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샤워실에서 가볍게 씻은 후, 장례식장에서 준비한 양복을 걸쳤다.
그리고 혼자서 시간이 보내고 있자, 친척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큰아버지, 큰 고모, 큰 고모부, 그리고 사촌형들...
하지만 모든 친척들이 오진 않았다.
바쁜 일이 있어서 못 왔다는 분도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울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안 왔다는 분도 있었다.
평일이다 보니, 가게를 비울 수 없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려 온 분도 있었다.
그래 평일이라서 그럴 수 있지.
거리가 멀어서 오기 힘들 수 있지.
그렇지만 남도 아니고 가족이었는데, 형제였는데...
아무리 사이가 멀어졌다지만 1일장인데, 단 하루뿐인데 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늦게라도 올 수 있지 않았나?
잠깐이라도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루뿐인 마지막 가는 길조차 매일 하는 일보다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람.
그게 이 집안에서 아버지의 위치였고, 친척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아버지를 찾아온 사람도 정말 적었다.
우선 대표로 온 몇 명의 마을 주민들.
그것도 아버지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큰아버지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방문했다.
결국 아버지가 시골에서 지냈던 시간은 마을주민들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라는 뜻이었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저 환자 취급이나 하면서 이용만 했을 뿐, 마을 주민으로는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처에 사신다는 아버지의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 세분이 찾아오셨다.
아직 살 날이 많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또래가, 그것도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먹은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묵념하시고는 돌아가셨다.
그것으로 끝.
아버지의 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그걸로 끝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고,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지만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60년이라는 세월이 요즘 시대에는 길지도 않다고 하지만, 그리 짧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맺어온 인연은 이게 전부라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아내였던 내 어머니도,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내 동생도,
잠시 같이 살았던 그 여성분도,
같이 회사를 만들었던 그 후배도,
친한 친구였던 그 남자도,
심지어 아버지의 형제들조차도,
그 누구도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온 친척들도 발인도 안 보고 돌아갔는데,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올 일이 있겠는가?
참으로 초라한 인생이었고,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다.
정승이 죽어도 이것보다는 사람이 많을 텐데.
전생에 얼마나 나쁜 업을 쌓았길래, 가는 길마저 이렇게 외롭게 떠나는가.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가 싶었지만, 늦은 시간에 내 회사 직장 상사와 동료, 그리고 친구들이 찾아왔다.
평일이라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그러겠냐며 퇴근 후, 늦게라도 찾아와 준 사람들이 너무나도 고마웠고, 든든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화장터로 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와, 큰아버지, 그리고 사촌형, 단 3명뿐,
버스에 시신을 실을 사람조차 부족한 탓에 결국 운전사의 도움으로 차량에 아버지의 시신을 실은 뒤에야 화장터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관을 옮긴 후, 절차대로 아버지의 유골을 담을 항아리를 구매한 이후에는 1시간 정도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고, 그렇게 받아본 항아리는 가격만 보고 골라서인지 참으로 초라해 보였다.
잠시 후, 납골당으로 향하는 버스.
수십 명이나 탈 수 있는 커다란 버스 안에는 결국 나와 큰아버지만 남게 되었다.
그 덕분에 더운 날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적은 버스 안은 에어컨 때문인지 매우 쌀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버스 안의 온도와는 다르게 아버지의 유골함은 그 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아직까지 뜨끈한 온기를 담고 있었다.
그 온기가 나에게는 마치, 살아생전에 뜨거운 게 싫으니 그렇게 땅에 묻어달라고 했는데 왜 나를 태웠느냐며 항아리를 통해서 나에게 화를 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항상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예전에 산에 자기가 묻힐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화장 말고 묻어달라 그러셨거든요.”
“... 네 아버지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네.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혹시, 아버지의 묫자리가 정말 있었나요?"
“사람이 언제 죽을 줄 알고 네 자리, 내 자리 맡아두나. 네 아버지가 묻힐 곳이 따로 어딨어. 원래부터 그런 건 없는 거야.”
큰아버지는 조용히 아버지의 말을 부정했지만, 집안의 장자인 큰아버지와 장손인 사촌형의 묫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아직도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자리가 원래 없던 것인지, 아니면 없어진 것인지는 지금에 와선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상관없는 이야기기도 했다.
들으셨죠? 어쩌겠습니까.
아버지 말과는 다르게 아버지가 묻힐 곳이 없다는데.
나는 여전히 뜨거운 아버지의 유골함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그래도 자신의 동생이라 그랬는지, 큰아버지께서는 마지막까지 아버지가 가는 길을 끝까지 함께 하셨고...
'마지막 가는 길을 마중가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니, 다행인 거겠지.'
그런 감성적인 생각과 함께 아버지의 장례식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다음 주 월요일.
큰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