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

by 권태윤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또다시 겨울이 오고…….

우리의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고……. 그렇게 세상은 영원을 허락하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갑니다.


석 달 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 곁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자신도 짧게는 3년, 많게는 50년, 아니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보다도 일찍 생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눈 아침인사가 영원한 이별의 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이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순간의 삶입니다.


언젠가 항상 유서를 써서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단 하루만의 생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진실과 사랑,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며 산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천년을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 탐욕으로 가득한 인생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수 천 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사람도, 수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도 언젠가는 한줌의 재로 돌아갈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잊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잊으려고 발버둥치며 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의 양식을 걱정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돌아갈 길에는 동전 한 닢도 갖지 못한 채 이승과 이별해야 하는 공동의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을 참으로 공평하게 대우하신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에게 단 하루만이 남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고 싶습니까.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인생이 ‘따스한 봄날 하루의 소풍 같은 시간’이라면 당신은 무슨 놀이를 하며, 누구와 김밥을 나눠먹고 싶습니까. 마지막이자 한번뿐인 그 단 하루의 소풍을 가면서도 부질없는 욕망과 이룰 수 없는 꿈에 아쉬워하며 발만 동동 구르다가 의미 없는 하루를 마친다면 너무도 슬픈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금력에 상처받고 권력에 눌림 당하며, 그렇게 돈을 사랑하라고 배우고 “분하면 권력을 쟁취하라”는 수많은 아우성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먹는 음식에 결코 넣어서는 안 되는 재료를 넣어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 백 원짜리 음식을 천 원짜리로 속여 파는 사람, 만원 벌었지만 백 원밖에 못 벌었다고 속이고 세금 덜 내는 사람, 종업원들에겐 백 원 주기도 싫어하면서 권력자에겐 수 십 억원 갖다 바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사업자, 욕망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끊어놓는 범죄자, 개인의 영광을 위해 약자를 짓밟는 사람, 권력을 위해 순진한 백성을 이용하는 정치인, 신을 빙자해 신도를 갈취하는 사이비 종교인…….


우리 사회에는 늘 이렇듯 천년을 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삶은 하루살이의 그것처럼 백년도 못되는 시간의 틀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당신에게 단 하루만이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고, 출퇴근길에 예기치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괴한의 칼에 쓰러질 수도 있으며,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에 의해 세상의 모든 꿈들과 이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의 존재가 아닌 우리들은 늘 죽음의 사신과 동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단 하루의 시간밖에 허락 받지 못한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동전 한 닢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벌이에 눈이 멀어 하루 종일 증권사 객장의 주식 시세 판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습니까? 퀴퀴한 담배연기가 가득한 골방에서 노름으로 하루를 보내지는 않습니까? 경마장이나 카지노에서 대박을 꿈꾸며 분노하고 탄식하지는 않습니까? 짜릿한 흥분을 꿈꾸며 불륜을 저지르거나 어린 학생들의 성을 갈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금 몇 푼 덜 내기 위해 장부를 조작하고, 권력자에게 빌붙어 특혜를 얻으려 손바닥을 비비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하직원의 공을 가로채고 상사에게 사탕발림의 아부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높은 관직에 오르기 위해 권력자의 눈을 가리고 거짓된 민심을 전하지는 않습니까?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동분서주하지는 않습니까?, 신문을 많이 팔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작성하거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에게 단 하루의 시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결코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을 호령하는 당신도 한줌 흙이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지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당신도 언젠가는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 손바닥 위 한줌 모래 속의 일부분이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생을 살다보면 권력의 달콤함과 금력의 짜릿함을 인정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가는 길에 과연 무슨 행복과 안식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따사로운 봄날 소풍을 마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순간, 빙그레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사랑을 베푼 다음에 갖는 푸근함과 보람밖에 다른 그 무엇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의 생을 마치고 떠나는 순간 자식이나 이웃들로부터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떳떳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너의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신 분이었느냐?”는 질문에 "예, 우리 부모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하루 종일 경마장을 들락거린 분입니다", "예, 우리 아버지는 불량식품을 만들어 떼돈을 번 분입니다", "예, 우리 어머니는 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치맛바람을 일으킨 분입니다", "예, 우리 아버지는 삼류 성인비디오를 만들어 사람들을 흥분시키다 돌아가신 분입니다", "예, 우리 아버지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사람들을 속이고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챙긴 분입니다"라는 따위의 소리를 듣는 인생은 얼마나 한심한 인생입니까?


노태우나 전두환이 비록 대통령을 지냈지만 수많은 혈세를 훔쳐 먹은 도둑이요 전과자라로 전락했습니다. 잘사는 인생, 죽을 때도 편히 눈감을 수 있는 인생을 위해 우리 이제 유서를 준비합시다. 우리에게 단 하루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유서를 씁시다. 그러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사형을 앞둔 사형수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잘못된 생을 뉘우치고, 자신에게 또 다른 생이 주어진다면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아름답고 보람 있는 생을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분노하고 저주하는 세상보기, 사악함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생살이를 그만두는 일은 유서를 쓰는 일에서부터 가능해집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인생은 그래서 우리들을 염세주의에 빠지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줍니다.


깊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또다시 푸르게 솟아날 봄날을 기다리며, 단 하루라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신분이 되어 지난날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참된 나로 거듭 태어나는 하루로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가족들에게 어떤 사랑을 가르치고 갈지, 그 동안 나로 인해 마음 아팠을 많은 이웃과 친지 동료들에게 어떤 위로와 감사를 해줄지, 남아있는 근로자들에게 무엇을 더 주고 갈지, 새롭게 정치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갈지 가만히 생각해 보는 그런 하루를 말입니다.

다운로드 (3).jpe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동산, 그 지독한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