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들의 연속
B셀 사람들과 일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봤던 B셀의 분위기는 우리 셀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매니저님이 업무 실수를 할 때마다 그들은 언성을 높이며 그녀를 나무랐고, 모니터 앞을 둘러쌓고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곤 했다. 게다가 B셀은 광고 업계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제약회사 브랜드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야근이 잦았다. 대표님이 매니저님의 안부를 묻고 다닐 정도로 그녀는 늦은 시간까지 홀로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그녀도 당시 고작 5개월차 신입이었다.
이미 인수인계를 받을 때부터 나는 바짝 긴장해 있었다. A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딱딱한 분위기,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 그리고 가장 거부감이 들었던 건 당연하듯이 그들이 일삼던 ‘반말’이었다. ‘친숙한 분위기 형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했지만, 반말은 막말이 되어갔다.
다섯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익히고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내 능력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히려 초반에는 하지 않았던 잔 실수가 점점 많아졌다. 열 컷 정도 되는 콘텐츠 SB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놓치는 부분들이 늘어났고,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덩달아 반복 작업에 지친 대리님이 나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너, 나 열받으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니?! 여기 수정 또 안 됐잖아! 중간 과정 거치지 말고, 나한테는 최종본만 줘.”
이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모든 과정을 맡기고 최종본만 가져오라는 말에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수습 기간도 끝나지 않은 신입의 능력이 어디서부터 과대평가된 건지 의문이었다. 그동안 큰 실수 없이 업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말이다. 일부러 못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나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로도 대리님과 단둘이 하는 업무가 많아지면서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다다랐다. 왜 상사들은 모르는 거 있으면 질문하라면서 막상 물음표를 들고 가면 거대한 느낌표만 던지는 건지 모르겠다.
“대리님 여쭤볼 게 하나 있는ㄷ..”
“또 뭐? 이제 너 혼자 알아서 할 때 됐잖아. 오늘은 질문 그만해.”
말을 걸면 째려보는 눈빛은 기본, 대놓고 망신을 주는 말과 행동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 나는 대리님의 타자 소리만 들으면 내 이름이 불릴 것 같아 두려웠고, 터벅터벅 끌고 다니는 대리님의 크록스 소리만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일종의 PTSD 같은 것이었다.
B셀 업무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게 되면서 A셀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내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도 했다. 기존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던 업무는 소홀해지고 재미도 성취감도 없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팀장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원래 신입일 때는 여러 가지 업무를 경험해 봐야 하는 거예요.”
몇 달째 이 말만 반복하고 있다. 차라리 A셀에서 더 많은 일을 맡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치를 쌓는 것이 내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융통성 없는 방식이 오히려 내게 해가 됐다고 속으로 감히 대들어 보기도 했다.
어느덧 6월, A셀에서 준비하던 오프라인 행사가 만족스러운 성과와 함께 끝이 났다. 행사를 준비하던 약 두 달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후련하고 뿌듯했다.
G브랜드 하반기 일정 조정을 위해 광고주 미팅이 잡혔다. 나와 주임님은 사무실에 남아 나머지 업무를 보고 있었고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과장님과 팀장님, 대리님의 표정은 왠지 좋지 않았다. 일정은 잘 잡혔냐는 주임님의 물음에 과장님은 대답을 머뭇거리며 어렵게 입을 떼셨다.
“광고주가 갑자기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하네요. 당장 이번 달까지만 같이 하기로 했어요.”
연간 프로젝트였던 G브랜드와의 계약이 갑자기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사유는 경영 사정 악화. 광고주는 어떠한 위약금도 물지 않고 말 한마디로 계약을 끝냈다. 적어도 이런 통보는 그쪽에서 우리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번 달은 고작 2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G브랜드에만 헌신하고 있던 세분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고 나 또한 상황 파악이 잘 안돼 감히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눈치 없이 계속되는 B셀 업무를 수행하면서 팀의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안 좋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고 놀랍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