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ERVING
봄이와 함께 동네 운동장에 산책하러 나갔다. 잔디가 깔려있어 봄이가 뛰어놀기 좋은 곳이라 가끔 찾아가는 곳이다. 간밤에 누가 이곳에 왔다 갔는지 수색에 나선 봄이 씨. 신이 난 꼬리는 하늘을 찌를 듯 기세 등등 했고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네스 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며 흥분된 봄이를 천천히 따라갔다. 별안간 내 뒤에서 쩌렁쩌렁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왜 개를 끌고 오는 거야!"
"불법이니 빨리 나가!"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란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봄이가 아무 데나 똥을 싼 것도 아니고, 어르신을 보고 사납게 짖은 것도,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무작정 호통부터 쳤다. 계속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바람에 "네에.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아니! 우린 그냥 쫓겨난 셈이다.
화까지 나지 않았지만 아무 잘못 없는 봄이가 갑자기 구박당한 것 같은 마음에 불쾌했다.
우린 운동장을 나와 바닷가로 다시 산책을 나섰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 동물보다 귀하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들의 오만한 생각이고 우월감을 과시하는 에고적인 발상이야."
"저 할아버지는 왜 좋게 이야기해도 될 일을 이렇게 화풀이하듯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걸까?"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사람들은 왜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불쾌한 감정이나 기분을 타인에게 함부로 뱉어버릴까?"
"내가 만만해 보이나?"
요즘 현대인들은 불특정다수와 관계를 맺을 때 다소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면이 보인다. 톡 건드리면 씨앗을 뿜어내는 잘 익은 봉숭아 씨방울처럼 살짝 건드려도 싸우자는 표정으로 말을 뱉는 사람들을 적잖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봉숭아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한다. 자연의 언어는 알아갈수록 재치 있으면서 재미있다. 봉숭아 상태로 빵빵하게 마음이 팽창되어 있는 사람들은 내적으로 올라오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스스로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대로 출력해 버리기 일쑤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나 해소되지 않은 마음의 찌꺼기를 함부로 타인한테 뱉어내는 건 물리적인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상황이나 생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바로 막말을 뿜어내는 사람을 만난다면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 만약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을 봉숭아 꽃으로 상상하는 건 어떨까?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 감정 표현을 통해 우리는 상대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내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일 수로 말과 행동이 거칠고 폭력적이며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불안도가 높고 내면의 힘이 약한 사람일수록 스스로 소화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마음의 불순물들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일시적인 평안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들을 스스로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고 안에서 쌓이기만 하면 정신적인 변비로 고통받을 것이다. 방을 제때에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쓰레기장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통이 쌓여갈수록 불안이나 불만족감이 커질 수밖에 없으니 악순환의 고리에서 스스로 괴로워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고통의 연쇄고리에서 벗어나려면, 내면을 성찰하는 내적인 힘을 키워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세계관 속에서, 어떤 패턴으로 생각하고, 어떤 개념들을 쓰면서 살고 있는지 관찰하고 스스로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해결해야 한다. 글쓰기가 이런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아주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토해내고 다시 그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이 생긴다. 흙탕물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내 마음속이 조금씩 정리되고 정화되어 가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과 깊은 생각들을 만나게 된다.
마음속이 정갈해지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훤히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들을 읽을 수 있기에 필요함과 불필요함을 구별하는 지혜가 생긴다. 타인과 소통할 때도 차분한 마음으로 예의와 진심을 다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만남이나 자리에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는다. 내 마음자리에서 시작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힘은 자아성찰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불안, 분노, 질투 우울과 무기력 등 이 모든 마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역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분노나 우울 같은 감정뒤에 어떤 이유가 숨어져 있는지, 충족되지 않은 어떤 욕망들이 작동하고 있는지, 내 안의 어떤 결핍 때문인지 진솔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진정한 치유는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툭 건드리면 싱그러운 향기를 발산하는 사랑의 꽃이 가득 피어있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정원을 내 마음밭에 가꾸어 내기를, 부디 모두 진정으로 평안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