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中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과 관식의 애절한 사랑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6~70년대에서 시작하여 할머니, 어머니, 우리들의 시대를 모두 담고 있는 파란만장한 시대극이다.
애순은 어렸을 적부터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일찍 엄마를 떠나보내고 친척 집에 얹혀 살았다. 애순이만을 바라보고 사는 팔불출 관식과 결혼하여 그 당시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첫째 딸 금명이를 낳고, 둘째 아들 은명이까지 가진 상황에서 여전히 막고 살기는 팍팍했다.
매일 비어 있는 쌀독에 근심 가득 안고 잠드는 애순은 다음 날 아침 눈 떠보면 조금씩 채워져 있는 쌀독이 이상했다. 알고 보니 애순의 사정이 딱했던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순이 눈치채지 못하게 쌀을 퍼다 날랐던 것이다. 딱 세 식구 하루 먹을 만큼만.
애순은 그런 어르신들의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그래서 찾아가 괜스레 투정을 부린다. 왜 자꾸만 챙겨 주느냐고, 왜 돌아가신 엄마 제사까지 자꾸만 챙겨 주느냐고.
“골 아픈 걸 왜 맨날.. 아 울 엄마 제사는 왜 자꾸 챙겨 주세요?”
“바당에 혼자 물질하는 잠녀 봔? 시커먼 바당에서 괄락괄락 숨넘어갈 때는 꼭 사람들 모인 데 가서 딱 붙어 있어야 살주. 안 그러면 가심 볼락볼락하여 못 사는 기라.”
“사름 혼자 못 산다이. 고찌 글라, 고찌 가. 고찌 글민 백 리 길도 십 리 된다.”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십 리 된다.)
그렇다고 풍족하게 사는 것도 아니었던 어르신이었지만, 배불러 가는 애순을 못 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쌀 한 주먹씩 퍼다 나르는 것, 애순 엄마 제사 때마다 문어 한 마리 건네주는 것이 다였다. 세 식구 먹여 살리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고 힘들어도 사람들 틈에서 같이 살아가라는 할머니의 말이 또 한 번 애순을 살렸다.
함께 한다는 것.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 감당하려고 하는 고집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남에게 피해 주기도 싫고, 상대의 배려가 부담스러웠다. 그들도 똑같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뻔히 아니까.
근데 나는 슬픔을 반으로 나누면 슬과 픔이 아닌, 슬픈 감정이 덜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전혀 성가시지 않았고 도움이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왜 나는 괜찮으면서 남들에겐 민폐라고 생각했을까?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받으며 살아온 애순은 나이를 먹어서야 알 수 있었다. 혼자였으면 골백번도 더 꺾였을 텐데 그들이 있기에 살아진 것이라고.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사람들 틈에 딱 붙어있으면 살아지는 것이었다.
힘들 때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냥 외로울 때마다 친구 불러내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 아플 때 엄마한테 전화해서 약 먹고 쉬라는 말 듣고 잠드는 것. 주말에 시간 내서 남자친구랑 동해 바다 한 번 보고 오는 것. 퇴근 후 직장 동료와 술 한잔하고 집 가는 것. 같이 가라는 건 그냥 이런 것이다.
지금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진짜 내가 혼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혼자 있어서 그런 것이다. “역시 나는 혼자구나”라고 단정 짓지 말고 어떻게든 사람들 옆에서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 할머니 말대로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십 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