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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공간

나만의 성소같은 공간을 상상한다면

by kaei

누구나 애정하는 공간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곳의 인테리어, 은은한 향기, 그리고 잔잔히 울리는 소리 들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다양한 감정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사직서를 품고 다니지는 않지만, 사직서를 던지며 시크하게 회사 밖을 나서는 상상은 수도 없이 해봤다. 아침마다 차가운 쇠로 된 회사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깊이 한숨을 내뱉는다. 가슴속 불안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내쉬는 숨을 타고 깊숙이 빠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형광등 불빛 아래 텁텁하고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몸을 다 태우고 꺼지기 직전의 시들어지는 촛불처럼 시들시들해진다. 방전된 육신을 질질 끌고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간신히 불사 질러 덜컹거리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또 한주를 간신히 버텨낸 나를 위한 성소와 같은 곳, 주말이면 나는 쓰러지기 직전의 육신을 끌고 그곳으로 향한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아담한 크기의 작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간단한 브런치도 시켜 먹을 수 있어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안식처이다. 하얀 외벽에 따뜻한 나무색 테두리로 크게 낸 통창이 포인트인, 마치 그림 액자와도 같은 외관을 가진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갓 내린 듯한 따뜻한 커피의 진한 향과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향이 동시에 코를 부드럽게 간질인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링거 수액을 맞은 사람처럼, 잿빛으로 흐릿했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어서 오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반겨주는 사장님, 40대 중반의 아담한 키에, 윤기 나는 단발머리를 한 고운 사람이다. 늘 주름 선 블랙 바지와 셔츠로 정갈하게 입고 다정하게 맞이한다.

"사장님 단호박 수프가 너무 그리웠어요."

"호호호, 오늘 스페셜로 준비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나는 창가의 가장 끝자리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햇살 맛집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명당이다. 폭신한 의자에 몸을 맡기고 통창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창밖 풍경을 구경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가로수와 바쁘게 지나가는 자동차들, 그리고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향긋한 커피 향이 코를 간질였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류이치 사카모트의 ’아쿠아‘의 음율이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사장님이 나무 카운터에서 커피를 내리려고 원두를 갈고 있었다. 갓 내린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의 화사한 꽃향기와 오렌지 향이 햇살 가득한 아담한 공간에 퍼져 구겨졌던 내 마음까지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늦은 아침, 나무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도 두 테이블 더 있었는데, 조용히 홀로 책을 읽거나 함께 온 일행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주는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산뜻한 향의 커피로 준비했어요. 요즘 양배추가 맛있어서 사우어크라우트를 만들어 봤어요. 호밀빵으로 루벤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드셔보세요."


사장님이 정성껏 만들어 준 따뜻한 단호박 수프와 루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이 공간은 마치 포근한 집처럼 따뜻함으로 가슴을 가득 채운다. 나무 테이블의 부드러운 질감과 따뜻한 햇살, 은은한 음악, 향긋한 커피 향, 그리고 사장님의 따뜻한 미소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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