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집은 ‘이상한 나라의 공간’입니다. 과거 단칸방에서 부부가 단둘이 시작할 땐 좁아도 좁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공간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좁음이 부부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사랑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자녀를 낳아 기를 때는 발 디딜 틈도 없는 갑갑한 공간으로 변하고, 자식이 장성하여 분가하면 지나치게 넓어 부모에게는 외로움을 주는 공간이 됩니다. 필요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집이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힘은 자본(돈)이었기에 집이라는 공간은 늘 현실과 부조화를 이루는 이상한 공간입니다.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했습니다. 넓은 집이 굳이 필요없는 신혼부부도 쫓기듯 넓은 집을 구하고, 굳이 넓은 집이 필요없는 노인들은 세금부담 때문에 집을 팔고 이사 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빵처럼 굽지도 못하는 집은 셀 수 없이 많은 ‘선의(善意)’의 정책으로 인해 도리어 금값이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는 두배, 세배까지 올랐고, 세금도 덩달아 금다락 같이 올랐습니다. 어른들은 단순 소유만으로도 늘어나는 세금에 허덕이고, 무주택자들은 가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절망으로 분노합니다. 현정부에서 치솟은 것은 집값을 비롯한 물가와 국민의 분노요, 주저앉은 것은 자신감과 희망의 크기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집(부동산)이, 일국의 대통령이란 자리의 주인을 가르는 강력한 변수가 되었습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몇이나 될까요? 그렇다면 누군가는 행정적 책임을 지고, 어떤 이들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책임지지도 않았습니다. “집값이 상당히 안정되고 있다”, “오른 집값이 폭락할까 봐 걱정이다” 따위의 말들은 과연 진심으로 국민을 걱정해서 하는 말일까요? 주택시장과 국민의 마음을 제도 읽은 말들일까요?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많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약 올리는 말로 받아들이기까지 했습니다.
제어되지 않는 폭주 기관차가 맞을 운명은 탈선뿐입니다. 단기간에 급격히 오른 집값은 반드시 조정기를 맞습니다. 그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빚더미에 앉아 울게 됩니다. 너도나도 늘리겠다는 공급의 신호는 미분양이라는 새로운 고통과 직면할 공산이 큽니다. 수요와 일치하지 않은 임대주택 정책 역시 계속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요조사도 없이 생산을 늘리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통닭을 튀겨도 하루 소비되는 양을 감안해서 튀깁니다. 그런데 그와 비교할 수도 없는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선호지역과 선호주택의 크기와 종류 따위를 사전에 철저히 조사하여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주택정책에서 최소한 두 가지는 염두에 둡시다.
첫째, ‘공급 확대만이 주택가격을 떨어뜨리는 특효약’이라는 처방에 과도한 확신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마구잡이로 공급을 늘리면 가격은 떨어집다. 그러나 미분양을 비롯한 더 큰 덫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빚을 내 집을 사라’며 대출을 장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주택보급률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일부 진영에서는 주택보급률 운운하며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을 살 돈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택보급률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해마다 멸실주택이 급증하고 새집에 대한 욕구는 변함없습니다. 급격한 1인 가구 증가로 주택 수 증가에 대한 요구는 줄어들지 않슺니다. 문제는 1인 가구 증가세를 반영한 주택의 형태입니다.
결론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자의적으로 주택정책을 펼치면 필패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국민의 요구와 수요에 응답하는 정책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분양주택의 경우 주택 노후도의 정도, 새집에 대한 수요를 세대별로 정밀하게 조사해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새집을 공급하는 정책을 구상해야 하고, 임대주택의 경우도 가구원의 직장과 가구원의 수, 가족의 연령대, 수용가능한 임대료 수준, 선호지역 등을 정밀하게 조사해 장단기 공급계획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결국 주먹구구식 땜질 정책을 남발하지 말고, 정교한 조사와 제도설계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주택정책을 펴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분별없는 강요와 여당의 입법 남발이 있다면, 국민의 힘으로 단호히 저지하려는 노력도 당연히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집이라는 이름의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우고, 비로소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건강한 주택정책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