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나한테 10년만 더 있었으면 좋겠어.”
할머니의 긴 얘기 끝에 늘 따라붙는 문장이다. 48년생 K장녀 앞에서 97년생 K장녀는 할 말이 없다. 대학은커녕 중학교도 못 가고 집안일을 돕다가 기술학교로 진학한 할머니는 자기보다 두세 살 많은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양장을 배웠다. 영민했던 15세 할머니는 수업마다 칭찬받는 모범생이었고 서울로 올라와 양장점에 취직을 해서도 야간 기술학교를 다니며 대전에서는 배울 수 없던 고급 재단 기술을 공부했다.
결혼 후에 이불 장사에 옷장사를 하면서도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은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와 삼촌들을 키우던 젊은 날에는 새벽 시장을 다니며 물건을 떼 오고 저녁에는 수선 부업까지 하루를 쪼개도 시간이 나지 않았다. 느지막이 오십 대가 되어서야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검정고시 학원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 마음을 먹었으면 그때 했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지금쯤 내 브랜드를 만들고도 남았을 거야.”
일흔을 넘긴 어느 날, 할머니는 이대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첫 손주인 내가 이미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중학교 검정고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휴학에 졸업 유예까지 하긴 했지만) 방송통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낮엔 이불가게에서 공부하고 저녁엔 학교를 가고. 어릴 적 기술학교로 향하던 버스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할머니는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물 흐르듯 대학생이 되어 또 그렇게 스미듯 졸업한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할머니께 괜히 죄송하다. 75세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보다 모든 면에서 유리한 나는 세상의 흔한 불평들로 주저하고 있다. 50살에 공부를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일흔의 할머니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응원하는 말들은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온다.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쉽게 위로하던 사람들이 절대 와닿을 수 없던 곳으로. 용기 없이 부지런했던 나는 우리 할머니를 통해서 뭐든 시작해볼 수 있는 마음을 얻는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2017년에 쓰신 일기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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