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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친구가 배신했다

by 하명환

“연락도 안 하시던 분이 갑자기 연락하셔서 말씀이 없으시네~ 무슨 일 있어요?”


전화 속의 여성 분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든 하이톤의 목소리로 매우 친한 사람과 대화하듯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들 되는 사람입니다.”

“어머, 아들이에요? 아버님 번호로 와서 제가 착각했네요.”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아드님이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아들이라는 말에 잠깐 놀란 여성은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무언가 경계하며 나에게 질문했다.


"이번에 저희 아버지 통장 정리를 하다 보니까 좀 이상할 정도로 돈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어서, 이것저것 확인하니까 그중에 하나가 보험이더라고요. 게다가 전부 같은 사람이 담당해서 계약을 진행한 것 같아서 전화해 봤는데, 혹시 아버지랑은 알고 지내던 사이신가요?"


나는 전화하기 전에 준비했던 대사를 뱉어냈다. 다만, 살짝 긴장한 탓에 대사가 마치 랩을 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나오고 말았고, 그 탓인지 상대 여성도 잠시 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잠시만요, 음… 아무래도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제 남편하고 이야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실래요?”

“남편분이요? 갑자기요? 네, 알겠습니다. 번호 주세요.”


그 당시의 나는 그 여성이 누군지 몰랐으니, 갑작스럽게 자신의 남편의 이야기를 꺼내는 여성의 답변에 의아할 뿐이었다.


“제가 연락 끊고 바로 연락하라고 할게요”


뚝-


그렇게 여성은 그 말과 함께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고, 연락 준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다시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보자, 연락한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분이었다.


“여보세요?”

“어어~ 아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네, 뭐 그냥저냥 살고 있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제가 지금 바빠서…”

“나보고 전화 달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제가 연락드렸던 보험 판매사분이 아내분이신가 봐요.”

“맞아, 그래서 연락했어.”


그리고 그 순간,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딱딱 맞아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유도 묻지 않고 대량의 보험을 들고, 그게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았던 이유.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추천해서 가입한 보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니까 아들 보기 창피해서 입을 다문 거고.


“아버지가 보험을 참 많이 가입하셨더라고요.”


나는 잠시 짜증 나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네 아버지가 나이가 몇인지 알아? 병도 있으셔서 가입해 두면 무조건 좋은 거야.”

“그렇다고 하기엔 나가는 금액이 좀 적지 않던데…”

“나중에 큰 일 생기고 나서 생돈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지.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걸?”


내 질문에도 여전히 그는 뻔뻔한 태도였다.


그의 말하는 방식이나 태도는 전과 달라진 게 없었지만, 지금은 저 말투가 상당히 거슬리게 느껴졌다.


“도저히 관리가 안 돼서요. 해약했어요.”

“아니, 해약했다고? 그걸 그렇게 일방적으로 해약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 우리한테 연락이라도 줘야 할 거 아냐?”

“아버지가 보험 가입한 것도 몰랐는데 제가 어떻게 알고 연락을 드려요? 처음부터 저한테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허참… 너네 아버지 병력이 있어서 가입도 안 되는 거 내가 힘들게 가입시킨 건데. 어려가지고 그런 거도 몰라서. 나참.”


친구분은 끝까지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듯 나를 무시하며 가르치려고 했고, 결국 나는 그 뻔뻔함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아니, 사람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요!”

“뭐? 지금 누구한테 소리치는 거야!”

“아버지가 든 보험, 지금 아버지 상태로는 적용되는 게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이미 전화로 다 확인했어요.”

“그 뒤로 잘 지내셨으면 다 받을 수 있는 것들이야! 못 받으면 아버지 탓이지, 그게 내 탓이겠어?”

“하하, 웃기네. 진짜 웃겨. 여기서 아버지 탓을 한다고요? 근데 치매보험도 가입해 두셨네요? 아버지가 술 좋아해서 그거 때문에 병원을 몇 번이고 다녔던 걸 모르실 것 같지도 않은 양반이 그딴 걸 가입시켜? 알코올성 치매라 보상은 아예 받을 가능성도 없다던데, 보험 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가입시켰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소리치기 시작하자, 무언가 잘못된 분위기를 느꼈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으셨어?”

“허? 이게 뭔 X 같은 소리시지? 이미 회사 쪽에 있을 때부터 그런 증상 있던 걸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살살 꼬셔서 보험만 잔뜩 가입해 놓고 이딴 소리나 하는 게 말 된다고 생각해요?”

“......”


내 분노에 친구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 분노가 사라질 일은 없었다.


“아니 말이라도 해보라고요. 당뇨도 있고 뇌졸중 증상도 있는 사람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 그게 정상적으로 가입한 거겠어요? 그래놓고 뭐? 내 덕에 가입했어? 말이 되냐고요. 네? 말을 해보라니까요?”

“그 당시에는 아버지도 다 듣고 확인한 부분이고…”

“아버지가 잘 모른다고 이용해 먹었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알겠구먼, 허? 혹시 핸드폰이랑 티브이 이것도 당신이 한 거예요?”

“아버지 핸드폰이 오래되기도 했고, 그러니까 올라가시기 전에 해드린 거지. 하는 김에 전부 묶어서 하면 얼마나 싸지는데.”

“와, 이 사람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그래서 늙은이 혼자 사는 곳에 컴퓨터도 없는데 인터넷을 설치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것도 아내분이 파는 거예요?”

“...... 아내는 아니고.”

“아니면, 뭐 동생이나, 사위 같은 사람이 했나?”

“......”


어쩐지 연락이 없다 했더니, 괜히 연락했다가 불편사항 같은 걸 들으면 곤란해지니까 일부러 피한 듯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아버지가 이것저것 신경 써준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이렇게 챙겨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이득만 챙겨 먹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어쨌든 보험하고 통신사, 그것들 전부 해약했으니까 알아두세요. 사람이 정도껏 뻔뻔해야지. 내 덕인줄 알라고? 저기요, 꿀이라도 드셨어요? 말씀을 해보라니...”


뚝-


한참 동안 내 소리를 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전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방이 급하게 전화를 끊은 것이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번호를 차단한 것 같았다.


나도 짜증 나서 크게 소리를 치긴 했지만, 덕분인지 오히려 쉽게 진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아버지는 지금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앉아있었다.


이대로 두면 비슷한 일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앞으로 아버지의 돈은 관리하겠다 말했다.


“내 돈을 왜 네가 관리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무슨 애 같아?!”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오히려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이 먹은 노인네 취급하는 것에 대한 분노, 자신의 실수 때문에 오는 민망함 등,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는 역정이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


나는 결국 아버지와 엮이는 것을 포기하고, 조금만 더 신경 써달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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