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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치매가 심해졌다

by 하명환

아버지는 그날 이후 상태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어? 네가 여길 왜 왔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온다고 했잖아요?"

"아닌데... 네 형이 온다고 했지."

"내가 장남인데, 형이 어딨어요?"

"넌 동생이잖아."


아버지가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찾아오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동생으로 인식하는 게 맞는 말이었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그러면 아버지가 동생을 보면 나로 보이는 걸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동생은 독립한 이후로는 아버지와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반찬 투정이 심해졌다.

원하는 반찬이 없으면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밥상을 집어던지는 일도 빈번해졌다.


그렇게 아버지가 하는 행동과 생각은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

비록 몸은 성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보다는 제어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더 이상 대소변을 화장실에서 해결하지 못했다.

급하면 그 자리에서 해결했고, 그 탓에 이불과 바지, 팬티가 남아나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 집으로 방문하는 요양보호사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왔다.


"이대로는 더 이상 보살피기 힘드니,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아버지에 대한 연락은 보통, 고모를 통해서 전달되는 편이었기에, 나에게 직접적으로 온 연락을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아무래도 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나빠진 상태이다 보니, ‘정말 급해서 그렇겠구나, 아버지 담당이 정말 힘드신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관련한 것은 작은 고모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작은 고모에게 연락을 드렸다.


"요양병원, 그거 함부로 들어가고 그러면 안 되는 거 몰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작은 고모는 아버지의 요양원 입원을 반대했다.


반대하는 이유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들어가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느니, 한 번 들어가면 앞으로 영원히 못 나온다는 등,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를 대며 아버지의 입원을 거부했다.


거기에 아버지도 예전부터, 그리고 치매가 온 지금조차도 병원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를 자신을 노인 취급, 병자 취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굉장히 꺼려했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작은 고모는 평소에도 아버지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분이셨고, 나는 저번 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고민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작은 고모의 의견에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계신 집의 보일러가 터지면서 집안에 물이 차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요양보호사가 집에 방문해 보니 바닥에는 물이 흥건해져 있었고, 그 난리통 속에서도 푹 젖은 이불을 덮은 채 주무시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급하게 전화를 주신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진 급격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평소부터 이어진 요양보호사의 꾸준한 설득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군말 없이 요양병원에 들어가겠다고 말했고, 지금까지 고생하셨던 요양보호사에게는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속 어딘가에선 아버지의 요양병원 입원은 조금 피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금액 부분에서 상당히 부담이 된다는 이유였는데, 평소에도 요양보호 사무장도, 작은 고모도 금액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큰 부담이 될 것처럼 이야기했었기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병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제로는 그런 비싼 금액을 지불할 일은 없었다.

아니, 내 수입에 비해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들어왔던 것보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었다.


어느 정도 저렴했냐면, 지금까지 매월 작은 고모나, 사무장에게 보내던 금액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의 관한 건 직접 처리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작은 고모와 사무장이 말하는 대로만 하고 있었고, 그게 전부 사실을 거라고만 생각하고만 있었다.


뒤늦게나마 병원뿐 아니라, 이곳저곳에 전화하며 아버지의 상태와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병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려면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 결과, 아버지의 상태는 작은 고모에게 듣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사무장이 제안했던 것 중에는 무료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고모, 아버지 문제로 연락드렸어요.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한 거 같아서요”


나는 지금 내가 격고 있는 정보의 오류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작은 고모에게 말씀드렸다.


“네가 뭔가 잘못 확인했거나,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사람이 그럴 사람도 아니고, 얼마나 너네 아빠를 챙겨줬는데 그런 소리를 하니.”


하지만 작은 고모는 오히려 무언가 잘못된 일이라며, 사무장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경험한 나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작은 고모도 뭔가 연관이 있는 거구나’


그리고 며칠 후, 작은 고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전에 연락받고 생각해 보니까, 그때는 혜택을 못 받았었다가 나중에 등급이 인정돼서 돌려받은 돈이 있는데, 나중에 더 큰 문제가 터질 수도 있고 그래서, 괜히 돌려주고 다시 주고 하는 것보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다가 문제 생기면 그 돈으로 해결하려고 내가 따로 보관하고 있던 게 있어. 근데 이제 너네 아빠 병원 들어갔으니까 굳이 내가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으니까 돌려줄게. 계좌 알려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변명은 하고 있는데, 횡설수설에, 핀트가 어긋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작은 고모가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동안 아버지 때문에 당해온 느낌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작은 고모는 왜 그런 행동을 하셨을까?


친척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받은 퇴직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 아버지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며 핀잔을 주는 형제들에게 나 돈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의 통장을 직접 공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시기에 작은 고모에게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는 딸과 아들, 그러니까 나에게는 사촌동생들 때문에 큰돈이 필요했었고, 그 사실은 사이가 멀어진 나조차도 알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오빠에게 퇴직금이라는 큰돈이 들어온 것을 알게 되니, 욕심이 생긴 게 아닐까?


사실, 유산을 큰 아버지가 전부 가져갈 때부터 다른 형제들과 마찰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나마 집이라도 받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받지 못한 여자형제들에게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돈 때문에, 복잡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조용히 넘어갔을 뿐이지, 욕심과 불만이 없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가족들과 소원해진 아버지의 일에 적극적으로 다가온 것도, 사무장을 소개해준 것도 작은 고모였다.


사무장과 한통속이 되어 짜고 치려고 했는데, 아버지의 돈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사라진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결국 사무장과 나눠먹기로 한 파이가 부족해졌고, 결국 그 부족한 부분을 나한테 마저 채우려고 나한테까지 마수를 뻗은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적은 돈이었지만, 어느 순간 점점 그 금액은 늘었고, 나중에 문제가 터질 것 같으니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나에게 아버지의 입원을 반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방문하는 요양보호사까지는 끌어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그분의 연락 덕분에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면서 들통났고, 나중에는 요양보호사가 내 의심이 사실이었다는 것까지 직접 확인시켜 줬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나는 침묵을 택했다.


친척이 연관된 일이라 복잡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고, 이번 일은 결국 아버지를 챙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억지로 무시하고 눈을 돌린 그 나태함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실제로 다른 목적이 있었다지만, 작은 고모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 않는가.


그래서 사촌 동생의 축의금으로 줬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넘어갔다.

더 이상, 이런 일로 심력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상, 더 이상 이런 일에 신경 쓸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냥 지금까지 아버지를 더 챙기지 않았기에 생긴 벌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몇 가지 물건들을 챙기기 위해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보일러 수리 때문인지 바닥을 뒤집어둔 상태였기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 깔려 있는 이불들을 뒤집어대며 물건들을 찾아갔다.


핸드폰, 지갑, 통장, 신분증 등등…


핸드폰은 사용한 지 오래되었는지, 배터리가 나가 전원이 꺼져있었고, 지갑은 20년 전인가 내가 사줬던 나름 이름 있는 명품 지갑. 그 안에는 만 원짜리 한 장에 천 원짜리 3장뿐이었다.


그날 바로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있는 카드를 분실신고로 정지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통장에 연결된 카드가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용 중인 카드가 총 3개인데, 전부 정지시킬까요?"

"3개요?"


돈이 어디론가는 분명 빠져나간 게 맞겠다는 생각 했지만, 어차피 개인정보라고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기에 일단 전부 정지시켜 달라고 했다.


이후에는 통장을 가지고 바로 은행에 방문하여 통장을 정리했다.

놀랍게도 적지 않았던 보험금 반환금은 한 달 만에 사라져 있었다.


황당함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자신의 돈을 신경 쓰지 않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신경 쓰지 않았던 나도.


하지만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꽤 평화로운 날이 찾아왔다.


귀찮게 하는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아버지를 방문해서 잘 계시는지 확인하면 될 뿐인 일상.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동생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걸 이해시키려는 마음도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볼 때마다 꽤나 야위어가셨지만, 그래도 그 집에 있을 때보다는 깔끔해 보여서 확실히 관리를 받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더 이상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않는 돈은 나의 심신을 안정시켜 줬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나가는 금액은 앞으로의 미래를 계산하기 쉽게 해 줬다.


대략적으로 5년, 길어도 10년 정도는 살겠지.

그러면 대략적으로 나갈 돈은 이 정도겠구나.


그런 식으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리며, 나의 남은 금액을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할지 생각했다.


다행히 나에겐 어린 시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저축과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낭비하는 습관도 없었고, 저축한 돈도 적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병원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씩은 아버지한테 병원이 몸에 너무 잘 맞아서 너무 오래 살아계시면 어쩌나 하는 가끔씩 나쁜 생각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적은 돈은 아니었기에 그런 생각을 더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못된 마음을 먹어서 그런 걸까?


병원에 들어가시고 1년 뒤, 아버지는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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