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기, 지적이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을 보자. 가령 동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틀린 사실을 당당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걸 듣는 동기들은 틀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듣고 있을 뿐이다. 이때 누군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진실은 이러이러해'라고 지적을 한다면 어떨까? 지적으로 얻고자 기대하는 것은 대게 이렇다. 틀렸던 사실을 올바르게 고칠 수 있으며, 진실을 알게 된 동기들이 감사함을 표할 것이다.
음, 정말로? 안타깝지만 기대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할 거 같다.
2. 지적은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물론 당신은 순수한 의도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당사자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당신과 상대방, 둘만 있다 한들 지적은 그의 적개심을 산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면 사태는 더욱 커진다. 주위 사람들은 당사자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사실관계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도 당사자는 그렇게 느낀다. 실제로 '인간관계론'을 집필한 데일 카네기는 지적이 가져왔던 위험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 적 있다.
3. 데일은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로스 경의 초대를 받고 연회에 참석한다. 그러다 옆에 있던 한 이야기꾼의 얘기를 듣게 되는데, 그는 '우리가 어떻게든 목적을 이뤄보려 해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신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 말을 <성경>에서 인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데일은 이 말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성경>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햄릿>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4. 데일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틀린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꾼은 절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데일이 아무리 침착하게 설명해 줘도 자신의 입장을 단단히 고수할 뿐이었다. 결국 둘은 <햄릿>에 대한 지식에 풍부한 가몬드라는 인물에게 진실을 물어보았다. 가몬드는 말했다. 그는 '데일 자네가 틀렸네, 저 신사분 말이 맞아. 그건 성경 인용문이야'라고 말하며 이야기꾼의 손을 들어줬다.
5. 데일은 연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몬드에게 물었다. '가몬드, 자네는 그게 <햄릿>에서 나온 말이란 걸 알고 있잖냐'. 가몬드는 말했다. '그렇지. 그건 <햄릿>의 5막 2장에 나오는 말이네. 하지만 우리는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받은 손님이었잖나. 데일, 사람들에게 그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일 이유가 어디 있나?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자네를 좋아하겠나? 그 사람 체면 좀 살려주는 게 어떤가? 그가 자네 의견을 물어본 것도 아니었네. 그는 원하지 않았어.'
6. 가몬드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틀린 사실을 지적하며 사람과의 각을 세우는 대신 그의 체면을 살려주기로 했다. 그때 가몬드가 이야기꾼이 틀렸다고 지적한들 나아지는 게 있을까? 그래봤자 내가 옳았다는 쓸쓸한 성취감 정도뿐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연회는 찝찝하고 불쾌한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7. 나 역시 군대 선임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말이 됩니까'라고 지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마 그랬더라면 모든 선임들의 미움을 받았을 께 뻔하다. 내가 택한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는 일이었다. 물론 그 선임은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평생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세상을 올바르게 돌아가게 했다는 자기만족보단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게 훨씬 이득이다.
8. 어떤 이는'저는 상황이 달라요. 잡담을 나누는 상황이면 저도 지적하지 않아요. 하지만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을 하던 후임을 지적했고 그도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라며 질문할 수 있다. 맞다.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해오며 느낀 바로는 지적이 필요한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진정 잘못을 지적해도 이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치는 자는 드물다.
9. 누군가 잘못한 걸 방치하란 게 아니다. 지적은 물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적은 다루기 매우 힘들다. 계급이 존재하는 한 선임이 하는 지적은 후임 입장에선 통보로 밖에 안 들린다. 그래서 군대 내 지적은 사용법이 더 까다롭다. 그럼에도 지적해야겠다고 생각된다면 먼저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내가 한소리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지적한다면 더 나아질 거 같은지.
10. 터놓고 얘기하면 지적하는 이유가 그냥 자기가 기분 나빠서 뭐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얘기 중에 "너 요즘 말 많이 나온다며 은근한 협박 투로 일러주는 건 사실 그 선임 혼자 생각한 일이며, 군대 내 위계질서 때문에 뭐라 했다는 건 사실 내 맘에 안 들어서 그런 거다.".
이런 얘기가 군대에서 계속 떠도는 건 재밌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일부 공감되기 때문일 거다.
11. 신병 때 군대에서 하루 종일 들었던 게 누군가의 지적이다. 스스로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는 생각에 우울했던 날도 적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게도 많은 후임이 생겼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후임들은 자기 알아서 잘하고 나는 내 할 것만 잘하면 됐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 신병 시절보다 딱히 돋보이게 잘하는 것도, 눈에 띄게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미숙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평범한 얘들이다. 되돌아보면 내가 신병 시절에 이리저리 치였던 건, 내 문제가 아니라 별거 아닌 걸 문제 삼는 몇몇이 문제였다.
12. 만약 "내 눈엔 꼴 보기 싫은 짓만 하는 얘들밖에 없던데?"라고 생각이 든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권한다. 별거 아닌 일에 화를 내던 것은 아닌지, 내가 후임 시절 두려워했던 선임이 지금 나와 닮진 않았는지 말이다. 당신의 지적으로 진정 그는 뉘우치고 있을까? 정말로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은 당신이 후임이었을 적 비슷한 경험을 되새겨보면 나온다.
[군대로 더 파고들어가서]
1. 군대는 잘못된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군대 내 상관에게, 또는 선임에게 불쾌하거나 문제가 된다고 여겨지면 곧바로 이를 차단하고 묵살시킬 뿐이다. 극단적인 예시로 PX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면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PX를 금지시키는 게 군대다. 병사들은 사건을 자세히 보고 해결을 바라지만 위에선 일단 금지시키고 본다. 그럼 상황이 더 악화는 안되고 편하기 때문이다.
2. 병사들끼리도 마찬가지다. 후임의 행동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걸 발언할 기회는 지적받은 순간 사라진다. 일단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지적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칠 후임은 적다. PX를 금지당한 병사들이 감사할 리가 있나. 그들에게 군 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논리정연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자가 아니라 일단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있어야 한다.
3. 모든 쓴소리를 그만둘 순 없다. 나도 내버려 두면 돌이킬 수 없을 거 같은 상황이 있다면 직접 대면해 그 사실을 인지시켜준다. 그렇지만 지적은 절대 안 한다. 상대방이 바뀌기 바란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지적이 제일 안 좋아서 안 쓸 뿐이다.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던, 어떤 행동을 금하던, 그게 지적이 되는 순간 권위적이게 들리게 된다. 듣는 이에게 하나의 선택지만 남도록 다그쳐선 안된다.
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듣는 이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선임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닌,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유도 없이 단칼에 하지 말라고 통보하는 거보단, 그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얻는 것 들을 차분히 말해준다면 후임은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다. 나보다 군 생활을 휠씬 더 많이 해본 베테랑이, 나를 위해 해주는 조언인데, 안 들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간단히 내가 편하자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너를 위해 조언해 준 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5. 내 지겨운 잔소리에 '어우 뭐가 이리 복잡해? 그냥 내 마음대로 할래'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당연한 거다. 지금 이 글도 하나의 지적이 될 수 있다. 물론 친근하게 읽히도록 노력을 기울였지만 당신이 거부감이 든다면, 그건 내 글쓰기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할 말을 녹이고자 했지만, 남을 설득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걸 다시 끔 깨닫는다. 이는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글은 지웠다가 다시 고쳐 쓰는 게 가능하고 또한 검색의 힘을 빌릴 수 있다. 심지어 부끄러운 오타를 AI가 지적까지 해주는 데에 반해 내가 별생각 없이 바로 뱉은 지적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틀릴 수 있을지 상상해 보니,
그것이 더 괴로운 일이다.
[결국 핵심은]
나 역시 남이 하는 지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다. 지적에는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사실관계만 고치려는 의도여도 상대방은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내 의도 따위 상대방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생각한 상대방은, 내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 한들 더욱 날카롭게 내게 가시를 세울 것이다. 지적은 확실한 적을 만들기에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남을 지적하기 위해 생각한 한마디를 , 그 한마디만 참아도 여러가지를 얻을 수 있다. 너가 아닌 나를 의해서라도 지적의 남용을 그만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