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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분이 어때?

그냥

by kaei

오늘 기분이 어때?

오늘 기분은 그냥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기분이 꼭 좋아야 하나? 기분이란 뭐지?


기분은 [대상ㆍ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이라고 사전에 나와있어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생기는 지속적인 마음상태 같은 것이라면 상황이나 환경 등 조건이 바뀌면 또 바뀐다는 거잖아. 영원한 건 아닌 거지.


그럼 요즘 기분은 어때?

요즘 기분은 조금 가라앉아 있는 듯해. 약간의 게으름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중간쯤, 겨울잠에서 덜 깬 느낌이랄까. 아직 봄이 오기 전이라서 그런가? 그리고 몸은 아직도 방학 동안 누적된 피로에서 덜 회복된 느낌이야.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이유는 최근에 많은 추억과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작별이었어. 각자의 공간 변화의 이유로 아쉬운 작별을 했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떠난 자리가 컸나 보다.

만나고 헤어짐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만남과 헤어짐이 남기는 구멍의 크기는 만나는 동안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과 추억의 무게만큼 큰 것 같다.

그래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나 봐. 많이 허전하고 서운해. 그리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아져서.


그 구멍에서 시린 바람이 들어오나 보다. 아직 겨울이라. 바람이 많이 차갑잖아.

사람들이 많이 그리운가 보다. 떠난 사람, 헤어진 사람, 아직 오지 않은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를 가장 따뜻하게 품어주는 봄이가 곁에 없어서야. 할아버지한테 효도 더 하고 오라고 처음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로 했거든.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찬 바람이 지나면 봄이도 돌아올 거고 날도 따뜻해지면 마음의 온기도 올라갈 거야.

따뜻한 바람이 그립네. 그러면 몸도 크게 기지개 켤 것 같아. 마음의 주름도 좀 펴지겠지.


겨울 방학은 어땠어?

보름 정도 시끄러운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느꼈거든. '우리 모두 참 열심히 사는구나.'하고. 택시를 여러 번 탔는데 모두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었어. 하루는 눈이 갑자기 펑펑 쏟아지는 바람에 도로가 미끄러워 우리가 탄 택시가 버스와 작은 접촉 사고가 생겨서 택시 앞 범퍼 부분이 긁혔던 적도 있어. 그때 눈 속에서 허둥지둥하시는 기사님의 모습이 마음에 계속 남아있네. 급변하는 시대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지 힘든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도시에 가면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용한 제주 시골에서 살면서 느끼지 못하는 속도감과 긴장감 그리고 절박함이 느껴진달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되더라고.


너도 열심히 살고 있잖아.

열심히 산다는 것과 잘 산다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열심히'는 [어떤 일에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라고 하고 '잘'은 [옳고 바르게 혹은 익숙하고 능란하게]라고 사전에 나와있네. 너무 사는 일에 골똘해서 사는 일이 곧 돈을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먹고사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능란하게 잘 살아내고 있는가라고 묻고 싶어. 늘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는 일이 불안과 안락의 경계를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야. 계좌가 불어나면 덜 불안하고 계좌가 바닥나면 불안한 기분에 휩싸여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기도 해.


요즘 우리 사회는 돈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 보편화된 룰이잖아. 그러니 당연히 그런 기분이 들지.

이런 불안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전반적인 기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나? 조금만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도 낙오될까 봐 불안하고, 조금만 게을러져도 자괴감이 들고, 조금만 멈춰도 다음이 걱정되는 이런 기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래서 '꼭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과연 잘 사는 걸까?'라는 의문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냥 매일매일 달라지는 감정과 기분을 그대로 느끼고, 만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정을, 이야기를 나누고, 나눌 사람이 없는 날에는 홀로 소소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 하고, 게을러질 땐 잠깐 게으르게 살았다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을 땐 열정적으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면 바로 연락해 보고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궁금하면 인터넷 세상에서 아니면 책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면서 살다 보면 잘 살아지지 않을까?

오늘 우울하다면 그냥 오늘은 우울한 날인거지. 그 기분이 서서히 지나갈 때까지 스스로를 잘 보살펴주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 기분에 우리의 삶 전체를 맡기기엔 너무 우리의 삶이 소중해. 감정과 기분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바람이 거세게 불 때도 있고, 시원하게 혹은 부드럽게 불 때도 있고 바람이 없는 날도 있잖아. 바람은 바람일 뿐이지. 내가 바람을 어떻게 맞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기분은 그냥 그래. 오늘 별로 특별하지 않아. 요즘 그냥 떠난 사람들이 그립고 그 빈자리 때문에 허전했어. 그랬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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