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수준, 정치의 수준

by 권태윤

해마다 되풀이됩니다. 정쟁만 일삼는다는 지적, 왜 국정을 제대로 감사하지 않고 싸움만 하냐는 지적. 국정감사 이야기입니다. 그토록 언론이 떠들었으면 뭔가 변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습니다. 언론 스스로 정책감사에는 무관심하고, 정쟁에만 눈과 귀를 들이밀기 때문입니다. 올해 국정감사가 끝나면 또 너도나도 국감 무용론(無用論)을 펼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언론은 내년 국감에서도 정쟁의 현장을 열심히 따라다닐 것입니다. 언행불일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일까요. 국회(정치인, 보좌진 포함)와 언론(언론인 포함)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느낌입니다.


먼저, 언론인. 요즘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을 접해보면, 어떤 사건의 본말과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과거를 모르니 현재를 이해할 수 없고,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분석과 전망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좋아요’와 ‘클릭 수’에만 집착하며 뉴스 같지도 않은 뉴스를 남발하는 기자들이 넘치는 언론환경에서 어떻게 더 나은 정치가 가능할까요. 정치인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휴대폰과 개인적 대화 내용까지 몰래 찍어 대중에게 공개하는, 거의 스토커 수준의 행태가 정치발전에 과연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요.


정치판이라고 다를 것인가요. 21대 4·15 총선에서 초선의원 151명(50.3%)이 당선됐습니다. 과반이 넘습니다. 국회의원 둘 중 하나는 초선이라는 말입니다. 22대국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약간의 불편함과 불쾌함도 견디지 못하는 우리 국민과 언론의 조급증이 정당들을 들볶아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툭하면 갈아치우길 좋아하는 ‘물갈이 습성’이 과연 더 나은 정치를 가져왔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새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풍성해집니다. 우리의 후진적 정치충원 시스템에서는 느닷없이 국회로 들어오는 사람이 다반사니, 철학이나 이념, 국가정책에 대한 이해,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 따위를 제대로 갖춘 사람이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국회 들어와서 한다는 일이 고작 입법 남발이요, 소란스러운 분란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회가 허접한 감정의 분출구, 생산성 제로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정당의 불공정한 공천 시스템과, 감정적 투표행위에 몰입하는 국민의 합작품 아닐까요.


그럼 보좌진이라도 유능하고 똑똑해야 합니다. 초선의원들을 제대로 보좌할 실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삐걱거리는 마차를 4년간 넘어지지 않게 보필(輔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보좌진의 숫자는 많이 늘었지만, 개개인의 경험과 실력은 오히려 과거보다 못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현재 국회 보좌진은 인턴을 합하면 2,600명가량 됩니다. 보좌진 재직기간을 보면 더욱 갑갑합니다. 21대국회를 기준으로 보면 재직기간 1년 미만이 18.6%나 됩니다. 1~5년 미만이 44.9%입니다. 합치면 5년 미만 보좌진이 전체의 63.5%에 이릅니다.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5년 미만, 즉 초선의원과 비슷한 국회 경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초선의원이 국회 들어오면 회의장 가는 길 익히다 4년 다 간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평균 5년 남짓한 경력을 가진 국회 보좌진도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속된 말로 천지분간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과 보좌진으로 앉아 있는 셈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이 부여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무능한 보좌진은, 무능한 초선의원과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당 부분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몰두합니다. 예산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는 법안을 앞뒤 안 가리고 마구잡이로 발의합니다. 국민이 입을 혜택보다 피해와 부작용이 더 많은 위험천만한 입법행위도 스스럼없이 합니다. 아예 입법공장을 차린 듯 매달 십수 건의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초‧재선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이만큼 유지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의 수준을 높이려면 국회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보좌진의 채용과 운용에 있어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빵 나눠 주듯 아무렇게나 하는 보좌진 인사는 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쓸데없이 행사장 돌아다닐 시간을 줄이고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신문도 좀 제대로 읽고, 책도 많이 읽고,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 수시로 만나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고 넓게 토론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페이스북 등 SNS에 쓸데없는 글을 써서 논란을 즐기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는 유치한 행위도 지양해야 합니다. 정치의 수준을 높이려면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보좌진과, 그런 보좌진과 함께 숙의하고 토론하는 국회의원, 정쟁을 즐기는 ‘정치꾼’이 아니라 정책에 집중하는 ‘정치가’에게 집중하는 이성적 언론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보좌진, 언론이 전반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수준을 높여야만 합니다. 길은 단순하고 쉽습니다. 다만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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