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서 닮음으로, 위스키 향 따라 걷는 아벨라워

스페이강이 품은 위스키 이야기

by 마여사

언젠가 위스키 한 모금에 담긴 풍경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떠났다.
뚜벅뚜벅,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로...

이 여행엔 캠핑카도, 가이드도 없다.

좋은 배낭 하나와 좋은 신발, 그리고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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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라워, 향기로운 그 이름의 마을 Aberlour

입에 착 붙는 이 이름은 위스키 애호가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그곳

마을은 조용하고, 강은 맑고, 공기 중에선 바닐라와 오크통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기차 타고, 버스 갈아타고, 걷고 또 걷고...

그런데 너무 좋았다.

또 스페이강을 바라보며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거

그게 그렇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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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참 많이 다르다. (연애 때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니 신기할 뿐이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부터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 지도 다르다.


여행을 할 때도 그렇다.
나는 맛있는 음식, 예쁜 거리, 유명한 볼거리를 먼저 찾아보는 타입이고,
그는 산과 강, 걷는 길 같은 자연을 먼저 찾아보는 사람이다.


나는 한 끼를 더 맛있게 먹자고 하고,
그는 그 돈으로 뭔가를 더 보러 가자고 했다.


서로의 취향이 엇갈릴 때도 있었지만,
이번엔 신기하게도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위스키 여행을 하자!”
그 한마디에 우리는 미소지었다.


그래서 지금,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향이 번지는 길 위에서 서로 다른 발걸음이 한 박자에 맞춰지고 있다.




스페이강, 그리고 위스키 냄새 스며든 공기

**스페이강(River Spey)**은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하지만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단연 가장 유명한 강이다.

강물이 은근히 붉거나 갈색빛을 띠는 건 토탄(peat)과 석영 모래, 그리고 스코틀랜드 특유의 흙 때문이라고 한다.
빗물이 흐르며 이 토양을 거쳐 스며들다 보니 이런 붉은빛과 함께 미네랄이 가득한 강물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 물이 위스키의 첫맛이 되는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강을 보고 있으면 위스키 한 잔의 풍미가 어디서 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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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머문 곳, Speyside Gardens Caravan Park

아벨라워 마을 중심에서 조금만 걸으면 초록빛 자연 속에 조용히 자리한 캠핑장이 하나 있다.
바로 **Speyside Gardens Caravan Park**

캠핑카 없이도 괜찮다. 텐트 사이트도 아주 잘 되어 있다.

잔디는 폭신했고, 공간은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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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엔 새들이 지저귀고... 또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고...

알람이 필요 없는, 하지만 기분 좋게 눈이 떠지는 곳이었다.

샤워실과 화장실도 깔끔하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도보 10~15분이면 마트도 스페이강에도 닿을 수 있는 거리니 무거운 짐을 짊어진 뚜벅이에겐 정말 감사한 위치다.

밤엔 살짝 쌀쌀하지만, 위스키 한 모금과 내 옆에서 딱 붙어서 자는 그가 있어서 따뜻했다.

어쩔 땐 너무 밉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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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도 많이 티격태격했다.

신혼 초에는 정말 안 싸웠는데, 5년 차가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다투기 시작했다.

서로의 탓만 하고 누가 잘못했는지만 따진다.

감정이 격해진다.

싸우고, 침묵하고...

그 분위기가 너무도 싫다.


싸워도 절대 각방은 안된다는 결혼초의 다짐이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어서

길지 않은 침묵을 깨고 다시 대화를 한다.

이렇게 참 많은 계절을 같이 건넜다.


이것들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일까?

내가 맞고 네가 틀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그냥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선택한 것일 뿐이라는 걸...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이해가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같은 길 위에서 다른 걸 보고 있어도, 결국 같은 곳에 도착했다.

그게 우리 여행의 방식이고, 부부로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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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본 음식들과 드라이브 키트로 받아온 위스키들은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오늘 숙소까지의 언덕길은 조금 헉헉대고, 마트에서 장 본 짐은 어깨를 무겁게 했지만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서 위스키 한 잔 따르며 하늘을 보니

행복만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여행한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안심이 되니까.

행복하니까...


내일이 기대되는 아벨라워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