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위에서 배운 유연함
캠핑장에서 맞이한 둘째 날 아침은 유난히 고요하고 맑았다.
커피 한 모금과 간단하게 빵으로 아침을 먹고 바로 글렌피딕 증류소로 향했다.
길 초입은 약간의 오르막이 있었지만, 길가에 핀 들꽃들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 덕분에 숨이 차기보다는 오히려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다.
구름 낀 하늘을 보니 ‘아, 여기가 스코틀랜드가 맞구나…’ 싶었다.
들판은 온통 초록빛으로 바람은 가끔 긴 걷는 시간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끝에 닿는 흙과 풀잎의 감촉이 참 좋았다.
걷다 보면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걸 느꼈다.
2시간쯤 걸었을까.
멀리서 **글렌피딕 증류소(Glenfiddich Distillery)**의 지붕이 보이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증류소 입구를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길 옆 숙성창고에서부터 위스키 향이 흘러나온다.
‘내가 왔구나... 여길...’
드디어 입구로 들어서면 석조 건물과 나무 냄새가 마치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1887년, 윌리엄 그랜트(William Grant)가 가족들과 함께 세운 글렌피딕은 지금까지도 가족 경영을 이어오는 보기 드문 증류소다.
이름 ‘Glenfiddich’는 게일어로 **‘사슴의 골짜기(Valley of the Deer)’**라는 뜻인데, 그래서 병 라벨에도 당당히 사슴이 그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 몰트 위스키 중 하나이고,
‘최초로 면세점에서 판매된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역사도 갖고 있다.
덕분에 여행자들이 공항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위스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글렌피딕의 특징은 과일향과 부드러운 질감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더프타운(Dufftown)의 맑은 물과 전통 구리 포트스틸에서 태어난 위스키는,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위스키를 좋아하지만 맛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건 잘 못한다.
‘맛있다, 맛없다, 달다, 쓰다, 부드럽다...’
이게 거의 전부다.
그런데 웃긴 건, 이래 봬도 비싸고 맛있는 건 또 귀신같이 알아본다는 거다.
맛 표현은 서툴러도, 위스키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에...
우리는 투어 대신 방문자 센터와 굿즈샵, 그리고 바(bar)를 방문했는데
바(bar)는 물론 가는 곳마다 그 특유의 향과 진한 위스키 향, 나무 냄새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냄새에 먼저 취하는 것 같았다.
바(bar)에서는 간단한 안주와 위스키 한 잔씩을 마셨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사려면 천 번 만 번을 고민해야 하기에 여기서 잔으로라도 마셔보기로 했다.
알다시피 위스키의 맛 표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과일향과 가벼운 스파이시함(나는 보통 맵다고 표현한다.)이 입안에 정말 부드럽게 퍼진다.
또 목 넘김이 무겁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맛과 느낌의 위스키다.
이건 확실하다. 잘 왔구나...
2시간을 걸어서일까, 약간의 피로감과 부드러운 위스키, 공간 곳곳에 스며든 나무향이
기분 좋은 나른함이 되어 온몸을 감싸고, 천천히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 모든 감각이 이 순간에 머물고 싶은 듯했다.
어제오늘 짜증 한 번이 안 났다.
신기하게도...
사실, 이렇게 느긋하게 걷는 시간이 내게는 오래도록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다.
계획이 틀어지면 마음이 쉽게 불안해지고, 작은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나고, 인상이 써지고,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인다.
일본에서의 생활 10년...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중,
5년 전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 몸에 배어있던 모든 습관과 나의 성격이 한 번에 흔들렸다.
바뀐 환경, 멈춰버린 바쁜 일상, 갑자기 많아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방향을 잃었고, 우울감과 무기력이 스며들었다.
누군 배부른 소리라고 하고
누군 행복에 겨운 소리라고 하고
누군 시간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고
누군 부럽다고 하고
누군 애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힘든 이유를 그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결정해놓고 있었다.
나에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말들로 위로하면서...
내 마음은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웃으며 넘어갔고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곁에 있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해하는 게 보였지만 그는 옆에서 조용히 나를 붙잡아 주었고, 말보다 행동으로 안심시켜 주었다.
출근해서도 내 상태를 살폈고,
퇴근을 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왔고,
주말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가기도 했다.
병원에 가자는 말, 상담을 받아보자는 말도 내가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제안했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상담과 약물치료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나를 버티게 한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옆에서 나를 지켜 준 그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은 내가 짠 계획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일부러 계획을 비워두기도 한다.
물론 그 성격이 어디 가겠냐만은...
여행지에서의 일정을 이렇게나 듬성듬성 비워둔다는 건 지금까지 나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에는 - 글렌피딕 증류소 방문 - 이것뿐이었다.
몇 시에 어디, 몇 시에 무얼 하고, 몇 시에 뭘 먹고... 이런 문장은 단 한 줄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 좋았던 것이다, 오늘이...
길을 조금 돌아가도, 하늘이 흐려져도, 걸음을 멈추고 꽃을 보게 되더라도,
그게 나를 더 단단하고 여유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쪼개 쓰듯 살아간다.
내 친구만 봐도 하루 일정표가 빼곡하다.
옛날의 나도 그랬듯이...
일정이 꽉 차야 마음이 놓이고, 잠시 멈추면 불안해진다.
옛날의 나도 그랬듯이...
‘이렇게 쉬어도 되나?’
그 질문이 스스로를 조이기 시작하면, 언제부터인가 휴식조차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 의욕이 없는 날.
누군가의 목소리가 멀게만 들리는 날.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너무 오래, 너무 세게 달렸다는 것을...
내 몸이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을...
무기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돌발 사건이 아니라,
조금씩 쌓인 피로와 외로움이 만든 그림자에 가깝다고 한다.
병원에서 상담을 하고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기도록
내 몸이 내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오늘, 그리고 내일
글렌피딕에서 돌아오는 길, 알딸딸했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위스키 한 잔이 주는 온기, 자연이 주는 위로,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드는 시간.
아마도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예전보다 덜 조급해진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이 길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쉬어가는 하루가, 내일을 걷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왠지 백수의 핑계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