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엄지 Jun 26. 2024

핑크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

명절은 나에게 일 년에 두 번 집에 내려가는 날이다.

추석 기차 예매 일정을 확인한 뒤 알람을 맞추고 새벽에 일어나 추석 하루 전 날짜로 기차표를 예매하고 예매한 시간과 날짜에 맞춰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길고도 짧은 다섯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하니 집안 가득 쩌는 기름 냄새가 나를 맞아주었다. 혼자 분주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때까지 이마에 땀을 닦아가며 전을 부쳤다.


제사 음식이 모두 준비되니 고요하고 심심한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우리 집. 뭐 할 거 없나 괜스레 방을 뒤지다가 아주 낡은 앨범 하나를 찾았다. 아기 때 사진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한 듯이 한 장 한 장 눈에 담아 가며 보았다.


어린 시절 사진으로 가득한 앨범 속 맨 뒷장에는 유일한 가족사진 한 장이 붙어있었다. 내 옆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엄마를 보는데 조금씩 시야가 흐려졌다. 어쩜 이렇게 날씬하고 예쁜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보고...


중 단발에 자연스러운 갈색 머리, 핑크색 반팔 블라우스에 핑크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젊은 시간을 보고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한껏 꾸민 엄마의 모습이 아름답고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우리 엄마는 안 늙을 줄 알았는데... 맞아 엄마는 갈색 머리가 잘 어울렸었지’ 생각하며 흐릿한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의 엄마는 새치가 싫다고 독한 염색약으로 까맣게 염색한 짧은 머리와 가볍고 시원하다고 자주 입는 색이 바랜 목 늘어난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새로운 블라우스를 사고 핑크색이 질리다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며 ‘엄마 예뻐?’ 하고 묻는.


엄마를 위한 시간 속에서

엄마에 대해 묻는 엄마를 다시 보고 싶어요.


그리고 안아주고 싶어요.

당신보다 자식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낮과 밤을 살아내느라 참 많이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