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Alighieri Dante)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에는 9개 지옥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중 가장 아래층인 9층에 있는 지옥이 바로 ‘배신의 지옥(코퀴토스 호수)’입니다. 단테가 배신을 가장 중한 죄로 본 것이 예수를 배신한 유다를 염두에 둔 기독교적 정신이 반영된 것일지 모르겠스니다. 그러나 엄밀히 표현하자면 배신은 ‘혁명이나 혁신’의 다른 이름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특히 시대정신이 반영된 정치적 배신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자기희생적 행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인의 배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배신, 자신과 자기 패거리만을 위한 배신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혁신으로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반면 후자는 단어 그대로 배신(背信)입니다. 왕조시대는 물론이고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배신은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새롭게 만드는 충성스런 혁명이기도 했고, 나라를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망국의 쿠데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치사와 정치 현장만 봐도, 새로운 정권은 반드시 ‘배신’을 통해 새롭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배시킴으로써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물론 무늬만 보통사람이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상 자신에게 대권을 물려준 친구를 배신함으로써 비로소 ‘노태우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뒤이은 김영삼 대통령은 앞선 두 명의 전직대통령을 나란히 수인(囚人)의 신세가 되도록 함으로써 ‘문민정권’의 문을 활짝 열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 부터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대통령 역시 대북송금 특검을 전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대야관계 국면전환을 시도했습니다.
특히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힌 유승민 전의원의 경우 자기정치를 위한 것이었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스스로는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채워진 멍에로 인해 한 번의 대선 본선과 한 번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공무원연금개혁안의 통과를 비롯해 중부담 중복지로 대표되는 ‘따뜻한 보수’의 큰 그림을 제시하며 원내대표 당시 야당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았던 그에게 덧씌워진 ‘배신’이라는 주홍글씨는, 사실상 ‘혁신’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유승민에게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던 친박들이, 결국 박근혜 전대통령을 몰락으로 내몬 장본인으로 드러난 사실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반면 어설픈 승계자들은 실패한 정권으로 몰락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배신)에 미온적이던 박근혜대통령은 결국 자신만의 선명성 있는 개혁정부를 만들지 못함으로써 야권의 공격에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前정권을 이어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사람들은 ‘차별화’라는 이름으로 배신행위를 시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의리의 문제가 아니라 처절한 권력게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정권교체’ 깃발을 내건 상대후보의 예봉을 꺾는 효과도 내심 기대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의 배신은 혁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권 연장을 위한 ‘위장 배신’이라는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배신 지옥’은 이런 배신을 어떻게 판단할지 두려워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