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제2조 정의조항이 의미하는 ‘양곡’이란 “미곡(米穀)·맥류(麥類),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곡류(穀類)·서류(薯類)와 이를 원료로 한 분쇄물(粉碎物)·가루·전분류(澱粉類),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주식이 쌀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왜 유독 ‘쌀’만 의무적으로 매입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농산품이건 공산품이건 간에 초과생산량 전량(全量)을 정부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反시장주의적 악법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현실적 상황은, 우리 농업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있습니다.
우선, 고령화로 인해 농가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2013년 284만 7,245만 명이던 농가인구는 2021년에 221만 5,498만 명으로 불과 10년도 안 돼 63만 1,937명이나 감소했습니다. 2023년 3월기준 경북 의성군 인구수가 4만 9,954명이니, 의성군 인구의 12배가 넘는 농가인구가 사라진 셈입니다. 이런 가파른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10년 안에 농가인구가 150만 명을 밑돌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더구나 절대농지(농업진흥지역)도 도시개발 확산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 비해 2021년에 4만 5,591ha(헥타르)가 줄었습니다. 1ha가 3,025평이니, 무려 1억 6,513만 7,779평의 절대농지가 사라진 셈입니다. 경기도에서만 1만 4,021ha가 줄었고, 경남 6,362ha, 전북 5,058ha 순으로 감소하는 등 전국적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습나다.
쌀소비 감소에 따라 농작물 생산량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3년 한해 563만1,689톤이던 쌀 생산량은 2022년에는 499만 8,223톤으로 63만 3,466톤이나 감소했습니다. 반면, 보리는 2013년 9만 390톤에서 2021년 9만 8,836톤으로 8,466톤이 증가했고, 밀도 같은 기간 1만 9,061톤에서 2만 6,324톤으로 7,263톤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콩은 같은 기간 15만 4,067톤에서 11만 781톤으로 4만 3,286톤이나 크게 줄었습니다. 고령인구의 농사 포기 등 농가인구의 감소, 절대농지 감소, 젊은 농업인의 일부 유입 등이 농작물 생산량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셈입니다. 즉, 농업환경 자체가 자연적 쌀 생산 감소와 생산 농산물의 종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농업인구와 농지 규모의 급격한 감소, 농작물 생산량 급감에 대비하려는 자세와 노력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만 본다면, 돈만 있으면 국제간 농작물 거래를 통해 언제든 충분한 공급이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인한 농지 파괴와 생산량 축소 및 유통난이 가속화됐습니다. 여기다 가뭄과 폭우 등 지구적 기후 변화에 따른 생산량 감소 등으로 인해 갈수록 축소, 붕괴되는 글로벌 식량 공급망 변화추세를 감안하면, 이미 세계는 식량 위기라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한국을 독자생존력이 결여된 나라로 평가하는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자신의 책 『세계의 붕괴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에서, 기후와 환경변화, 전쟁 등으로 세계질서가 무너지면서 인구감소와 자본 부족으로 인해 국가들이 붕괴와 기근에 직면하게 될 어두운 미래를 보여줍니다. 특히 농업과 관련해 그는 “현재의 농업이 해체되면, 먹을거리의 생산량, 종류, 확보 가능성, 안정적 공급이 대대적으로 위축된다.”고 경고합니다. 세계화된 환경에서 글로벌 질서가 무너지면, 식량에 대한 완전한 자급자족을 이룬 나라가 아닐 경우 심각한 국가적 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먹을 게 넉넉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 이웃도 사망한다. 마을 전체가 사망한다. 나라가 사망한다.”는 그의 경고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식량은 무한재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한다면 말입니다. 당장은 먹을 것이 넘치는 풍요로운 시기로 보이지만, 우리 등 뒤에 급작스러운 ‘공급량 급감’이라는 악마가 숨어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