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봐 줘서 고마워"

친구의 솔직한 고백

by 예니

오늘은 나의 말로 인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고마운 마음을 심어주었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 말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온기가 되어 주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한 친구들과 각자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다 보니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하루 종일 옆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1년에 한두 번 얼굴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굳이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아주 가끔 생각날 때마다 연락하는 그런 친구들이 나에게도 몇몇 있다.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도 잠깐 시간 나면 꼭 약속을 잡곤 하는 그런 친구.


얼마 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8년을 알고 지낸 친구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맛있는 밥을 먹고 여자들의 필수 코스인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잘 지냈어? 요즘 뭐 하고 지내?”인 것 같다. 못 보던 사이에 별일은 없었는지 물으며 내심 별일이 없었기를 바라기도 한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야 똑같지 뭐”라는 말이 더 마음 놓이는 세상이다.


그날도 역시 1년 만에 만나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다. 워낙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여서 그런지 그 친구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다. 직장에서 힘들었던 이야기, 취업 준비 중 나를 힘들게 했던 고민과 걱정, 얼마 전 남자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 등등 새로운 주제가 계속해서 생성된다. 실컷 내 이야기를 털어 놓은 뒤에서야 친구에게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고민은 없는지 물었다. 그제야 친구는 본인의 이야기를 조심히 꺼내 들었다.


“나는 사실, 내 이야기를 남에게 잘 못하는 편이야. 특히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꺼내는 건 더 힘들더라고. 근데 너는 언제나 솔직하게 너의 이야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부러워.”


친구는 나의 솔직함을 부러워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보다 더 솔직한 고백을 꺼내 들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 친구는 본인의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말하는 쪽보다 들어주는 쪽이었고, 언제나 솔직한 나는 이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내뱉기 바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네가 요즘 고민, 걱정 없냐고 먼저 물어봐 줘서 참 고마워.”


고맙다는 말에 이어 친구는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한 본인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요즘 별일 없어?”라고 묻는 말에 항상 “나야 뭐 별일 없지”라고 둘러대던 그녀는 혼자 앓고 있었던 걱정거리를 나와 나누기 시작했다. 친구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면서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용기 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 준 친구에게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요즘 고민은 없는지, 걱정거리는 없는지 물어보곤 한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나만의 방식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내 질문이 하나의 관심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는 그 말이 마음의 문을 여는 키가 되었다. 사소하게 건넨 한 마디가 이렇게 큰 울림을 될 줄은 몰랐다. 아직은 본인의 이야기가 어려운 친구에게 필요하면 나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도 들어주는 건 누구보다 잘 하니까.


그날의 우리는 수많은 기억 속에서도 오래도록 따뜻하게 간직할 하루를 만들었다. 그 친구에게도 그날의 대화가 그저 좋은 기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때로는 응원이나 위로의 말보다 담담하게 건네는 인말이 반가울 때가 있다.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있다면 꼭 용기 내 말하라고 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속엔 오래 머무는 선물이 될 테니까.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한 모든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