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신고 들어와서 구두 신고 나간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에 있는 딸아이 집은 별천지 같았다.
밤이면 서울의 밤야경이 아름답고, 낮이면 키가 높은 나무가 가져다 주는 바람은 시원했다.
하지만, 배달음식이니 택배니 이런 문제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거주할 집을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안암동도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인근에 고층 아파트가 입주하는 곳도 있었고, 지금 딸아이가 살고 있는 곳도 재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로이 입주하는 아파트는 가격이 후덜덜 했다.
상암동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연히 바로 옆 고양시 향동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허허벌판에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솟아오르고 있었고, 상암동 MBC 방송국과는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또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당시 1년 후 입주를 한다고 했고, 이미 분양가에 프리미엄 5천만원이 붙어 있었다.
갑자기 5천만원이라는 돈이 공짜로 지불해야만 하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망설였다.
그래서 상암동 방송국 주변 아파트를 알아보았다.
'아, 비싸다.'
딸아이와 나는 우리 형편에 맞는 아파트를 찾기로 하고 다시 그곳으로 갔다.
1년 후 30평 새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주위 인프라가 부족하긴 하지만 '장화신고 들어가서 구두신고 나온다'는 신도시의 법칙을 믿어보기로 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 자금 보금자리론]을 이용하여 대출을 받고, 학생때부터 2년간의 직장생활을 하여 모은 돈과 부모가 증여세 없이 5천만원까지 줄수 있어 그것을 이용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딸아이가 대학을 다닐때 나는 용돈을 넉넉하게 주었고, 그것으로 언젠가 요긴하게 사용할 날이 올터이니 잘 모아놓으라고 했더니 금액이 제법 되었다.
딸아이 이름으로 청약통장도 만들어 놓았고 그 통장에도 돈이 제법 들어 있었다.
이것 저것 다 털어서 드디어 딸아이는 29세에 생애 최초의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물론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자금 출처 소명자료도 제출했고 이사비용이나 그 외 사소한 것들은 내가 지불했다.
집을 살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기회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나의 딸이 남의 집에서 살게 하기 싫었고, 형편에 맞는 집에서 살다가 좀 더 살기 편한 동네로 한발 한발 가보자는 주의였다.
나도 교통이 편리하고 학군도 좋고 슬리퍼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스타벅스에 커피를 마시러 갈 수 있는 그런 곳을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 일반인들이 벌어들이는 돈으로 물가상승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5평 월세부터 7층짜리 단층 구축아파트를 거쳐 상암동 옆 향동으로 오게 된 것이다.
비포장 도로에 집만 덩그러니 있던 그 자리에 상가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하나하나 채워지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만 세대에 가까운 이 동네가 아직까지 겉으로 보기엔 허술하기 이를데 없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첫 발걸음을 내 디뎠을 때 그 허허벌판을 잊으면 안된다.
하루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님께서 이런데 어떻게 사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웃기만 하고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장화신고 이사왔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구두신고 걸어다녀도 될 것입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