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유증으로 건망증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나는 코로나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그저 칠칠맞은 요즘 상태를 인정하는 수밖에.
회사에서 바쁜 시즌도 끝나고 이 규칙적인 생활에 어느 정도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난 아직도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원래 누가 뭘 두고 가면 그걸 챙겨주는 포지션이었는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을 보면 이건 내력인가 싶기도 하다. 매일 차 키와 지갑을 찾아 헤매는 아빠, “아 맞다!”가 입에 붙은 엄마. (사랑해요) 허둥지둥 패밀리지만 우린 지금까지 큰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주제와 약간 벗어나는 얘기이지만 ‘허둥지둥 패밀리’의 과거 업적을 좀 말하자면, 먼저 캐릭터 분석이 필요하다. 강도가 낮은 인물부터 살펴보자.
1. 동생
아낀다 싶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릴 때가 더 심했고 크면서 성격이 습관을 이긴 케이스. 워낙 꼼꼼하고 실수를 용납 않는 사람이라 가족들 중에선 가장 야무진 캐릭터다.
2. 나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가는 경향이 있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 되찾는 편. 그러나 뭐든 필요할 때 없으면 무용지물이니 실속이 없다. 옮기는 장소마다 우산을 두고 나와서 비 오는 날 허둥지수 x3
3. 엄마
빈도로 보자면 최강자. 어릴 때부터 엄마의 엉뚱 발랄 캐릭터는 한결같았다. 실수가 잦아도 크지 않으며 뭘 해도 애교로 넘길 수 있는 스킬을 갖추고 있다.
4. 아빠
꼼꼼하고 세심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아빠지만 가끔가다 아주 큰 실수를 저질러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일례로, 10년 만에 자동차를 바꾸는데 색상을 잘못 주문해서 카센터에서 한참 동안 우리 차가 뭔지 찾았던 적이 있다. (차를 바꾸면서 색을 잘못 주문한 사람은 우리 아빠밖에 못 봤다.)
만화에서처럼 남자 친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누구 하나 똑 부러지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잘 흘러갈 것 같지만 생각보다 칠칠맞은 사람들의 시너지가 있다. 웬만하면 실망하지 않고,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너의 실수도 나의 실수도 우리들의 마음을 헤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여전히 번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instagram: reun_da (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