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본업은 무엇입니까?

by 권태윤

미국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비폭력 투쟁에 헌신하다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진 마르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으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라는 직업도 사람을 사랑하는 본업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인생을 꿈꾸고 있다면 우리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물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본업을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삶의 행동 또한 본업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본업은 무엇입니까? 우리들 대부분은 사람을 사랑하기 보단 다른 엉뚱한 일에 매달려 인생을 허비하거나, 오히려 사람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해 결혼이란 걸 합니다. 아이를 낳고, 저축을 하고, 다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왜 그렇게 하느냐? 는 질문엔 명쾌하게 답하지 못합니다. 다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고 들 답하는데, 그 더 나은 미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단순히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며, 자녀들 일류 대학 보내고, 좋은 곳을 구경 다니며 사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삶의 목적이 물질적인 것, 더 높은 곳에만 집중되다보니 진실로 지켜야 할 것들은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좋은 집, 좋은 차를 갖기 위해 근심하기 때문에 이웃을 돌아볼 여유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자녀를 일류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몰두하다보니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함을 가르칠 겨를이 없습니다. '더 나은 미래'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두 날려버리고 싶은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여러분이 평생을 바쳐 쌓은 좋은 집, 온갖 치장을 하며 가꾸는 좋은 차는 결코 여러분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해주질 않습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가 출세를 하는 길이 최선의 인생이란 가르침만을 받은 당신의 자녀는 결코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합니다. 소금은커녕 해악을 끼치는 독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결국 이 좁은 땅덩어리인 지구를 더 많이 오염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친 꼴이 되고 맙니다.


경제와 정치는 또 어떻습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다면 사업가는 분명히 번창할 것이고, 정치인은 훌륭한 정치를 통해 수많은 국민들을 편안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주위엔 삶의 지향점이 엉뚱한 곳에 있다보니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헛된 짓만 하며 사람을 괴롭히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경제인들이 오로지 돈을 많이 버는 것, 눈앞의 이윤을 많이 내는 것에만 집착해 평생을 한 일터에서 헌신해온 노동자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길거리로 내몰고, 부정식품, 불량제품을 만들어 고객의 마음과 몸을 아프고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얻을 것이 과연 무엇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살림살이 나아지고 행복하신지 묻고 싶습니다.


정치란 국민을 편안케 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법과 제도를 통해 실천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출세, 소속정당의 이해관계가 중심이 되다보니 욕을 얻어먹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신들만 비난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들의 '인간을 사랑하지 않음'으로 인한 행동은 사람들을 아프고 지치게 하고 시름하게 만듭니다.


개혁이니 대권이니 하는 것의 목적이 정당의 권력과 개인의 야욕이 아닌 진정 국민을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만 함은 물론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정치는 파멸만을 불러올 뿐입니다.


가장이든, 경제인이든, 정치인이든 그것이 본업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본업을 더 잘 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부업과 수단만을 좇아 본업을 망각하는 일이 우리 주위엔 너무도 많습니다. 특히 공직자에게 국민들이 혈세를 지불하며 일을 맡기는 것은 그들이 인간사랑이라는 본업을 잘 수행해달라는 부탁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본업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가져야 할 본업은, 킹 목사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 본업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우리에게 운명처럼 안겨진 것입니다. 본업을 외면하는 삶은 결국 우리의 기본적인 운명을 거부하고 인간이 아닌 삶을 욕심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공자(孔子)는 "하늘을 얻는 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하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존경받는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속에 인간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심성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순간이며 유한합니다. 본업이 아닌 엉뚱하니 일에 인생을 허비하기엔 너무도 시간이 없습니다.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인도를 최초로 통일시킨 아소카 대왕에게는 방탕한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이 국법을 어기자 왕은 동생에게 “일주일 뒤에 너를 사형시키겠다. 그러나 특별히 너를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배려를 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곧 후궁들로 하여금 동생을 시중들게 하는 한편 좋은 음식을 원하는 대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산해진미와 멋진 여자들을 즐기는 동안 험악하게 생긴 장사는 매일 아침 동생 앞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이튿날 아침 또 외쳤습니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


이렇게 나흘, 사흘, 이틀을 외치게 하였으므로 동생은 하루가 지날수록 불안감이 더해갔고,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장사는 또 외쳤습니다.

“죽을 때가 열두 시간 남았소이다!”


이렇게 열한 시간, 열 시간을 차례차례 헤아려 마침내 사형집행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아소카 대왕은 동생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래 일주일 동안 잘 즐겼느냐?”


동생이 말했습니다.

“저 장사가 험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죽을 날을 세고 있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아소카 대왕이 말했습니다.

“동생아! 다만 장사가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저승사자가 곁에 서서 죽을 날짜를 헤아리고 있단다. 그러니 어찌 한시인들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느냐?”


동생은 왕의 질책을 듣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행실을 바로 잡았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죽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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