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카드의 덫

돌려막기의 기술과 함정

by 한모루

2014년 봄이었다.
외국계 회사에 다녔다.
연봉은 7,200만 원.
그땐 괜찮은 직장인이었다.

월급은 25일에 들어왔다.
며칠 뒤엔 카드값이 나갔다.
통장은 늘 비슷했다.
들어오면 빠지고, 남는 건 없었다.

신용카드는 세 장이었다.
생활비용, 예비비용, 현금서비스용.
그 세 장으로 돌려막았다.

어느 날 통장을 봤다.
잔액 492원.
다음 달 카드 결제 금액 2,988,200원.
놀랍게도 아무 감정이 없었다.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세후 월급은 450만 원쯤이었다.
카드값은 350만 원을 넘겼다.
버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돈은 주로 식사, 유흥, 여행, 자동차로 나갔다.
남은 건 추억뿐이었다.
티셔츠 하나, 가방 하나 남지 않았다.

그땐 카드가 버팀목이었다.
현금은 남는 게 없었으니까.
한도는 연봉만큼이었다.
그 안에서 쓰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게 합리라고 믿었다.

결제일은 매달 25일.
그 주가 되면 통장을 확인했다.
이체일을 맞추고, 모자라면 리볼빙.
그래도 안 되면 현금서비스.
그게 루틴이었다.

결제일이 지나면 생각했다.
“이번 달도 넘겼다.”
잘 버텼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게 정상이라고 믿었다.

보상은 없었다.
보상할 필요도 없었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으니까.

집은 늘 정리돼 있었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다.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정리된 공간이었다.
이상하게 그게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넌 여유 있어 보여.”
“외국계 회사면 좋겠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꾸민 게 아니었다.
그게 맞는 삶이라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상했다.
현금서비스를 받았는데 이번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불안했다.

월급보다 더 많이 쓰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이 언제까지 날 지켜줄까.

몇십만 원 때문에 고개 숙이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게 갑자기 부끄러웠다.
아무렇지도 않던 일상이 낯설어졌다.
그래서 끊기로 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카드를 자르자, 세상이 멈췄다.
진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금도, 여유도, 선택도 없었다.
심지어 카드값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교통비가 문제였다.
어머니께 10만 원만 빌렸다.
버스카드에 충전했다.
그게 한 달의 연료였다.

점심시간엔 늘 핑계를 댔다.
“약속 있어서요.”
“다이어트 중이에요.”
“업무가 밀려서요.”
명동 한복판이었지만, 혼자였다.

책상 서랍엔 과자가 있었다.
그게 점심이었다.
봉지를 살짝 열고 조용히 먹었다.
배보다 체면이 더 무겁던 시절이었다.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갔다.
밥이 있었으니까.
씻기도 전에 밥부터 먹었다.
배가 차야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밤엔 공원을 뛰었다.
몸을 쓰면 생각이 줄었다.
생각이 줄면 불안도 줄었다.
“오늘은 버스비 말고 안 썼다.”
그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했다.
나아지고 있다고,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회복 중간쯤이 가장 위험했다.
한도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그게 유혹이었다.
큰돈은 무섭지만, 작은 돈은 달콤했다.

그 시절, 부서를 옮기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욕도 먹었다.
그럴 때 맥주 한 캔, 치킨 한 마리가 떠올랐다.
3만 원이 무서웠다.

그래서 편의점에 갔다.
맥주 한 캔, 닭가슴살 하나.
8천 원.
그날 밤엔 그게 전부였다.
그 정도 타협이면 괜찮다고,
스스로 납득시켰다.

7개월쯤 지나서야 달라졌다.
월급일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그 뒤로 아무 알림도 없었다.
그 조용함이 낯설었다.

그제야 끝났다는 걸 알았다.
이제야 제로베이스를 되찾았다.
처음으로 숨이 좀 편했다.

그 시절,
나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에 맞춰 살았다.

연체는 없었고,
신용점수는 계속 올랐다.
세상은 그걸 잘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시절,
잘 훈련된 금융노예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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