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을 좋아한다.
계절이 바뀌며 달라지는 공기 내음이라거나
하루하루 피어나는 화단의 꽃 모양이라거나
아침에 아이들을 깨울 때 짓는 표정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난다.
지나치기 어려운 사소한 것들이 많은 덕분에
내 휴대폰 사진첩은 나날이 무거워지는 중이다.
일상 속에 자잘한 즐거움들을 곧바로 남기기에는
사진만큼이나 간편한 것도 없으니까.
휴대폰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아이 둘을 키우며 바쁘게 지내는 날들 때문인지,
기억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던 나인데
이제는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면 미간에 힘을 주고 시간을 좀 들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하기로 했다.
사진이 아니라 글쓰기로.
처음 기록을 마음먹었던 순간은 4년 전 초가을이었다.
당시 나는 돌도 되지 않은 둘째와
코로나로 등원하지 않는 첫째를 함께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친 나를 위해 남편이 첫째를 데리고 해변 당일치기를 떠났다.
오랜만에 둘째랑만 오롯이 있는 집은 평화로웠다.
집안이 이렇게 조용했던가? 옹알이와 울음소리는 그저 귀엽기만 했고
둘째가 잘 때 나도 같이 낮잠을 자는 사치를 누리기도 했다.
첫째는 저녁 무렵에야 아빠와 함께 돌아왔다.
잘 쉰 덕분에 밝은 얼굴로 맞이한 날 보자마자
아이는 내 손을 좀 달라고 했다.
내민 손에 아이가 올려놓은 것은 작은 돌멩이 다섯 개.
이게 무언가 싶어 남편을 올려다보니
아이가 해변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골라 주워온 것이란다.
옆에서 아이가 엄마 선물!!이라며 뿌듯하게 웃었다.
처음 가 본 바닷가가 너무나 즐거웠을 텐데도
그런 중에도 돌멩이를 고르며 엄마 생각을 한 아이의 마음을 느끼자,
첫째의 부재에 편안했던 내 모습이 겹쳐지며
이 작은 아이의 사랑이 파도만큼이나 커다랗게 다가왔다.
문득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부터 간단한 기록을 시작했다.
사진만 보고는 기억해 내기 어려운 나의 감정들을
메모장에 틈틈이 짤막하게나마 써왔다.
어릴 적 유치원 선생님들이 쓰신 글이 엮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날 예뻐해 주시던 빨강반 선생님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글로 읽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도 혹은 사진보다도,
글이 건네는 뚜렷한 힘이 분명 존재한다.
기록한다는 것은 마음을 남긴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사소하고 행복한 것들을 언제든지 떠올릴 수 있도록.
덧. 그날 아이는 돌멩이 말고도 내게 선물할 것을 열심히 찾다가
바닷가에 떨어진 갈매기 깃털을 주우려고 했단다.
남편이 아이를 한사코 말려준 덕분에
지금 내 서랍 한편에는 돌멩이 다섯 개만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