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구의 이방인들 - 4
요르단에서 시리아까지 이어진 여정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중동’하면 떠올리는 ‘종교 전쟁’이라는 자자한 악명에도 불구하고, 다소 싱겁기까지 했다.
사실 다이내믹한 사건이 터져도 곤란하지만.
어쨌든 중동도 사람이 사는 여느 곳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와디무사에 도착한 날 아침, 나는 피로에 절어 자기 바빴다. 세계여행을 향한 나의 갈망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후의 성전’ 편의 주무대였던 페트라(‘최호의 성전’을 어찌나 인상 깊게 봤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로는 내내 페트라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다)를 지척에 두고서도 말이다.
페트라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 아랍 왕국 도시의 유적이라고 한다(영화 상의 배경은 당연히 허구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피곤해서 기절한 나와 달리, 해원 언니는 일찍부터 나가 페트라를 온종일 돌아보고, 레바논 출신의 의사 두 명에게 웬 식사초대까지 받아왔다. 나는 이튿날에야 다크와 같이 페트라를 보러 갔다.
페트라는 유적지 내부의 성전도 유명하지만, 그곳까지 죽 이어지는 시크 계곡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석류석 빛깔의 기형적인 사암 절벽이 유려한 곡선으로 이뤄내는 조화는 지구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구불구불한 계곡을 쭉 따라 걸으며, 이 길의 끝에서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더랬다.
와디무사를 떠난 건 도착한 후로 사흘째 아침이었다. 사실 요르단에 대해선 페트라와 사해(死海) 외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이집트에서도 그랬지만, 막상 중동에 와보니 나는 세계의 이 편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을 알았다. 언론 매체가 쏟아내는 각종 정보도 실은 대단히 피상적인 데다,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 내 안에서 제대로 처리되지도, 그러므로 당연히 축적되지도 않은 것 같달까.
그건 해원 언니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무지에 대한 자각과 호기심의 유발이 꼭 동시에 일어나진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중동 남자들에게서 무수히 겪은 외국인 여성에 대한 끈질긴 추행 때문에 더 알아가고픈 의지를 먼저 상실해버렸는지도 모르겠고.
누웨바에서 와디무사까지 동행한 다른 일행들과 헤어져 다음으로 향한 곳은 태윤을 만나기로 한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다. 암만의 적당한 게스트하우스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나와 해원 언니는 인근 지역을 어슬렁대며 태윤을 기다리는 중이다. 솔직히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태윤이 아니라, 그가 카이로에서 공수해오겠다고 약속한 고추장이지만.
암만에서의 날들은 무덥고, 지루하고, 여유롭다. 나는 매일 주방을 겸한 숙소 옥상에서 하늘을 보거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문장, 혹은 밀린 일기 겸 에세이를 끼적인다.
이집트에서부터는 구름 보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강렬한 햇볕에 습기가 전멸한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힌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밤만 되면 온몸이 땀에 푹 전다(이러니 갈증이 가시질 않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물이 귀한 곳이라 샤워도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버티다시피 중동의 기후를 견디던 3일째인가, 4일째 되던 날이다. 나는 하늘 위를 떠가는 달랑 한 조각의 구름을 발견하고는 순간 멍해졌다. 처음엔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저렇게나 텅텅 드넓은 하늘에 손바닥만 한 구름 딱 한 조각?
몹시 비현실적이고도, 어쩐지 낭비(?)가 지나치다.
“언니, 저것 봐.”
수박을 먹으며 늘어져 있던 언니가 내가 가리킨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구름?”
“……되게 말도 안 되는 걸 본 것 같지 않아?”
“UFO 같다.”
언니의 말에 실소가 터진다.
“언니네 별에서 언니 데리러 왔나 보네.”
“뭐어?”
해원 언니는 헛소리 말라는 얼굴로 콧방귀를 뀐다.
나는 불쑥 궁금증이 일었다.
“언니는 언니가 좀 별나다는 거 알지?”
언니는 난간에 턱을 괴더니 구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음…… 가끔 듣지, 그런 말. 근데 솔직히 나는 어디가 별나다는 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왠지 자꾸 나만 사람들 바깥에서 겉도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건 맞아. 그게 참 이상하고, 또 나를 힘들게 하더라고. 내가 심리학자가 된 건 그런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였어.”
심리학자가 된 언니의 마음에 그런 의지가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은 좀 알 것 같아?”
언니는 애매한 고갯짓을 한다.
“어디가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왜 이상해졌는지는 좀 알겠어. 원인 분석을 해봤거든.”
“뭔지 물어봐도 돼?”
해원 언니는 초연하면서도 씁쓸한 얼굴이다. 더 이상 아프진 않지만 흔적은 남아버린 상처를 말하는 사람의 표정 같다.
“내 엄마는 말이야,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요조숙녀셨어. 부유한 교수 집안의 딸로 태어나 평생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자라오셨지. 그러다가 가난하지만 똑똑한 머리 하나로 박사까지 된 내 아빠와 결혼을 하신 거야.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아끼던 제자여서 만남이 잦았대.”
“……”
“엘리트로서 전도유망한 미래가 보장된 아빠에게 반한 엄마는 결혼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어.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던 거지. 아빠는 갓 교수직을 맡은 젊은 남자잖아. 교수라는 그럴싸한 타이틀 외엔 경제적인 혜택이 전무할 밖에. 그래서 엄마는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부유한 집안의 딸로서 누려온 대부분의 혜택을 포기하셔야 했대. 게다가 내 위로 두 언니가 태어나면서 청춘을 육아로 다 소진하신 거야. 그래도 거기까지는 젊은 체력으로 어떻게든 버티실 수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늦둥이인 내가 덜컥 생겨버리자, 엄마의 인내는 거기서 끝장났지.”
잠시 입을 다문 언니의 눈빛이 일렁인다.
“엄마는 유독 내게 요구하는 것이 많으셨어. 자신이 결혼과 출산, 육아 때문에 접어야 했던 본인의 꿈이랄까, 마땅히 누려야 했으나 빼앗겼다고 생각한 꽃다운 청춘의 본인 인생을 딸인 내게 대리하려 하셨던 거야.”
“……”
“그래서 나는 별의별 과외를 다 했어. 엄마가 결혼 전에 어려서부터 배웠던 각종 교양 항목까지 모조리. 악기며, 발레며……, 심지어 내 외모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부족한 걸 참지 못하셨지. 그러다 불현듯 내게 이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탈력감이 찾아오면, 이토록 내게 집착하는 본인이 싫어서 정작 나를 무관심 속에 방치해 두셨어.”
“……”
“그 주기는 몹시도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했지. 어린 나는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지 않고서야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완벽한 딸이 되라고 다그치면서 그토록 지독하게 무관심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엄마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면 못할수록 엄마의 무관심과 히스테리가 반복되는 주기는 짧아졌어. 집안은 그렇게 살얼음판 같았지만, 정작 아빠는 외할아버지 후광만이 아니라 본인 실력으로 교수로서 자리매김하느라 바빠서 거의 부재 상태였지.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셨을걸.”
“…….”
“한창 예민하던 10대의 나는 내가 마음껏 외부 세계를 탐험하고 시험해볼 수 있도록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가족과 어른의 존재를 상실한 채로 잔뜩 움츠러들었어.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에게서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타인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으로 매일이 아득하더라.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중증 대인기피증까지 생겨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지.”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언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나는 민감한 내용이 불쑥 나오지 더욱 숨을 죽였다.
“그러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갔고, 그제야 비로소 엄마에게서 벗어났어. 그리고 내 또래이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혹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니까 내 상황이 조금 달리 보이더라. 게다가 나는 더는 나를 탓하고 싶지도, 같은 상처를 거듭 들쑤시는 짓도 그만하고 싶었어.”
“……”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녀를 부정하고 미워해서도 아니었어. 그 날카롭게 벼려진 손을 굳이 잡아보겠다고 수도 없이 베이면서 그 짓을 미련하게 반복하는 나를 경멸하게 될까 봐 두려웠지. ”
그저 ‘당신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다’하는 수준의 농담으로 말을 꺼냈다가 갑자기 시작된 언니의 이야기는 굉장히 무겁고 아팠다. 해원 언니는 이런 면을 갖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 할 만큼 평소에는 밝고 천진난만한 사람이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삼엄한 고독 속에 내버려졌던 어린 시절을 겪고도 지금 이 모습의 성인이 되기까지, 언니는 어떤 고통을 뚫고 온 것일까?
본인의 아픈 과거를 말하는 언니의 서늘한 얼굴은 의사의 것에 가깝다. 자신이 맡은 어느 내담자의 상담 내용을 되새기듯, 담담히 과거와 상처와 현재의 자신을 분리해낸다. 그러다 문득 눈가에 온기가 돌더니 예의 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여하간 지금은 괜찮아. 여러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현재는 엄마와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어.”
나는 감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후유증은 없어?”
언니는 잔잔히 웃으며 답한다.
“왜 없겠어.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난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인 걸. 난 누군가 한 말이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가벼운 거짓말인지, 원만한 대인관계 유지를 위한 인사치레인지, 상냥한 투로 하고는 있지만 실은 비꼼을 함의하고 있는 말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전부 진담으로 받아들여. 그래서 여전히 쉽게, 깊게 상처받아. 그리고 이런 방면으로 약지 못한 내 탓을 하지. 그래 놓고는 실은 내 잘못이 아닌데도 또 내 탓을 한 자신이 바보 같아서 속상해지곤 해. 다만 예전에 비해서는 그 빈도수나 정도가 확연히 달라졌지.”
불현듯 태윤이 언니에게 종종 던지던 짓궂은 농담들이 떠오른다. 태윤이 농담을 하면 언니는 파르르 떨었고, 그런 언니의 반응이 재밌었던 태윤은 농담의 수위를 높이곤 했다. 언니는 사실 그 모든 순간에 상처 입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언니가 태윤이한테 유난히 그랬던 거구나.”
해원 언니도 다합에서의 일이 떠오른 듯 피식 웃는다.
“재인이 너야말로 대단하더라. 태윤이 뭐라고 놀리건 전부 듣는 척도 않잖아.”
언니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내게는 딱히 태윤이 날 놀리고 있다고 여겼던 어떤 기억도 없었기 때문에.
내 표정을 본 언니는 그럴 줄 알았다며 깔깔 웃는다. 그러더니 ‘그런 면이 아마 재인이 네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겠지.’라며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끝맺었다.
나는 언니가 (나와의 여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더 깊이 묻지 않고 다시 한가롭게 구름 이야기나 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니가 말을 마칠 무렵, 우리가 보았던 구름 한 조각은 애초부터 신기루였던 것처럼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