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3. 페와 탈에서 아침을 - 1

by 소라게


새벽 일찍 잠이 깼다. 간밤엔 온통 선잠의 문턱을 서성였다. 한동안 느긋이 지내다가 갑자기 정해진 이른 출발 시간 때문에 불안해서 깊이 못 잤다.

짐은 어제 미리 꾸려두었으니, 체크아웃만 하면 된다. 대충 씻고 1층으로 내려가자, 마두와 아델은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카트만두로 다시 올 건가요?”

“와야죠.”


난 마두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마두가 아니었으면 진즉 포카라로 도망갔을 거예요.”


그 말은 진심이다. 마두는 내 손을 맞잡고 포근하게 웃었다.


“또 봐요, 재인.”


투어리스트 버스는 카트만두 왕궁이 있는 중앙로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거리는 비자 연장 때문에 왔을 때 이후로 두 번째라 여전히 낯설다.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준 사람은 마두의 친구다.

도로변에는 로고가 다른 투어리스트 버스 몇 대가 줄지어 서있다. 우리는 티켓에 적힌 차 번호판을 찾아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좁고 지저분했으며, 좌석은 아직 대부분 비어 있다.


우린 지정 좌석에 앉았다. 내 배낭은 짐칸에 실었지만, 아델은 굳이 가지고 탔다. 지내면서 알게 됐는데, 아델은 낯설고 생소한 것에 대한 경계가 심했으며, 근본적으로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나랑은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건지 의아할 정도다.


좌석 시트는 어지간히 때가 타고 더럽다. 쿤밍 - 루앙프라방 간을 잇는 슬리핑 버스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배낭은 이미 짐칸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중이라, 그 난리 속을 헤집고 겉옷을 꺼낼 엄두가 안 난다. 그러니 뭐 어쩌겠나. 그냥 버텨야지. 카트만두까지는 10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들었다. 물론 제시간에 도착했을 때의 얘기지만.


7시쯤 되니, 좌석이 속속 채워진다. 승객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금세 꽉 찬 버스 안은 어느덧 발 디딜 틈도 없다.

버스 출발 시각이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바구니에 과자나 콜라 따위를 든 아이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1달러! 1달러!”를 외친다. 나와 아델 둘 다 아침식사를 걸러서 배가 고팠다. 결국 방실방실 웃는 아기 얼굴이 프린트된 비스킷을 샀다. 우린 비스킷을 반씩 나누어 먹었다.


버스는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국외 여행이 처음이라는 아델은 몇 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며 출발 직전까지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한 시간 이상 지연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여행자 거리를 벗어난 카트만두의 아침은 요란하고, 복잡하고, 제멋대로다. 세상에. 타멜이 차라리 정돈돼 보일 정도다. 버스는 계속 막히고, 빽빽대는 경적은 어디서나 울렸다. 누군가 지나가며 투어리스트 버스를 탕탕 두드리기도 하고, 도로변에 선 누군가는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다.



장식 한 번 화려한 로컬 버스의 지붕으로 뛰어 올라타는 젊은이들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든다. 왜 그러나 했더니, 옆의 아델이 어느새 카메라로 거리를 찍고 있다.

이쯤 되니 각이 나온다. 어차피 일찍 여길 벗어나긴 틀렸다. 나는 작은 가방에 따로 챙긴 귀마개를 꺼내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지저분한 의자 시트가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애써 잊으려고 노력했다.




한잠 자고 일어나서도, 버스는 정차한 상태다. 그러나 바깥 풍경은 바뀌어있었다. 가파른 경사의 계단식 논밭, 그 까마득한 아래로 흐르는 계곡, 깎아지른 벼랑. 버스가 선 곳은 계곡의 한 복판이다.


“왜 섰대?”

“검문 중이야.”

“검문?”

“마오이스트 테러 조직 때문이라는데.”


뭐? 마오 뭐? 테러 조직? 순간 뇌가 입력을 거부한다.

내 얼굴을 본 아델이 되레 고개를 갸우뚱한다.


“몰라? 네팔 정세 복잡하잖아. 중국 정부하고 인도 정부 사이에 껴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골치 아파.”

“……몰랐어.”


카트만두에 한 달이나 머물러 있었으면서도 전혀 몰랐다.

맙소사. 무지에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했다.


놀람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차창 밑으로 무장군인들 한 무리가 도착했다. TV 이외에 이토록 가까이서 총으로 무장한 군인을 본 건 처음이다. 분위기가 흉흉하다. 공연히 내가 다 긴장된다.

버스 안으로 들어온 군인들은 내부를 쓱 훑어보더니, 현지인 남자만 두어 명 신분증을 검사하고는 나갔다. 승객 대부분이 외국인라서 그런가?


자다 일어나서 날벼락 맞은 것 같다. 대체 뭔 일이야. 매체에 등장하던, 웅장한 자연 풍광에 둘러싸인 네팔은 뭐였지? 그거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버스는 곧 출발했다. 나는 긴장이 가시지 않아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때 밖을 보던 아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포카라로 갈 때는 괜찮겠지만, 카트만두로 돌아올 땐 굉장히 위험하겠는데…….”

“왜?”

“밖을 봐. 포카라행은 차선이 계곡 안쪽이지만, 카트만두행은 벼랑 쪽 차선이잖아.”


그녀의 말대로 옆 차선은 깎아지른 벼랑 바로 옆이다. 제대로 된 가드레일은 찾아볼 수 없다. 한번 잘못 구르면 끝장이다. 그 생각을 하자 목이 탄다. 문득 로컬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날 뜯어말리던 마두와 아델이 떠오른다.


“돌아올 땐 비행기를 탈까…….”


진지한 얼굴로 혼잣말하는 아델을 보자니 더 무섭다.



정오를 향해 갈수록 공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나는 인적이라곤 없는 산골짜기에 콕콕 박힌 한국 대기업 광고 입간판을 보며, 기가 질렸다. 그 와중에 아델은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둘이 동시에 깨어있는 동안에는 쉼 없이 수다를 떨었다. 수다가 그렇듯 첫 화제가 그대로 끝까지 이어지는 법은 없었다. 떠들다가 ‘근데 우리가 이 얘길 왜 하고 있지?’ 하고 어리둥절하기 일쑤였다. 도중에는 아델이 키웠으나 여행 오기 얼마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 아이 이야기를 하며 아델은 뚝뚝 울었다.


그러다가 정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점심을 먹으러 들른 휴게소에서였다. 나는 차오멘이 가득 담긴 접시를 노려보며, 자꾸만 떠오르는 군인들의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아델에게 물었다.


“뭐 때문에 네팔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거야?”


아델이 면을 입에 넣던 자세 그대로 멈춘다. 그러더니 조심히 포크를 내려놓는다.


“네팔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지. 인도하고 중국 사이에 딱 끼어 있잖아. 중국 정부나 인도 정부다 둘 다 네팔을 탐내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완충지역으로도 써. 게다가 요새 이 나라의 왕정도 불안정하잖아. 네팔리들 사이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데, 그 틈을 노리는 거야. 공화정 선포는 둘째 치고, 공화정치를 위해 설립될 정당이 둘로 나뉘어 있잖아. 하나는 인도 정부와 손을 잡고, 다른 하나는 중국 정부와 손을 잡고.”

“그럼 네팔의 마오이스트는 중국 정부와 관련이 있어?”

“이름만 들어도 알잖아. 아주 대놓고 광고하는걸. 그런데 진짜 이렇게까지 모른다고?”

“국내 정치도 버거워. 국외 정치는 깜깜이지. 그보다도 괜찮을까, 여기?”

“우린 외국인이잖아.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결국 다른 나라 문제야. 게다가 위험하더라도 내가 더 위험하지, 넌 아닐 걸.”


아델은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쩐지 이 이야기는 오래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했다. 아델의 마지막 말이 어딘지 걸렸지만 되묻진 않았다.




포카라에 도착해서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5시다. 밖은 여전히 환했다. 여름이면 낮이 길어지는 것은 어디나 똑같다. 나는 차에서 내려 예약한 숙소의 픽업맨을 찾았다. 미리 숙소 예약을 한 건 아델이었다. 그녀는 어딜 도착하든 숙소 찾느라 헤매는 건 질색이라고 했다.


예약한 숙소의 피켓을 든 남자는 금세 찾았다. 나는 짐칸의 배낭을 어깨에 걸머메고 그에게 갔다. 그는 말끔히 다림질한 흰 셔츠와 단정한 감색 바지를 입었다.


“어서 오세요. 오시느라 힘드셨죠?”


정중히 인사한 그는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고 픽업용 승용차로 갔다. 우리는 에어컨이 빵빵한 차 안으로 도망치듯 몸을 밀어 넣었다.


숙소는 터미널과 가까웠다. 페와 탈 강변의 너른 부지에서 카니발이 열리고 있다. 회전관람차와 회전목마가 음악 소리와 함께 돌아가고, 뱃놀이를 하는 배들이 호수에 떠있다. 알록달록한 풍선을 파는 수레도 여럿 있다. 이런 곳에서 카니발이라니. 전혀 예상 못한 풍경이라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좁은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간 차는 곧 멈추었다. ‘뉴 옐로우 게스트하우스’라는 대단히 직관적인 작명 센스의 노란색 주택 앞이다. 하얗게 칠한 울타리가 장식한 진입로부터 현관까지 놓인 징검돌, 양편의 정원이 마음에 든다.


우리 객실이 있는 2층은 더 근사하다. 객실 문 앞은 넓은 홀이고, 큼지막한 원목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다. 복도 곳곳엔 잎이 넓은 화초들이 놓여있다.

트윈 베드룸인 객실 안은 두 벽면에 여닫이식 큰 창이 나 있어 빛이 가득 들어온다. 환복 할 때마다 커튼을 쳐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가구는 전부 라탄 재질이다. 난 창가 침대를 골라 배낭을 내려놓았다.


“먼저 씻을래?”


헌데 대꾸가 없다. 아델은 제 팔뚝의 어딘가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뭐해?”


가까이 다가가자, 아델이 팔을 내밀었다.


“이게 뭐 같아?”


아델이 가리킨 것은 그녀의 팔에 돋은 빨간 발진이다. 나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서 대답했다.


“모기 아냐?”

“그럼 이것도?”


이번에는 목덜미다. 목덜미를 보자 어쩌면 모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기에 물렸다고 하기엔 발진의 크기가 작고 흐릿한 데다, 다른 발진 부위까지의 거리가 촘촘한데 묘하게 일정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벌레한테 물린 것 같아. 아니면 아까 그 더러운 버스 시트 때문 아닐까?”


아델의 낯빛이 희게 질린다.


“나 먼저 씻어도 돼?”

“물론.”


혹시나 전염되는 거라면 나까지 옮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흔쾌히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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