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벌이의 착각

근면이 만든 환상

by 한모루

회사를 다니며 고리를 끊었다.
카드를 자르고, 돌려막기를 끝냈다.
그다음엔 무식하게 안 썼다.
돈을 쓰면 다시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안 썼다.
불안이 통제였고, 절약이 방어였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돈이 모였다.
하지만 그건 생존의 흔적이었다.
통장에 숫자가 쌓여도 삶은 그대로였다.
‘이 돈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 생각이 고집처럼 남았다.

회사에서 내가 오를 수 있는 자리를 봤다.
정답은 내 상사였다.
그의 삶은 내 미래의 복사본이었다.
나는 그 삶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했다.
절대적인 벌이를 늘려야 한다.
월급으론 바뀌지 않는다.
내가 바꾸려면, 벌이 자체를 바꿔야 했다.

사업을 시작했다.
도소매였다.
물건을 들여와 팔았다.
처음엔 잘 됐다.
시간도, 돈도, 내 마음대로였다.

통장에 들어오는 단위가 달라졌다.
몇십만 원이 아니라, 몇백만 원이었다.
그 돈은 나에게 가능성의 감정이었다.

돈이 벌리자 세상이 달라졌다.
부동산이 눈에 들어왔다.
몇억짜리 아파트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표면은 억대였지만,
달마다 나가는 건 백만 원 단위였다.
감당 가능하다고 계산했다.
카드값으로 500만 원을 썼던 내가
생활을 조이면 백만 원쯤은 만들 수 있었다.

가능성은 현실처럼 느껴졌다.

신도시에 가게를 냈다.
손님들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동산 이야기를 했다.
누구는 토지를 샀고, 누구는 건물을 올렸다.

“지금 힘들어도, 결국 오른다.”
그 말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계산했고, 직접 중개소에 물었다.
“30년 상환이면 얼마죠?”
매달 몇백이면 된다는 말이 현실감을 줬다.

사업은 초반엔 순항했다.
예전 동료들이 찾아오면 밥을 샀다.
삼겹살 대신 소고기였다.
허세가 아니라 보답이었다.

“이젠 내가 사줄 수 있다.”
그 말이 나를 살렸다.
그때까진 진짜 자유라고 믿었다.

8개월쯤 지나 매출이 흔들렸다.
예상보다 20% 덜 나왔다.
크게 줄진 않았지만 이상했다.
돈이 남지 않았다.
재고가 쌓이고, 신제품은 나왔다.
현금 흐름이 꼬였다.

통장 잔고를 봤다.
이상했다.
며칠 뒤면 물건값이 나가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안 썼다.
굶기도 했다.
내가 안 굶으면, 물건값이 터졌다.
그게 일상의 공식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직원도 굴리고, 나도 구르는데
왜 돈이 안 남는지 이해가 안 됐다.

“직원이 문제인가?”
직원을 줄였다.
그럼 그만큼 남아야 했다.
하지만 남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직원 문제가 아니었다.
매출이 줄어든 구조 속에서
애초에 남을 돈이 없었던 거다.

그땐 몰랐다.
장사는 월급처럼 한 달에 한 번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들어오고,
나가는 건 하루에 몽창 빠져나간다.

나는 월급자 사고로 그걸 관리했다.
지출일을 달력에 맞췄다.
그게 함정이었다.

그땐 그걸 모르고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지?”
“괜찮아, 난 충분히 졸라매고 있어.”
“장사가 안 돼서 그래. 잘되면 숨통 트인다.”

그러다 직원 월급을 밀렸다.
매니저였던 친구였다.
그 아래 직원들은 다 정산했는데
그 친구 몫이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말했다.
“형, 괜찮아요. 나중에 줘도 돼요.”

그 말이 더 아팠다.
성질나고, 쪽팔리고, 부끄러웠다.

그날 밤,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불 꺼진 매장을 봤다.
내가 직접 만든 가게였다.
그 자리에서 무력감이 밀려왔다.

진심으로 떠올랐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왔지?”

그다음 날부터 더 일했다.
더 아끼고, 더 움직였다.
직원을 줄이고, 내가 대신했다.
일주일 내내 매장에 있었다.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날 갈아 넣었다.
하지만 돈은 여전히 새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무지하지도, 낭비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스템을 몰랐다.

돈의 흐름보다, 구조의 속도가 빨랐다.
노력은 방향이 아니었다.
버티는 건 해결이 아니었다.
근면은 구조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그때 열심히 살았고,
그게 문제였다.

열심은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그렇게, 허투르게 쓰지 않았는데도 가난해졌다.

지금이라면 말하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망쳐라.
폭주기관차에서 내려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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