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음주 수술 등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몇년전에 있었습니다. 이미 어린이집에도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CCTV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주장과 입법의 근저에는 ‘불신(不信)’이라는 존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의 지킴이, CCTV는 과연 만능일까요.
감시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CCTV가 더 악질적인 형식으로 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각지대(死角地帶)에서 벌어지는 교묘한 폭행은 더욱 위험합니다. 만약 어린이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때리거나 괴롭히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화장실 안에도 CCTV 설치하자고 할 것인가요? 가정폭력이 의심되니 집안 곳곳에도 CCTV 설치하자고 할까요? 근본을 무시한 과잉입니다.
영화를 보면, CCTV를 조작하는 기술이 등장합니다. 엉뚱한 화면으로 대체하는 방식입니다. 경찰이나 검찰 조사실에 CCTV 녹화를 한다지만, 교묘한 악질수사는 다른 방식으로 행해집니다. 감시의 수단이 정교해질수록 은폐의 기술도 진보합니다. 물고 물리는 게임은 그리 쉽게 종결되지 않습니다.
감시는 관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무언가를 지켜봐야만 안심할 수 있다는 욕망.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추적하고 감시하는 사회. 페놉티콘(Panopticon)은 죄수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은 이미 죄수들처럼 지금도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은 녹음과 녹화가 가능합니다. 수천만 명의 인간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훔쳐보며 엿듣는 사회. 가히 공포스런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도둑을 막기 위해 방범창을 강화하고, 살인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소지하지만 더 흉악한 방식으로 도둑질과 강도짓, 살인은 일상화됩니다. 근본이 아닌 곁가지를 자꾸건드리기 때문입니다. CCTV 설치 확대는 근본이 아닌 곁가지를 강화하는 하수(下手)입니다. 하수들의 방식을 신묘한 방책이라 여기며 남발하는 자가 바로 포퓰리스트입니다.
Back to the basic! 원인에 천착(穿鑿)해야 진정한 해법이 나옵니다. 드론, 청소기 등에도 정보와 일상을 훔치는 장치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물건을 그냥 둬도 훔쳐가지 않는 다는 자랑은, 어쩌면 자랑이 아니라 감시사회의 어두운 풍경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