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그린의 책 <인간본성의 법칙>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우리의 생존과 성공은 타인과의 소통능력에 달려 있다. 인간이 나누는 모든 의사소통 중에 65% 이상이 비언어적 소통이지만 그중에 사람들이 인지하고 내면화하는 정보는 겨우 5%에 불과하다고 추정된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력은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말’에 쏠려 있다. 실제로 말은 사람들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되는데 말이다. 비언어적 신호는 상대가 말로써 강조하려는 내용과 메시지의 숨은 뜻, 그리고 의사소통의 뉘앙스를 알려준다. 그리고 상대가 적극적으로 숨기는 내용과 정말로 바라는 일을 알려 준다. 비언어적 신호는 사람들의 기분과 정서를 아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이 정보를 놓친다는 것은 눈을 감고 활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는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것 혹은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일부러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나는 아내가 하는 ‘말’의 뜻도 거의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니 의사소통의 65% 이상이 된다는 비언어적 소통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맹탕이었던 셈입니다. 날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말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한귀로 흘려버리기 일쑤인 사람이니 아내와의 의사소통은 열의 하나도 못하고 살았던 셈입니다. 아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들과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말에는 깊이 귀 기울이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관찰하고, 또 관찰해야 하겠습니다. ‘관심’의 동의어는 ‘경청’과 ‘관찰’이란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부부관계는 서로 등지고 앉아 먼 산을 마주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거기서 외로움, 고독, 극단의 절망감이 독버섯처럼 자랄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녀의 몸짓을 세심히 살피는 것. 십대 때 읽었던 연애의 기술 책에도 있었던 내용 같습니다. 제대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다시 배워 사람다운 사람, 남편다운 남편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디 가족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겠습니까. 모든 일상의 삶에서 사람들과 대하는 순간, 정치인들의 대화에도 깊은 소통이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