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까지 나답게 살기로 했다(9)

by 하명환

그렇게 며칠 후.


나와 기석은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그 아기는 기석의 딸이었고,

나의 손녀였다.


"저거 봐요. 저렇게 조그마한 얼굴에 있을 게 다 있어요."

"그래. 나도 보인다. 코하고 입이 너를 아주 빼다 박았어. 네 엄마한테 물려받은 코랑 입이 말이야."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 그만 가련다."


짧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며늘아가와 손녀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말했다.


"아버지?"


내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며 되물었다.


"뭘 놀래? 당연한 거 아니야? 이제 내가 있어봤자 방해만 될 텐데."

"방해라뇨? 아버지 덕분에 정말 큰 힘이 됐는데."

"어차피 산후조리원인가 뭔가에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늙은이가 있어봤자 신경만 쓰이지."


그 말에 두 사람이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기석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갑자기 찾아왔는데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괜찮다. 갑자기 아기가 태어날 줄 어떻게 알았겠냐. 태어날 날짜가 가깝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될 줄은 몰랐지. 덕분에 오히려 이렇게 손녀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렇게 말하며 지 어미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손녀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너도 아내 잘 챙기고. 며늘아가도 산후조리원에서 푹 쉬고. 내 아들이지만 막 부려먹어도 된다."

"정말 고마워요 아버지. 아버지가 없었으면 정말..."

"됐다. 그런 소리 말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 따르러 와라."


'그 술이 내 입으로 들어올지 내 영정사진이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장난스럽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 말은 역시나 무언가의 힘에 의해 강제로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이제 딱히 아쉽지 않았다. 그저 이 아이가 큰 모습을 나는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지.


그렇게 한참을 자식부부와 이야기한 후, 약간의 미련을 남기고 떠나려고 하는데 어미의 품에서 조용히 자고 있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으에에에에엥!!!"

"어머. 갑자기 얘가 왜 이러지? 지금까지 이렇게 크게 운 적이 없었는데. 할아버지가 떠나는 게 그렇게 슬펐어?"


며늘아가의 손길에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 손녀를 보며 나는 손녀의 불을 쓰다듬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꽈악


손녀가 내 손가락을 잡았다. 마치 놓치지 싫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어머... 정말 할아버지가 가는 게 싫었던 거야?"

"하하, 벌써부터 눈도장을 제대로 찍으셨는데요?"


다들 놀라며 반응했지만, 가장 놀란 것은 나였다.


손녀가 내 손가락을 꽈악 쥐는 순간, 어째선지 나에게 죽음을 선고했던, 그리고 날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안내했던 소녀가 떠오른 것이다.


한참을 내 손가락을 잡고 있던 손녀는 손가락을 떼자마자 잠에 빠졌고. 나는 어째서인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하하. 하하하하."

"아버지?"

"난 이만 가마. 잘 지내라."


이제 정말로 남은 미련이 하나도 없어졌거든.


그렇게 내 집으로 돌아오고 또다시 평범한 하루가, 여전히 우리 집에 찾아온 이 씨와 술판을 벌이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손녀를 보고 왔는데 말이야~"

"어휴... 내가 진짜. 억울해서 나도 서울에 가서 보고 오던가 해야지 원."


이 씨에게 손녀를 보고 왔다고 자랑하기도 했고.


"이거 가져가서 안사람이랑 같이 먹고 그래라."


오랫동안 마시지 못했던 술을 이 씨에게 주기도 했다.


"아니, 이거 그 귀한 술이잖아요? 몇십 년 된 그..."


원래는 아내의 출산을 축하하며 마실 예정이었던 술이었다.


미련하게 과거에 묶여있었기에 마시지 못하던 술이었지만, 더 이상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술이었다.


"괜찮아. 내가 아주 기분이 좋거든. 하하하."

"손녀를 보고 와서 그런가 기분이 아주 좋은가 봐?"


처음에는 거절하던 이 씨도 나에게 무언가 심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맙다며 술을 받았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평범하게... 하지만 자신에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조금씩 베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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