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정관사와 부정관사
The, a, an.
A와 an은 단수 명사 앞에 사용되는 부정관사이고, the는 특정성을 지닌 명사 앞에 사용되는 정관사입니다.
설명만 본다면 크게 어려울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관사는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이 가장 넘기 힘들어하는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관사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면 관사의 정의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정 관사와 단어가 조합되었을 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을 길러야만 하거든요.
물론 단순한 의사전달조차 힘겨워하는 초보자라면 굳이 관사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사의 활용이 엉망이더라도, 적절한 단어만 잘 조합해낸다면 어떻게든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어가 어느정도 익숙해진 중급자 이상부터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보다 명확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선 적절한 관사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명사나 동사는 잘못 활용되더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고 맥락에 의존하여 화자가 의도한 바를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만, 관사가 잘못 활용되면 문장이 훨씬 어색해지는 것은 물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초콜릿을 건네면서 “저 초콜릿 먹어볼래?”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확한 비유는 아니긴 해도, 무슨 느낌인지 얼추 감이 오실 겁니다.
관사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자면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질테니 이번에는 간단하게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활용에 따라 문장의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예시를 통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부터 시작해서 점차 난이도를 높여가보죠.
고양이를 설명할 때 부정관사 a를 사용했으므로, 고양이는 한 마리였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군요. 하지만 부정관사는 단순히 수량 정보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대상에 대해 청자가 어떠한 배경지식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타내기도 하기에, 화자가 길에서 본 저 고양이를 청자에게 이야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정보 역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진 크게 어렵지 않죠?
굉장히 흔하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to open a door” 와 “to open the door”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계신 영어 학습자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겁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He opened the door to the kitchen”은 “부엌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정도의 의미를 전달하지만 “He opened a door to the kitchen”은 “부엌으로 가는 문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아무거나 하나를 열었다”는 정도로 해석됩니다.
상대방에게 그 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한 개뿐이라면 거의 대부분 정관사 the를 사용해야 합니다. 부엌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니까요. 때문에 ‘a door나 the door나 똑같은 의미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아무데서나 “I opened a door”라고 했다간 의아해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루 사과 한 개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유명한 문구입니다. ‘Apple’에 부정관사가 쓰인 것은 꽤나 직관적입니다. ‘일단 사과라면 뭐든 괜찮다’라는 뉘앙스니까요. 다만, 왜 ‘doctor’만큼은 부정관사가 아닌 정관사를 쓴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때 쓰인 ‘the doctor’는 특정한 의사 개인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의 역할을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병원을 가야겠어” 또는 “치과에 가야겠어”라고 할 때 ‘hospital’이나 ‘dental clinic’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I need to see the doctor” “I should go to the dentist”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죠. 때문에 ‘to keep a doctor away’로 관사를 바꾼다면, 단어의 의미가 ‘그냥 아무 의사 한 명’으로 축소되면서 문장의 느낌이 팍 죽어버리게 됩니다.
사람 이름 앞에도 저런 식으로 관사가 붙을 수 있습니다. 앞서 나온 예시들만큼 흔한 형태는 아니긴 하지만,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느낌을 이해하는데에 있어서 유용한 도움을 주는 예시이죠. 저 문장에서는 주인공인 Sarah가 원래는 cheerful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원래는 전혀 이런 느낌의 캐릭터가 아닌데 갑자기 오늘따라 활발하게 대화도 참여하고 그렇더라’ 처럼요. 이처럼 평소와 달리 낯설게 행동하는 사람을 묘사할 땐 부정관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the cheerful Sarah’처럼 정관사를 사용할 경우, Sarah라는 인물이 원래 ‘cheerful’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을 풍기게 됩니다.
위에 보여드린 예시들을 천천히 곱씹어으며 그 느낌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시다보면, 정관사가 사용되는 상황과 부정관사가 사용되는 상황에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부정관사는 ‘랜덤함’, ‘새로움’, ‘낯섬’ 등의 느낌을 주는 반면, 정관사는 ‘익숙함’, ‘구체성’, ‘보편성’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단순히 관사의 정의 및 용도를 암기하는 것은 그러한 느낌 파악에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못 하기에, 결국 관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훈련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만 합니다.
1. 관사를 의식하며 읽기 = 지나치기 쉬운 영어 문장 속 관사를 의식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관사 감각을 기르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관사가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글쓴이가 어떤 의도로 그 관사를 선택한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2. 관사를 바꿔보기 = 영어 텍스트 속 관사를 바꿨을 때 문장의 뉘앙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해보시면 좋습니다. 관사라는 게 때로는 사물에 대한 글쓴이의 인식이 반영된 주관적 결과에 가깝기 때문에, 아무리 원어민이 사용한 관사라고 해도 그게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3. 관사를 의식하며 사용해보기 = 실제 영어로 글을 쓰거나 대화할 때 관사를 일부러 의식해보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내가 사용하는 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적합한지를 계속해서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관사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차이는 단순히 문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각과 청자가 그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관사를 이해한다는 건 단어와 문장을 넘어 대화와 서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결국 언어란 맥락을 전달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니까요. 관사를 통해 그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여러분의 영어도 한층 더 풍미있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