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간관계란
드르륵... 회의 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화면엔 '소라' 두 자가 떴다. 소라는 직장에서 만난 친구다. 이젠 서로 다른 직장을 다니지만 자주 연락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였다. 그녀는 늘 자기 삶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곤 했다. 나는 익숙하게 경청하며 적당한 위로와 조언을 건네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축축한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영화를 보며 늘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또 무슨 일이지... 귀찮은데..." 망설임도 잠시, 친구의 부름을 외면할 순 없었다.
"바람아, 여기야!" 카페 창가에 앉은 그녀는 낯익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 있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습관처럼 물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남편과의 갈등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미 이혼을 결심했고, 집을 정리해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 했다. 늘 듣던 이야기라 별다른 감흥 없이 흘려듣고 있는데, 그녀의 다음 말에 귀가 흠칫 놀랐다.
"근데 나 어제 남편이랑 술 마시다가 회사 동료한테 문자를 보냈어."
"뭐? 뭐라고 보냈는데?" 그녀가 보여준 건 장문의 문자 메시지 세 통이었다. 평소 의지하던 회사 동료에게 그간 쌓였던 서운함을 쏟아낸 내용이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물었다. "소라야, 이 문자를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제 이 사람 얼굴 못 볼 것 같아."
"내가 읽었을 땐 이 문자들은 너의 에고로 가득해 보여. 자기 생각만 하면서 일방적으로 서운함을 퍼부은 거잖아. 친구로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녀는 한동안 창밖을 보며 말이 없었다. "나 이제 그 사람 얼굴 어떻게 봐..." "그동안 서로 잘 지냈다면 네 마음을 이해할 거야. 만나서 솔직하게 이야기 나눠 봐." 나는 그렇게 위로한답시고 그녀의 말에 나의 생각을 보탰다.
그날 이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었나?' 늘 들어주기만 하던 내게 쓴소리를 듣자 연락을 끊어버린 그녀가 야속했다. '뱀파이어 같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늘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늘 진이 빠지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삶에서 멀어져 있었다.
한 달 후, 소라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거다. 회의 중이라 받지 못했지만, 무시하지 못하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소라야, 잘 지내?"
"바람아, 오랜만이야. 너 여행 간다길래 연락 안 했는데, 잘 다녀왔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목소리였다.
(혹시 나만 오해한 건가? 내 말이 너무 날카로웠던 걸까? 나도 어쩌면 내 생각만 한 게 아닌가? )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화를 끊고 바람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나만의 오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