론 하레이에게 안정감을 느끼다가도 그녀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어떤 이질감을 발견해 두려워하기를 반복한다. 이 기묘한 동거의 오랜 반복 속에서 캘빈은 점차 눈앞의 하레이가 조금씩 기억 속 하레이와 멀어지고 있음을 눈치챈다. '하레이처럼 보이던 것'은 모방된 하레이에 불과했지만 시간의 경과와 그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점차 '다른 하레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불편함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레이가 하레이가 아니게 될수록, 그녀는 그에게 다른 존재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을 계속 괴롭히던 과거의 하레이는 이미 죽었기에 캘빈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캘빈이 괴로운 이유는 오직 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망령과도 같은 기억 때문이다. 반면, 지금 눈앞의 하레이는 원본과 같지 않기에 오히려 고유한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진짜 하레이였다면 하지 않았을 말들과 행동을 했고, 그녀와의 동거는 과거라면 생각해 볼 수도 없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하레이는 원본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고 하는 반면, 과거의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건 캘빈 본인이었다. 그 과거의 기억은 캘빈 자신의 인식 안에 머물러 있을 뿐, 복제된 하레이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비로소 캘빈은 자신이 모방된 하레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녀의 불완전함을, 이질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지금의 하레이를 그녀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하레이는 하레이였지만, 하레이를 벗어났기에 기존의 하레이가 줄 수 없던 경험과 가치를 그에게 제공한다. 모방된 하레이는 비록 복제물일지언정 유일무이한 존재였고 그 유일무이함은 그들에게 의미를 가져왔다.
의미를 찾아가는 삶
이미 10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무수히 많은 이론가와 학자들이 바다의 의미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정의 내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의견 중 하나일 뿐이며 어느 것도 솔라리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솔라리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빈번하든 드물든 같은 형태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기물의 바다는 매 순간 변화하고 있었고, 모든 변화의 순간은 유일무이했다.
캘빈은 솔라리스에서의 1년이 좀 안 되는 체류기간을 경험한 후 이곳을 떠나 지구로 돌아갈지, 아니면 계속 남아 바다를 연구할지 고민한다. 그가 지구로 돌아간다면 적당한 일자리를 얻고, 거기서 동료들을 사귈 것이다. 운이 좋으면 거기서 다른 인연이 생길지도 모른다. 지구로 돌아간다면 이곳에서와 같은 경험을 두 번 다시는 경험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솔라리스에 남는다고 해서 살아생전 결실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결과는커녕 평생 시도만 하다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집이 없다. 지구? 나는 사람들로 들끓는 복잡한 대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 아마도 나는 대도시의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는 조용하고 주의 깊은 인간이 될 테고, 덕분에 동료로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아는 사람도 많이 생길 테고, 친구나 여자 친구도 몇 사귈지 모른다. 그러다 단 한 명의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 뭔가 새로운 흥밋거리나 일거리를 찾게 되겠지만, 거기에 전력투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p.427~428
솔라리스에서 일어나는 특이 현상들, 어느 날 나타난 하레이와 같은 사건들은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원인을 설명할 수 없고 결론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불확실함과 미지의 순간이 매 순간 인생의 다음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캘빈은 자신이 이곳에 남아야 할 이유를 고민하며 생각에 잠긴다.
살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물과 사건과 인간들이 스쳐가고 그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상호작용 한다. 우리는 어떠한 감정이나 판단 없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려 해도 결국 자신만의 관점과 이론으로 주변 세계를 해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과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애초에 가능할까. 모두가 각자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면 인간은 결국 자신의 무지에 휩싸인 채 사라지거나, 사물의 의미 중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이처럼 인생은 불완전한 해석과 한계로 가득하다.
하지만 불확실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과 인연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거기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하레이는 자신만의 생각과 경험, 정체성이 없었음에도 복제물의 한계를 넘어 사랑할 수 있는 독립된 개체로서 삶과 존재에 의미를 부여받았다. 캘빈보다 앞서 이곳에 도착하여 고민을 품고 사라져 간 많은 학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헤쳐나가 정의를 내렸다. 그들의 의견이 일부는 맞고, 또 일부는 틀리거나 전부 헛된 것일 수도 있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매 순간 변화하듯 바다에 대한 설명도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캘빈은 남기로 결정한다. 그는 궁금하다. 다른 이들이 포기하고 떠난 바다의 정체가 여전히 궁금하고, 이곳에 남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이제 그는 연구소의 동료와도 친분이 생겼고 그를 더 알아가고 싶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삶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그것들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다 보면 이곳에 남기로 한 선택의 의미도 어느 날 하레이처럼 그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의미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므로.
글토막
하지만 나는 과거에 '접촉'이라고 부르던 원대한 계획을 준비하던 과거의 켈빈과 비교해 볼 때, 이 미래의 켈빈이 뒤떨어지는 인간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를 판단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므로.
p.428~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