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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죽어서도 이용당했다.

by 하명환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그래서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화는 같은 번호로 오고 있었다.


"경제진흥과 특별사법경찰입니다. 현재 무보험운행차량의 혐의자로 아버님이 지목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자, 상상하지도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네. 수사 도중 아버님의 사망말소됨을 인지하게 되었고, 사망신고인인 아드님에게 해당차량과 관련하여 몇 가지 조사할 것이 있어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전화는 보이스피싱이 아니었고, 연락은 아버지가 살고 있던 지역의 군청에서 온 것이었다.


"해당 차량이 3년 동안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과 속도위반 등으로 발생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아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저희도 지금 황당한 상황이거든요."


다행히 전화하는 분의 목소리는 위협적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금 진행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을 위해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해당 포터차량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네, 아버지가 직장에 계실 때 몰고 다녔던 차량입니다."


아버지의 포터는 아버지의 개인사비와 회사운영비가 섞여있는 차량이었지만, 회사 물품을 납품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두고 오는 조건으로 회사 컨테이너 박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력이 있으신데, 언제부터 입원하셨나요?"

"어... 2년 전쯤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거의 1년이 되었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게 1년 정도였으니 대충 그쯤 되었겠거니 해서 나온 계산이었다.


"아버지가 거주지역을 변경하신 건 언제쯤이시죠?"

"그건 3년? 아니지, 4년 거의 다 됐을 겁니다."

"혹시 거주지역을 변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기가 아버지 고향이라서요."


그 뒤로도 질문은 계속되었고, 나는 최대한 아버지가 그 차량을 운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 근거들과 함께 설명하였다.


다행히 그쪽에서도 이미 어느 정도 조사가 진행된 상태였는지,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부터 그 회사의 대표였던 후배분의 이름까지 전부 알고 있을 정도였다.


"혹시, 최근에 따로 차량을 이용하시거나 그런 적이 있으셨나요?"

"아뇨, 차량은 아버지 퇴사와 함께 회사에 두고 왔습니다."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후배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차량 명의를 변경하지 않고 차량을 이용하면서, 그에 대한 비용 지불을 의도적으로 피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도중에 치매가 오셔서 그다지 좋게 나온 게 아니었거든요. 거의 쫓겨나듯이 나와서, 거기 대표님 하고도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협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는 최대한 그쪽 하고는 관계가 없음을 강조하며 전화를 종료했다.


물론 아버지의 후배분이 까먹고 명의를 변경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그 사람의 이미지는 그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의금이라도 보내줬길래, 나쁜 사람은 아닌 줄 알았더니..."


그나마 괜찮게 생각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후배분과 친구분,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의외로 둘 다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분의 말대로 후배분은 아버지를 이용했고, 후배분의 말대로 친구분은 아버지를 속였다.


"하하... 참... 아버지는 돌아가셔도 편히는 못 주무시네요."


잊을만하면 이렇게 수면 위로 올라오는 아버지의 소식에 갚아야 하는 빚도 같이 떠올렸고, 언제까지 미룰 순 없다고 생각해,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가 일하시던 지역으로 향했다.


그렇게 4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은행.

놀랍게도 아버지의 빚은 계속해서 이자를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갚아야 할 돈은 3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되어있었고, 나는 떨떠름해야며 아버지의 빚을 처리했다.


"그래도,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지만 남은 금액과 관계없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차량 문제건으로 아버지의 회사에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엮기도 싶지는 않았기에 모두 털어내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아버지에 관한 일로 어디로 갈 일도 없었고, 연락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와의 추억조차 없었으니 앞으로 아버지를 떠올릴 일도 거의 없지 않을까?


이젠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지... 아무것도 안 남은 건 아니지"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열어 스마트폰으로 금액을 확인했다.


처리하려고 따로 빼두었던, 큰아버지에게서 받았던 금액.

빚을 처리하고 남은 2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 스마트폰에 표시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금액이었고, 지금까지 고생한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많지는 않은 금액이었다.


“이 돈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쓰레기인 건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지금까지 한 번도 사 먹은 적이 없던, 그것도 매우 비싼 한우를 구매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번도, 그리고 나도 아버지께 한 번도 사드린 적 없는 비싼 한우였다.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게 정리되고 나니, 왠지 먹고 싶어졌다.

그날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 온 소고기를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먹으며, 가족들과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저버린 끝에 결국 배신당하고, 또 배신당하고, 배신당한 끝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생.


그렇게 급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아버지와 같은 시간을 보냈던 그들 중 추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삶은, 인생은 실패였던 걸까?

아직 나에게 그런 것을 판단하는 건 어려웠지만…


하지만, 그래…


그런 것보다도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빨리 자야 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자, 장거리 운전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지 순식간에 잠에 들었다.


결국 나에게는 그 정도였던 것이다.


이혼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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