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이거나, 부모자식 간에도
잘 지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과거의 허물’을 끄집어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정한 부부간이라도,
옛날 일 자꾸 들먹이며
사과해라, 빌어라 따지고 요구하면
생길 것은 떡이 아니라 상처요 분노밖에 없습니다.
부모자식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서운하게 한 일, 상처준 일
따지며 질책하고 원망하면
서로 남남보다 못하게 지내게 될 확률만 높아집니다.
죽을 때까지 이웃으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상처준 일, 미운 짓 한 일, 억울한 일 따지면
서로가 피곤하고 심신(心身)도 상하게 됩니다.
물론 괴롭히고 상처 준 놈이
당연히 먼저 빌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기미는 전혀 안 보입니다.
그럴 땐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요?
서로 마주치지 않고 안보고 살 수 있으면
평생 욕하고 상종(相從)을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 이웃이라면,
더럽고 미워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가슴 속에 묻고 억지로 라도 잘 지내도록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앙금을 풀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미운 놈을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미워하던 시어머니가 꼴 보기 싫어
괴로워하던 며느리에게 지나가던 스님이 내린 처방은
거짓으로라도 ‘사랑’해 보란 것이었습니다.
거짓 사랑도 자꾸 해보니 진짜 사랑이 되더랍니다.
그게 용서(容恕)의 힘입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야한다면,
대결이 아닌 화해로 가야할 운명이라면,
미운 놈도 용서하는 이가 참된 승자(勝者)입니다.
졸장부들을 우리가 용서해주고 품어 줍시다.
먼저 손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이가
진정한 거인(巨人)이요 대장부(大丈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