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르다는 착각

by 통역사 J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은 편견이 없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으며, 기꺼이 쓴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어째서인지 그와 정확히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쓴소리를 듣고 수용한다는 건, 내용의 수정이 불가피할 정도로 내 주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듣기엔 별 일 아닐 것 같지만, 자신의 주장을 정체성의 확장된 일부로써 인식하는 인간의 특성상 때로는 물리적인 고통보다도 더 괴롭게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쓴소리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쓴소리에 대한 이성적 검토보다는 감정적 거부가 앞서게 되고, 결국 상대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이건 수용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고 결론을 내려버리게 됩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반응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평소에는 “나는 쓴소리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다가도 막상 누군가 쓴소리를 하면 “이런 부당한 생트집은 들어줄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이런 모순된 사고는 인간의 뇌가 지닌 한계로부터 기인한 결과입니다. 뇌가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최우선 목표는 논리나 이성 같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념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정보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인간의 뇌는 해당 정보를 수용하고 신념을 수정하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부정하고 왜곡해서라도 기존의 신념을 유지하고 자아를 지켜내는 쪽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세상은 “남들은 비이성적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믿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열등한 지능과 인성을 지닌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맞아, 세상에 그런 이상한 사람들 참 많지’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은 물론, 이걸 쓰고 있는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나는 타인보다 이성적인 존재다’라는 뇌가 심어주는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그러한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곧 그것에 무력하게 순응해야만함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스스로가 언제든 속아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을 경계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이 엄습할 때 그 원인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겸손한 자세로 스스로가 틀렸을 가능성을 철저히 검토하는 용기를 길러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없이 뇌가 멋대로 현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아를 과잉보호하게 내버려두었다간, 언젠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현실과 자아 사이의 간극이 나를 집어삼킬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다’라는 믿음을 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것을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반사적으로 개입하여 자아를 보호하려 들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뇌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인지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지속해나가다보면,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이 모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씩 뼈저리게 깨달아나갈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이기적이고도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죠. 이따금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빠져 자신만의 정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마치 눈과 귀를 막아버린 괴물과도 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만약 그런 괴물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혐오하고, 짓밟고 싶은 충동이 강렬히 일어난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 니체가 남긴 격언을 스스로 되뇌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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