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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돈이 사라졌다

by 하명환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한동안 연락이 없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50만 원만 보내줘. 금방 갚을게.”

“50만이요? 뭐에 쓰려고요?”

“쓸 데가 있어.”


돈이 필요하다면서도 어디다 쓸 건지는 말해주지 않는 아버지.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돈을 보내줬고, 아버지는 하신 말씀대로 1주일도 안 돼서 다시 돈을 돌려줬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 100만 원만 보내줘. 아빠가 돈이 없다.”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낸 것이다.


“돈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돈이 없는 게 없는 거지. 다른 의미가 어디 있어?”


하지만, 다시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아버지 퇴직금을 챙긴 것은 나였고, 그 돈을 직접 아버지의 통장에 넣어드린 것도 나였다.


그렇기에 그 돈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소비습관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1년 만에 사라질만한 액수가 아니었고, 적어도 5년 이상은 금액적으로 지원하지 않아도 아버지 혼자서 충분히 살 수 금액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돈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게 살았기에 돈을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된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시골집에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돈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당연히 금액에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보일러 기름 넣을 돈이 없어서 난방을 못하고 있어. 그래서 그래.”


우선 급한 불을 꺼야겠단 생각해 돈을 보내고, 주말에 바로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딱히 바뀐 것은 없는 집이었다.

요양사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지저분하고, 여전히 잡동사니로 좁아 보이는 집.


“아니,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퇴직금 받고 이제 1년 지났어요!”


결국 나는 직접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말하지 않을 기색이었다.


참다못해 욕이 새어 나오려고 했지만...


“아이고 오늘은 아들이 왔나 봐~”


다행히 주변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집 앞에 놓인 차를 보고 마당으로 들어오셔서 들끓던 기분은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효자야. 효자. 이렇게 매달 찾아오는 아들이 요즘에 어디 있어?"

"아니에요... 아, 혹시 아버지가 좀 돈을 막 쓴다던가 그런 게 있나요?”

“으이? 그런 건 딱히 없는데?”


잠깐의 대화 후 할머니는 밭일을 하러 간다며 자리를 떠났고, 그 뒤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별 다른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너네 아빠가 너한테도 돈 빌려갔어?”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어떻게 들은 건지, 큰 고모가 연락을 한 것이다.


“사실 말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너네 아빠가 나한테도 돈 빌려갔다. 뭐, 말이 빌려준 거고 따로 달라고는 안 할 거야.”


게다가 아버지가 돈을 빌린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얼마나 빌려가셨는데요?”

“200만 정도인가?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너네 큰아버지도한테도 받아간 걸로 아는데, 한 500 될걸? 돈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벌써 돈이 없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답답해요. 한두 푼 하는 돈도 아니었는데.”

“사람이 왜 그러나 몰라, 여기서 사기당하고, 저기서 사기당하고. 이번에도 또 당한 거 아냐?”


그런데 의외의 장소에서 아버지의 돈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돈에 대해서 묻고 다닌다는 사실을 어디서 들은 것인지, 요양보호사가 센터나 작은 고모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것이었다.


“아버님이 돈 씀씀이가 막 헤프신 것도 있는데, 그 마을이 좀 이상한 것도 있어요.”


그렇게 전달받은 내용.

그것은 시골은 생각보다 차가운 곳이라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도와주는 것 같았지만 무상으로 아버지를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쓰레기를 태울 수 있는 어디서 굴러다니던 드럼통을 가져다주면서 10만 원

마당에 앉을 수 있는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 같은 의자를 가져다주고 20만 원

문 밖에 풀 한번 베어주면서 50만 원


그런 식으로 아버지한테 마을지원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금액을 가져가는 것을 몇 번이고 봤다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요양보호사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사실 아버지가 거의 못 움직이시잖아요. 그런데 돈이 어디서 계속 생기겠어요. 그냥 마을 주민한테 카드 주면서 돈 뽑아오라고 시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뽑아오라는 돈만 뽑아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 이상 뽑아와서 주머니에 넣어도 잘 모를 텐데.”


그 말은 들은 나는 바로 아버지의 통장을 챙겨, 은행으로 향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확인시켜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치매신데, 돈이 1년 만에 사라질 만한 돈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하지만 은행은 개인정보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고, 어쩔 수 없이 ATM기에 이력을 2시간 동안 돌려가면서 간단한 내역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알아낸 것은, 통장에 있는 돈이 누군가에게 한 번에 나간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문제는 ATM기를 통해서 1주일에 20만 원, 많게는 50만 원씩 꾸준히 빠져 가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을주민에게 물어봤을 때는 아버지의 돈의 행방을 모른다는 듯이 대응했었다. 정말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의심의 싹이 튼 나에게는 더 이상 마을주민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아버지가 입을 열어야만 했다.


나간 돈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마을 주민에게 얼마씩 빼오라고 요청한 것인지, 그런 것만 말해줘도, 지금 상황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절대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식에게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아 싫었던 것 같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한테 돈 달라고 연락이나 하지 말지, 왜 전화해서 결국 내가 알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인지...


아니,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도 꽤 많이 빌렸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빌릴 곳이 없었고, 나한테 연락할 수밖에 없었겠지.


아쉽게도 ATM기로 나간 돈은 행방을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는 돈도 있었다


매월 빠져나가는 돈.


그것은 통신료와 보험료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정기적으로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선, 통신사 비용으로 30만 원이 넘게 지불되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처럼 게임에 돈 쓴 거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노인의 통신비가 그렇게 나가고 있다는 건, 사실 말도 안되는 것이었고, 이해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바로 통신사에 연락해 이 말도 안 되는 금액에 대해 물었다.


우선, 비용의 정체는 텔레비전 수신료와 인터넷 비용, 그리고 핸드폰 약정 금액이었다.

그리고 전에 봤던, 갑자기 커진 텔레비전의 정체는 3년 약정으로 묶어서 판매한 사은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도 없는 집안에 인터넷 비용은 꾸준히 나가고 있었고,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에는 다양한 채널이 가입되어 있었다.


공짜폰으로 줘도 안 쓸 것 같은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그딴 식의 계약이라니.

이건 거의 사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당연히 해약해 달고 요청했지만, 통신사에서는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치매노인을 상대로 이딴 식으로 장사해도 되냐고 따졌지만,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기계적인 대응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문제인 것은 보험료였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큰 금액이었다.


게다가 저번달부터 통장에 돈이 없어, 연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던 중, 아버지가 가입한 보험 중에 하나가 치매보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금액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겠다 생각해 보험사에 전화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알코올성 치매는 보장이 어렵습니다. 고의적이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한 손해에 해당되고, 게다가 가입 당시에 음주력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아버지는 치매 판정을 받아도, 보장을 받기는 어렵다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결국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보험의 전부를 해약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은 알고 있었고, 보험이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몸은 시한폭탄이 설치된 상태나 다름없었으니까.


당뇨에, 언제 뇌출혈이 올 수도 있는 치매환자.

나으려는 의지도 없이, 하루하루 술과 담배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아버지의 도움으로 보험을 해약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대답하자 보험은 정상적으로 해약되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 아버지의 통장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사실, 나간 돈에 비하면 적은 돈이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기에 당장의 걱정은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에게 보험을 가입시킨 상담사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보험 약관을 살피다가 적혀있는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폰으로 전화하자, 여성이 아버지와 친한 척 말을 걸어왔다.


전화를 받은 여성.

그녀는 지금은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후배가 조심하라고 충고했던 아버지의 친구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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