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넌 신정정치를 좋아하지 않아. 공화국연맹에서 조금이라도 성공하려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좋아하지 않고."
"넌 감시국가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도 연방공화국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자신을 속이고 있지."
p.478~479
책을 만나기까지
책을 처음으로 접한 건 인터넷 서점들의 홈페이지에서였다.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던 중 둘로 갈라진 미국이라는 소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나 보다. 몇 개월째 고정적으로 나가는 독서모임에서도 마침 지정도서로 선택되어 읽게 되었다.
역사적 순간을 과거의 사실로서 접하는 건 흥미롭지만 우리 자신이 역사적 순간에 서있어야 하는 상황은 절대 유쾌하지 않다던 말이 떠오른다. <원더풀 랜드>는 그 불편한 지점의 틈바구니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소설이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뉴스 제목들을 보다 보면 더 이상 뉴스나 시사를 읽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세상은 점점 구렁텅이로 조금씩 향해가는 것만 같고 우리 시대에 붙잡을만한 가치가 무엇이 남아있는지 의심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가상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불편함은 흥미로운 소재로 탈바꿈한다.
놀이공원이나 유원지에 가면 거울로 가득한 방이 하나쯤은 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나'는 찌그러지거나 길게 늘어지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거울 너머에 있는 건 '나'이지만 '이 세계의 나'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뒤틀림 속에서 재미와 유희를 발견한다. 왜곡되었을지언정 여전히 하나의 온전한 모습을 갖춘 거울 너머의 세계는 현실과 마주할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정해진 갈림길
작품 속의 미국은 두 국가로 나뉘었다. 개신교에 기반한 제정일치 사회 '공화국 연맹'은 종교적 이념과 계율을 어기는 시민들을 색출하여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고 공포정을 펼친다.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판단되면 공개석상에 죄인을 끌어내 화형을 집행하고 이를 다른 국가들에 송출하는 중계권을 판매한다. 미디어의 자극중독을 꿰뚫어 보고 상업적 수완을 부릴 줄 아는 현대적 종교국가라는 묘사에서 종교 국가라 앞뒤가 꽉 막혔을 것이라는 독자의 기대는 배신당한다.
공화국 연맹의 억압에 반발한 사람들은 연맹에서 탈퇴하여 자신들만의 '연방 공화국'을 세워 독립한다. 시민이 검열과 폭정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직업과 종교와 거주의 자유를 내세우는 연방 공화국을 보면 상식이 있던 시절의 미합중국이 떠오른다. 기술에 기반한 사회진보를 통해 쾌적한 삶과 자유의 확대를 추구하는 연방 공화국 시민들은 몸에 칩을 심고 다닌다. 물건을 결제하고, 누군가와 거리의 제약 없이 소통을 나누고, 정보를 편하게 검색하는 모든 것을 소형칩에 담아낸 혁신적 기업가를 기리는 '채드윅 칩'은 사실상 필수재에 가깝다.
공화국 연맹의 강렬한 폭력을 보다 보면 연방 공화국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모든 이동동선과 건물의 출입기록, 거주하는 건물의 구조도, 각종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시간과 기록을 정보국이 들여다본다는 사소한 단점만 빼면 말이다. 그리고 공화국 연맹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수단으로 종신직을 유지 중인 채드윅 대통령도 빼고. 잊고 지내던 24시간 사생활 감시와 기술독재 국가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면 이렇게 되뇌면 된다. '최소한 여기서는 화형은 안 당하잖아.'
작중의 미국인들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 공화국 연맹과 연방 공화국 중 어느 한 곳에서 살아갈 자유다. 하지만 단 두 가지의 대안만을 주고, 그 선택지 안에서만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선택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종교억압 국가와 기술감시 국가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를 줬으니 그 이후의 결과와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이 감내하라는 말은 또 다른 억압처럼 보인다.
다른 대안이 없는 양극단의 선택의 구도는 이 작품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미국에서 살기 위해 두 정치 체제 중 하나를 골라야 했던 것처럼, 시민들은 국가 안에서도 선택을 강요당한다. 채드윅 칩을 사용하지 않고는, 인간에게 필요한 내밀한 순간과 사생활의 권리를 희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연방 공화국의 현실에 대해 '나'의 아버지는 불만을 표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칩을 이식하거나 안 하거나 자유로운 선택권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죠."
"그렇지만 미국에 대혼란이 오면 채드윅 칩을 이식하는 건 필수가 될 거야."
p.55~56
독서 모임일 당시 참여자들끼리 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왜 몇몇 국가에서는 양당제가 지배적이며, 양당제가 사람들의 정치 견해를 어떻게 극단적으로 몰아가는가'에 대해서도 토론을 했다. 자연스레 특정 정치인들에 대한 얘기가 오가면서 처음에는 모호하던, 그러나 진행될수록 구체화되던 어떤 공통된 의견이 보였다. 정치인이나 정당 또는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의 진영 논리나 스펙트럼이 더 이상 중요하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 사실상의 양당제에 가까운 대립 구도에서 기존 거대 정당들에게서 '나'의 견해와 관심사를 대변한다고 느낄만한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이제는 정당을 넘어 어떤 정치인이 '우리'와 가장 유사한 계층이라고 느껴지는가에 대한 점이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트럼프 당선에 대한 분석들이 많았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던 견해는 민주당, 공화당의 기존 양당 정치집단 중 어느 쪽에 대해서도 미국인 다수가 자신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론도, 산업도, 정치인들과 그들의 후원세력도 이미 산업화된 현대사회는 유권자에게 '투표를 통한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환상을 홍보하지만 시민들은 이제 알고 있다. 단지 어느 편을 고르냐의 문제일 뿐, 그들이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 과연 진정한 선택일까? 아니면 이미 잘 포장되고 다져진 갈림길로 안내받은 뒤 고민은 집어던지고 앞면과 뒷면 중 하나만을 택하라는 동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분열된 국가, 분열된 자아
책 속의 주인공 '나', 샘 스텐글은 연방 공화국의 정보국에서 근무하는 상급 요원이다. 공화국 연맹의 위협을 조기에 발견하여 사전에 차단하고, 필요하다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해야 하는 직업이다. 요원으로서 인정받고 성공적인 삶에 근접할수록 위험은 비례하여 커지고, 개인적 영역과 삶의 즐거움은 점점 뒤로 밀어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나'는 40대의 여성이지만 이렇다 할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 고충과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나 이웃 관계는 기대할 수도 없다.
타인과의 교류를 완전히 차단당한 주인공이 유일하게 떨쳐내지 못하는 인간관계가 딱 하나 있는데 오래전 사망한 그녀의 아버지다. 스텐글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적 자신에게 준 추억과 인간적 접촉을 잊지 못하고 자꾸만 되새김질한다. 그녀 스스로도 왜 자신이 성공적인 요원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정보국 요원으로서 남이 제시한 삶과 길을 따라가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서는 안 되기에 스텐글의 자아는 분열을 택한다. 어떤 약점도 보여서는 안 되는 무정한 도구 '샘 스텐글'은 '나'를 버리고 텅 빈 백지장이 되기로 한다. 백지장은 밋밋하고 쓸쓸하지만 어떤 색과 선이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나'를 없애기 위해 스텐글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개인적 관심사나 흥미를 표시하지도 않으며, 추억이 얽힌 공간을 찾아가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요원은 임무의 특성상 다른 인물로 변장하고 잠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특정 직업이나 출신, 나잇대의 인간에게 가장 어울릴법한 모든 말투와 걸음걸이, 사고방식과 습관까지 지도받으면 그 순간부터 요원 A는 사라지고 위장신분 X만이 남는다. 비어있는 스텐글의 공허한 내면으로 비록 가짜일지언정 하나의 온전한 인격이 들어차고 그때부터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그 신분을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신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고, 공화국 연맹의 의심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평소 요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금기들을 체험해보기도 한다. 평소의 스텐글이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모임에 나서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친분을 쌓고, 하고 싶은 대로 굴며, 필요한 대로 말하거나 감정을 표현한다.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역할에 충실하게 몰입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의 삶 주위로 어느새 점점 사람들이 다가오고, 그들에게 둘러싸인다. 평소의 스텐글이었다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삶을 역설적이게도 가짜 인생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스텐글은 요원으로서의 삶보다 위장신분의 삶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나'의 온전함을 느낀다. 연방 공화국의 요원으로 살아가는 한 스텐글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일 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임무를 완수해 오고 어떤 고문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최상급 요원이 될수록, 인간적 한계를 벗어던질수록 뭔가가 조금씩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반면 가짜 신분은 거짓일지언정 그 거짓을 진짜처럼 연기하기 위해 모든 순간과, 인연과, 감정에 진심으로 매달려야만 한다.
'이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렇게 느껴 저렇게 행동했겠지.' 자기 자신의 행동과 생각조차 되돌아 본 적 없는 스텐글은 거짓 감정선과 사고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나'의 잊혀진 조각들을 발견한다. '나'는 그때부터 요원보다는 변장한 신분에 더 자신을 겹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언젠가 임무는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다시 샘 스텐글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녀의 기억과 감정과 사고는 가짜 신분처럼 흩어져 없어지고 다음 껍데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자네는 완벽한 요원이야. 정보국과 결혼했으니까." p.231
개인의 내밀함이 없어진 세상
책에서 자주 나오는 또 다른 주제는 '비밀'이다. '나'는 요원으로서 누군가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주된 임무인데 아버지가 살아있을 적에는 직업의 세부사항이나 고충에 대해 털어놓지 않고 비밀로 간직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한참 뒤에 아버지가 숨겨놓은 배다른 가족이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되고는 충격을 받는다. 가장 믿었고 심리적으로 의지했으며 자상했던 아버지가 딸에게 끝까지 털어놓지 않은 진실이 있었다는 점, 요원인 자신조차 전혀 의심하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을 간직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두 부녀의 비밀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진실을 숨겼다는 면에서 같아 보이지만 차이점이 있다. 아버지의 비밀은 철저히 그 자신과 관련된 개인사의 영역이자, 다른 인연을 두었다는 도덕적 결함과 결부된 '사적인 내밀함'의 영역이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고, 결함이 인간성의 한 측면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당신의 인간성과 장단점을 존중하듯 나의 비밀과 개인적 영역에 대해서도 존중해 달라는 상호 간의 암묵적 합의다.
반면 '나'의 비밀은 대부분 정보국 요원으로서 얻게 된 기밀과 직업상의 규칙에 의한 것들로서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되는 정보이지 그녀 삶의 개인적인 영역과는 관련이 없다. 정작 그 비밀들 대부분도 정보국의 상급자와 핵심부서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나'는 남들의 비밀은 수집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사생활은 숨김없이 보고해야 하는 투명인간의 인생을 살아간다. 샘 스텐글의 비밀은 그녀가 만들어낸 비밀도 아니며,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밀도 아니다.
길어지는 내전과 분리로 연방공화국은 채드윅의 종신집권과 개인의 감시가 당연시되고 있는 사회다. 기술의 편리함과 안보라는 대의명분이 결합된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불투명하게 살 수가 없다. 체제를 강요받는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이 사회에 맹목적으로 전념할수록 그 개인의 내밀함과 비밀스러움도 없어진다는 점이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 소망이나 인간성은 체제와 어우러지지 않는 방해요소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자신과 타인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가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가치들에 더 전념할수록, 애국심과 재산과 안보와 주의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져들어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내버릴수록, 스스로의 정체성이 없어질수록 개인은 없어지고 국가나 체제가 그 자리에 들어와 우리를 지배한다.
체제와 대립이 극단적으로 진행될수록 정치와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양한 개인들이 가진 각자의 내밀한 사고와 주장과 의견은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에 묻혀 사라진다. 인간적 존재와의 교감보다는 정치와 진영논리가 개개인의 실존을 막아서고 대화와 교류를 차단한다. 그 결과 작중 한쪽에서는 공포와 탄압이 인간의 두려움을 부추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술적 안락이 인간 존재의 이유를 마비시키는 근미래가 펼쳐졌다.
'나'는 어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교류하고, 각자의 의견을 표현했으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필요하다면 각자의 비밀을 간직할 수 있던 과거의 미국을 떠올리곤 한다. 분열된 미국은 공화국 연맹과 연방 공화국으로 쪼개져 미국인의 정신을 둘로 찢어버렸듯, 주인공을 포함한 작중 인물들은 체제의 현실과 인간성이 조화되지 못한 채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리 때문에 결국 누구에게도 신뢰를 갖지 못하며, 자신의 비밀을 남에게 털어놓거나 반대로 타인의 비밀을 듣기 거북해한다. 나와 다른 남의 솔직한 생각을 알고 싶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모두 근원적으로 고독하다고 느낀다.
'나'는 어느 날 임무를 위해 공화국 연맹의 경계지대로 잠입한다. 공화국 연맹의 영토로 들어갈 당시만해도 그녀가 기대한 건 화형을 부르짖는 광신도들과 타인에게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고집불통의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그녀가 본 건 체제에 맹목적이고 눈먼 사람들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마다의 인생이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길에 의심스러운 보행자로 잡혀 공화국 연맹의 보안경찰에게 취조를 당하게 된다. 경찰관은 핸드백 속 소지품 중 박하사탕을 보며 미국이 갈라서기 이전에 그 사탕을 자주 즐겨 먹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스텐글은 의심을 피하고 상황을 모면하고자 호의의 표시로 사탕을 건네준다. 경찰관은 박하사탕에서 정치와 이념갈등보다는 인간적 추억을 먼저 엿보았고, 그 잠깐의 순간 동안 공화국 연맹의 보안경찰은 사탕과 아버지가 그리운 어린아이가 된다.
미국이 만일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사탕에 얽힌 이 공화국 시민의 사연을 카페에 함께 앉아 더 자세하게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그녀 자신의 내밀한 인생사를 함께 털어놓으며 서로의 출신이나 나이, 배경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한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 남은 건 의심스러운 적대국 여행자를 검문하는 경찰관과 그를 어떻게든 속이고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요원만이 있을 뿐이다.
감정을 섞고, 나의 내밀함을 남에게 보여주고 상대가 호의와 관심의 표시로 자신의 내밀함을 건네 보이는 접촉은 점점 부담스럽고 위험해지는 시대다. 비밀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용당할 뿐이라는 두려움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세포처럼 쪼개지고 또 쪼개져 무수하게 분열하다 흩어져 버린다. 너무나 파편화되어 나의 원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린 듯, 다시 뭉치는 법을 잊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최소한 여기서는 화형은 안 당하잖아.'
글토막
인간은 모두 수정란에서 시작되듯 분열은 인간의 천성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역사는 분열과 파열의 긴 대하소설이다. 모두들 커플로 분열되고, 가족으로 분열된다. 국가로 분열된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탓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고 함께할 수 없다며 문을 닫아 잠그는 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인간의 조건이다.
살아가는 건 나뉘는 것이다. p.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