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중노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가 밤새 비를 맞으며 8톤 트럭에 실린 비료를 혼자 다 내렸습니다. 그 밤 이후 며칠을 앓던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생이던 여름날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셨습나다. 병원에 가시던 그날, 동네 어르신들과 마당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시던 모습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주검으로 귀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좋아하셨다기 보다는 술의 포로로 사셨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자식의 공허감 때문이었겠지요. 그 덕분에(?) 사랑받지 못한 자식들은 술을 질투하며 자랐습니다. 기억에 남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신기할 정도로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실제로 아버지는 자식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화가 나면 가끔씩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다고 매를 대는 분도 아니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딱 한번 뺨을 맞은 적이 있는데, 그날이 아버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입니다. 아픈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형과 싸우다가 한 대 맞았습니다. 차라리 그건 사랑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선명한 ‘관심’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기억할게 없는 아들은 아버지가 되어서도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받지 못한 사람은 주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모양입니다. 아들 둘을 낳고, 그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늘 거칠고 서툴렀습니다. 습득된 무관심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었습니다. 넉넉함과 관대함이 부족한 성미는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자주 울었고, 그런 아이를 보면서 덩달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숱하게 안아주고, 놀아주고, 사랑해줬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아이들 기억 속에서 나는 그저 아득한 그 무엇으로만 존재해왔을지 모를 일입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지금은 돌아가신 형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 속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원망과 사랑받지 못한 자의 한탄이 섞인 넋두리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날 기억 저편 부재의 존재였던 아버지는, 어렴풋하지만 ‘존재’의 영역으로 옮겨왔습니다. 형님은 나에게 아버지가 생전에 나를 무릎에 앉히고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날, 내가 좋아한 만두를 사 오셔서 머리맡에 두신 이야기, 목마를 태워서 걸어가시던 이야기 따위를 들려줬습니다. 나의 기억엔 없는, 형의 기억을 통해 아버지의 부재는, 어느새 존재로 살아났습니다. 그날 사과나무가 드리운 그늘에 숨듯이 주저앉아 많이도 울었습니다.
기억은 삭제되기도 하고, 선택되어 지기도 합니다. 더러는 입력도 안 되는 순간도 많습니다. 고통스런 순간이 화인(火印)처럼 기억에 찍히듯, 사랑도 그렇게 선명하게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억을, 형제를 통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내가 주었던 아픔만 기억하고, 내가 준 사랑은 전혀 기억 속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기억은 삭제되고 선택됩니다. 나는 다시 리부팅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갓 태어나던 시절도 다시 돌아가, 내가 지금 동네 꼬마들에게 느끼는 무한한 애정과 관심, 관대함으로 원 없이 아껴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나의 ‘사랑’을 선명하게 쓰고, 그려주고 싶습니다.
나는 어른들이 오래 살아계시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습니다. 어른들이 오래 살아계시면 자식과 아비의 나이 차이가 항상 줄어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난 이미 아버지보다 다섯살이나 더 나이를 먹었습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원히 40대인데, 나는 50대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합니다. 이런 부조화는 대단히 불편합니다. 면도날에 손가락이 베이듯 아리고 쓰립니다. 나는 기억되고 싶습니다. 자식들에게 많은 사랑을 준 아버지로, 그래서 훗날 행여 자식들의 나이가 나보다 더 많아지더라도, 자식들 인생의 풍파를 막아내는 든든한 성벽으로, 꺼지지 않는 따뜻한 난로로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고 싶습니다.
1962년생 선배님의 친구분인 동향(안동)의 안상학 시인님의 시 <아배생각>이 떠오릅니다. 오래 전에 安시인님이 건네 주신 시집을 받아 밤새 가슴저리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를 다시 읽으니 무심하고 무정하던 '아배'가 생각 나 눈물이 절로 납니다.
<아배 생각>
/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오늘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