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국회 - 예산편성

by 권태윤

해마다 예산철이 되면 적잖은 국회의원들은 세일즈맨이 됩니다. 국회의원들이 기획재정부를 찾아가 국·과장, 사무관 따위를 만나 지역구 예산배정 해달라고 구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국비(國費)를 얼마나 따왔다”고 자랑하는 내용을 의정보고서에 싣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너무 어처구니없고 꼴사납습니다.


이 해괴한 광경은 일차적으로 헌법(憲法)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헌법 제54조제2항은 예산편성권을 정부(政府)에 부여하고 있으나, 같은 조 제1항은 국가의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헌법 제57조입니다. 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각항의 금액을 국회가 증액하거나 새 비목(費目)을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회는 대충 굿이나 보고 떡이나 구걸하라는 웃기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살펴보면, 그동안 국회가 기획재정부 국·과장, 사무관에게까지 우롱 당하게 된 것은 헌법이 부여한 제 권한과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거나 제대로 안한데서 비롯된 측면이 더 큽니다. 국회가 행정부 시녀노릇이나 하고 예산구걸이나 하는 웃기는 위치에서 벗어나려면, 헌법 제54조제1항을 제대로만 이행하면 됩니다.


비록 헌법 제57조가 국회에서의 증액은 못하도록 했지만, 감액(減額) 규정은 없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꼼꼼히 따져서 국회가 사정없이 감액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10%만 국회가 감액해도 70조원 가량의 필요한 사업들을 더 증액할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당장 올해부터 2026년도예산안 10% 감액심사를 목표로 해보세요.


정부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만들어 오는 예산안을 제대로 살펴보면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사업들이 많습니다. 매의 눈으로 살피면 허술하고 엉성한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삭감의 칼을 제대로 들이대면 남아날 사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국회가 제 할 일만 똑바로 해도 기획재정부를 찾아가 사무관, 국·과장 따위에게 예산 더 달라고 구걸하는 멍청한 짓은 더 이상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제발 일 좀 똑바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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