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권고사직

세상이 나를 배신했다.

by 예니

여느 때처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사무실이 왠지 모르게 어수선했다. 지난주에 미리 공지됐던 팀장님과의 개인 면담이 시작된 것이다. 과장님부터 시작해 마지막 순서였던 나까지 면담은 3시간가량 진행됐다. 요즘 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워 직원 관리 차원에서 진행되는 면담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팀장님은 내게 주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회사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여쭤보셨다. 형식적인 물음에, 힘들긴 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똑같이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후, 팀장님은 마지막으로 내게 하실 말씀이 있는 듯했다.


“우리 팀에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분들이 있어요.”


참으로 황당한 이 말이 사실 오늘 면담의 목적이었다. 권고사직 대상은 내가 믿고 따랐던 A셀의 주임, 대리, 과장님이었다.


권고사직
: 권고하여 그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는 일


면담 내내 억지 미소를 띠고 있던 내 얼굴이 순간 굳어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10분 전, 팀장님이 먹으라고 건네주신 레몬맛 사탕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도 이 달콤한 사탕을 주며 이렇게 뼈아픈 말씀을 하신 걸까?’ 그 사탕을 먹고 싶었던 마음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권고사직이요? 세 분이 다요? 그럼, 저는요?”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질문을 퍼부었고 세 분이 모두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는 말을 굳이 한 번 더 듣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직 신입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 나도 고려 대상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주임님도 겨우 2년 차였다.


프로젝트 하나가 완전히 날아가고 바로 담당 직원들이 잘렸다. 해고나 다름없는 권고사직은 직장인에게 빨간 줄을 긋는 것과 같았다.


동요하지 말라는 팀장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직원들의 사정을 더 들어주지도 않고,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매몰찬 회사에 화가 났다. 갑자기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면서 남은 회사 생활이 두려워졌다.


세상이 나를 배신한 것 같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의미 없는 출퇴근을 반복하는 팀원들 옆에서 나는 B셀 사람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지런히 일했다. 회의 참석자 명단에도 그들은 없었다. 거의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A셀 주임님과 나, B셀 대리님과 매니저님 이렇게 네 명은 회사 라운지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멤버였다. 나는 B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된 이후로 그 대리님과 겸상하고 싶지도 않아 혼자 자리에서 먹는 날이 많아졌는데 이제는 같이 나가서 밥 먹자고 해주시는 주임님도 없다. 참 다양한 시련들이 날 불안하게 했다.


그들은 6월 30일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무거웠고 엄숙했다. 그들이 떠난 후 우리는 회의실에 모였다. “우리가 잘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야.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 과장님은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생존게임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참가자가 된 기분이었다.


전체적인 사무실 자리가 개편되고 나는 본격적으로 B셀의 모든 업무를 인계받았다. 이제는 셀이라고 할 것 없이 그냥 2팀이다.



그들이 떠난 후 한동안은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나의 힘듦을, 걱정을 알아주고 받아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 이게 사회의 본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분명히 열정과 욕심이 있었고 성장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빨리 적응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 3개월 차가 감당하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에 그저 눈앞에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했다. 그래도 프로젝트 하나가 정리되면서 나머지 브랜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실수가 많이 줄었고, 더 꼼꼼한 업무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안정을 되찾으려나 싶었지만 나는 또 다른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